정부 '연장근로 유연화' 재시동…근로자 "긴 휴가는 비현실적"

산업 / 양지욱 / 2023-11-15 08:45:12
생산직 "확실한 보상, 보장되면 반대 안 해" vs 사무직 "현행 유지"
노총 "미리 답이 정해진 설문조사로 근로자를 우롱하는 처사"
▲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주 최대 69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혔던 정부가 한국노동연구원 ‘근로시간 설문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연장근로 유연화’ 안을 다시 꺼내려 하자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8월 근로시간 설문조사 결과에서 연장근로 시간 확대 시 최대 근로시간으로 '주 60시간 이내'를 택한 경우가 근로자 75.3%, 사업주 74.7%로 가장 많았다'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근거로 정부 현행 주 52시간제를 기본으로 하되 일부 업종과 직종에 대해서만 바쁠 때 더 일하고 한가할 때 오래 쉴 수 있는 ‘근로시간 유연화’ 개선 방향을 지난 13일 제시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한국노총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설문 결과는 미리 답이 정해진 질문으로 일관돼 있어 근로자를 우롱하는 식의 설문조사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 측은 14일 본지 통화에서 “산재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생산·제조업종에서 근로시간을 더 늘리는 것은 근로자에게 더 위험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주는 꼴로 산업재해는 더 많이 증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저항이 약한 직종부터 시작하지만, 점점 대상 업종이 확대될 것이다”라며 "이번 근로시간 개정안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라고 깎아내렸다.


실제 현장 근로자들은 특정 업종·직종에 대해 연장근로 범위를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에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생산직의 경우 확실한 보상이 동반된 근로시간 유연화는 찬성하는 반면, IT·사무직일수록 현행 체제가 유지되길 바라는 경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보고서 중 ‘정성 조사’는 △IT·연구개발직(대전) △제조 생산직(울산) △사무직 △업종 무관 20·30세대 근로자 △업종 무관 40·50세대 근로자 △초3 이하 자녀를 둔 여성 근로자 등 8개 집단에서 각 6~7명 정도를 지난 7~8월에 걸쳐 심층 면접(FGI) 방식으로 진행했다.

심층 면접에 응한 근로자들은 공통으로 “유연화한다면 정부의 철저한 관리 속에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정적인 사유로는 ‘정말 더 일하면 더 길게 쉴 수 있느냐’에 회의였다. 긴 휴가 사용은 회사 눈치 보다 본인 업무 부담으로 현실적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확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연장근로 유연화는 ‘근로시간만 늘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수 근로자는 정부가 내세우는 ‘유럽처럼 길게 일하고 한 달 휴가를 떠난다’는 개념보단 필요할 때 연장근로를 하는 대신 바로바로 쉴 수 있는 체계를 선호했다. 실제 노동연구원이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동의하는 근로자 24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확대 범위‘에 대해 월 단위(62,5%)가 가장 많았고, 분기 단위(14.5%), 반기 단위(3.9%), 연 단위(4.8%) 순으로 나타났다.

업종에 따라선 견해차가 존재했다.

생산 물량을 맞추기 위한 잔업 특근이 많은 제조업 생산직의 경우 확실한 보상이 보장된다면 근로시간 유연화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경향을 보였다. 휴가를 길게 쓸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근로시간 기록 관리가 병행되는 만큼 근로 보상도 이전보다는 좋아지지 않겠냐라는 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IT·연구개발·사무직 등은 대체로 현행 체제 유지를 선호했다. 한 사무직 응답자는 “주 최대 52시간을 넘어설 경우 회사가 악용할 수 있고, 휴식권 보장 취지도 잘 안 지켜져서 결과적으로 휴식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연장근로는 안 된다는 맥락에서 확실한 보상 등 다른 것을 선택하지 않은 채 총근로시간 단축에 집중해 달라는 의견 또한 있었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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