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송현섭 기자]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 기조를 기업 구조조정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금융기관들의 여신관리가 엄격해진 가운데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특히 최근 동부그룹과 STX그룹 등 구조조정 전례에 비춰 기업경영의 정상화와 회생을 위한 취지가 변질돼 일방적인 오너의 경영권 박탈만 강요한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는 산은의 불합리한 기업 구조조정 추진 및 대응에 대한 지적이 봇물을 이뤄 눈길을 끌기도 했다. - <편집자 주>
올해 정부 경제정책이 기업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춘 가운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 12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는 '산업은행 기업 구조조정 실패의 교훈'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는데 참석한 전문가들의 비판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무엇보다 기업의 경영 정상화와 회생을 돕기 위한 취지를 벗어나 산은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이 잦은 경영진 교체를 통해 오너의 경영권 박탈수단으로 변질됐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특히 토론회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산은이 최근 구조조정을 추진한 동부그룹과 STX그룹 등에 대한 불합리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STX조선해양과 팬텍·동부제철 등 구조조정 사례를 들어 "채권단과 자율협약에 기초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 구성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경영진 교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동부제철 감자는 사실상 경영권 박탈
실제로 동부제철의 경우 산은이 자율협약 이후 경영 정상화를 위한다고 하면서 대주주인 김준기 회장과 특수 관계인 등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100대 1의 감자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동부제철 경영진에 대한 감자비율은 경영권 박탈을 위한 조치"라고 전제한 뒤 "부실 책임이 경영권 포기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업 구조조정 본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어 김상겸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초 산은이 그렸던 구조조정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드러난 상황만 놓고 평가하자면 이익만 추구하는 민영 금융기관의 행태와 차별화된 점을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동부제철 구조조정 사례를 거론하며 "중간과정에서 보여줬던 포스코와 패키지거래 등은 설령 산은이 수익성만 추구하는 민영 금융기관이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과 유관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해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동부발전 당진과 패키지로 포스코측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무리한 매각을 추진하다가 최종 무산됐다. 앞서 해외업체에서 매각의사 타진이 있었으나 산은이 내세운 것은 동부제철이 보유한 기술이 해외로 넘어가면 안 된다는 논리였고, 사실상 인수의사가 없는 포스코를 임의로 매각협상 대상자로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기도 했다.
◇ 패키지 매각실패 '산은 책임론' 부각돼
더욱이 산은의 단독 결정에 따른 매각과정에서 실사가 진행되면서 기업 내부정보가 경쟁관계가 될 수도 있는 포스코로 넘어간 문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사안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동부제철은 결국 채권단 관리체제로 넘어갔고 동부발전 당진의 매각 실패는 동부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를 반증하듯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토론회에서 "산은이 형평성 문제와 재산권 침해 및 관치 구조조정 논란을 피하면서 적시에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방향전환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오 교수는 "금융기관과 국민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시장기반 구조조정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권용재 국민대 파이낸스보험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구조조정 및 회생절차 전반에 있어 속도의 완급에 대한 시간문제가 있었다"면서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비판했다. 권 교수는 이어 "산업은행은 민간 전문가와 해당기업 내부인사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회의체 등에서 자문을 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 김준기 회장 "불합리한 구조조정 피해 커"
이 같은 산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반발여론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제기하면서 표면화되고 있다. 김 회장은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체질이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구조조정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사업구조 선진화를 위한 투자의 결실을 얻기도 전에 밀어닥친 극심한 경기불황과 금융시장 경색으로 자체 구조조정을 중단했다"면서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의 요청을 받아들여 3조원대의 대규모 사전적 구조조정을 결단했다"고 언급했다. 김 회장은 이어 "1년이 지난 현재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특히 김 회장은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패키지 딜의 실패와 자산의 헐값매각, 억울하고도 가혹한 자율협약 체결 등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작심한 듯 "비금융 계열사들의 연이은 신용등급 추락과 무차별적 채권 회수 등 온갖 불합리한 상황들을 겪으며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 동부그룹, 유동성 위기 잔불 남겨져
이와 함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지난 반세기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고 산은의 구조조정을 비난했다.
김 회장은 또 "동부제철은 채권단에 경영권이 넘어갔으며 동부건설과 동부LED는 법정관리체제로 가야 했다"며 "동부특수강·동부발전 등은 매각되고 동부익스프레스는 FI(재무적 투자자)들에게 헐값에 넘어가는 등 그룹의 철강·건설·물류 부문이 완전히 와해됐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김 회장은 여전히 많은 계열사들이 유동성 문제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산은을 공격하면서도 취약한 재무구조와 허약한 경영체질 때문에 벌어진 책임은 인정했다. 실제로 김 회장은 "사업방향은 적절했지만 핵심설비의 조업 불안정과 원가 경쟁력 확보가 미진해 신사업과 증설사업의 조기 안정화가 지연된 점은 안타깝다"며 "금융시장 등 재무환경 변화를 사전 예측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패키지 딜의 실패와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하지 못했던 점 역시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김 회장은 경영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숱한 도전을 극복해온 동부의 역사를 떠올리며 희망과 용기를 갖고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을 요청한다"고 임직원들의 분발을 당부했다.
◇ 산은출신, 구조조정 기업서 자리 차지
산업은행 주도 하의 기업 구조조정은 대상기업의 임원진을 산은출신 퇴직 임원들로 채우고 있어 논란을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 금융관련 기관 퇴직자들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자 정부는 이직 금지를 관계법령에 명문화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앞서 산은은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퇴직한 임원들을 대거 투입해 사외이사 또는 감사 등으로 선임했다. 논란 끝에 일부 인사들이 중도 사퇴한 적도 있으나 그동안 산은출신 전직 임원들의 재취업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매번 지적이 나온 바 있다.
2008년 이후 산은에서 퇴직한 524명 가운데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재취업한 인원이 21.75%인 114명에 달한다는 것은 이 같은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들은 동양그룹과 STX그룹, 금호아시아나, 대우조선해양 등 임원진으로 이직해 물의를 빚기도 하는데 산은이 채권단 위주의 자율협약과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오너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특히 산은출신 퇴직 임원들은 산은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으로 재취업한 경우가 많은데, 2011년 퇴직임원 10명 중 9명, 2012년에는 14명 가운데 8명이 산은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 취업했다. 이에 대해 한 산업계 관계자는 "자율협약이든 구조조정이든 채권단의 영향 하에 놓인 기업은 산은출신 임원을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경우나 낙하산 논란을 빚을 수 있는 재취업이 많다"며 "관계법령 개정으로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어도 산은의 파워는 막강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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