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룰’ 무너진 태국…‘레드-옐로’ 충돌 반복

산업 / 토요경제 / 2010-03-16 13:06:11
태국 방콕은 온통 빨간색이다. ‘레드 셔츠’로 대변되는 탁신 치나왓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아피싯 치나왓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며 16일에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태국의 정정불안은 ‘옐로 셔츠’ 대 ‘레드 셔츠’의 대결로도 불린다. 이른바 ‘게임의 룰’과 민주적 절차가 무시되고 모든 걸 물리력으로 해결하려는 고질적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의 룰’이 무너진 건 탁신 전 총리가 쿠데타로 축출되면서부터다. 태국 왕실의 상징인 노란 색 옷을 입은 반탁신파는 지난 2006년 탁신 비판 시위를 주도해 그해 9월 군부 쿠데타로 탁신 정권을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쿠데타 세력은 이듬해 새로운 헌법을 발표하고 12월 총선을 실시했다. 하지만 군정 하 치러진 총선에서 ‘옐로 셔츠’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탁신 계열의 ‘국민의 힘(PPP)’이 승리를 거둬 탁신의 막강한 정치력을 확인시켰다. 뒤이어 2008년 1월 출범한 사막 순다라벳 총리의 내각은 또 다시 ‘옐로 셔츠’의 거센 저항에 부닥쳤다.

반탁신 계열의 국민민주주의연대(PAD)는 사막 총리가 탁신의 ‘꼭두각시’라고 조롱하며 대규모 퇴진시위를 벌였다. 당시 방콕, 파타야 등 국제공항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외국 여행객들의 발이 묶여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당시 태국 헌법재판소는 선거법 위반죄로 PPP등 탁신계 집권 3당의 해산명령을 내리며 ‘옐로 셔츠’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사막 내각이 해산되고 과도정부가 구성된 가운데 의회는 반탁신계의 아피싯 웨차치와 총재를 27대 총리로 선출, 비정상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옐로 셔츠’는 환희하게 된다.

허나 아피싯 총리는 탁신 지지단체 독재저항민주주의연합전선(UDD)로부터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아니라 쿠데타로 탁신을 몰아낸 뒤 야합으로 선출된 총리라는 비판을 받는다. 분노한 탁신 지지자들은 지난해 아세안+3 회의장에 난입해 회의를 무산시키는 사태까지 벌였다.

탁신은 총리에 당선된 이후 권력남용과 재산은닉 등의 부패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최근에는 재산 몰수 판결까지 받았다. 이 대목이 현재 진행 중인 ‘레드 셔츠’의 대규모 시위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태국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탁신이 권력을 남용해 자신과 가족이 소유한 통신업체 ‘친(Shin) 코프’에 특혜를 주는 정책으로 부당이익을 취했다며 그의 재산의 60%에 해당하는 14억 달러를 몰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가뜩이나 정권교체 후 속앓이를 하고 있던 탁신계의 봉기에 도화선이 된 것이다.

탁신의 지지 세력은 주로 농민과 도시빈민으로 대변된다. 이들은 탁신 전 총리가 펼친 정책의 최대 수혜자였다. 남부의 일부 무슬림 지역을 제외한 농촌에 대해 탁신의 농가채무 탕감을 해줬으며, 저소득층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들은 “신정부 인사들도 무능하고 부패하긴 마찬가지”라며 조기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승리를 자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선이 실시 돼 탁신계가 재집권한다고 해도 ‘노란 셔츠’가 다시 일어서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이미 ‘게임의 룰’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1932년 왕정을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태국은 지난 2006년 군부 쿠데타 이후 결과에 승복하는 풍토가 깨져버렸다.

이 때문에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직접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그의 근황을 감안하면 실제 이뤄지기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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