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장벽 넘어설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야
[토요경제 = 이강민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한화오션이 미 해군 군수지원함 MRO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데 이어, HD현대중공업과 HJ중공업도 사업 참여를 추진 중이다.
미 해군의 정비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미국 내 조선 인프라 부족이 국내 조선업계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법 개정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관심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미 해군 MRO 시장을 노크하는 국내 기업들의 철학과 비전 그리고 업계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봤다.
◆ 미 해군 MRO 사업에 주목하는 조선업계
한화오션은 지난해 7월 ‘해군 함정 정비 협약(MSRA)’을 체결하고 2척의 군수지원함 MRO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 13일에는 한화오션이 국내 최초로 수주했던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쉬라함’이 MRO를 마치고 성공적으로 출항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도 지난해 7월 MSRA를 획득했으며, 올해 2월 미 해군 MRO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HJ중공업 역시 MSRA 획득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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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리를 마친 윌리 쉬라호 <사진=한화오션> |
◆ 미 해군 MRO, 수익성 충분할까
업계 관계자는 미 해군 MRO 사업의 수익성에 대해 해군 함정의 운용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건조 후 약 30여 년간 운용되는 과정에서 많은 정비가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MRO 비용이 도입 비용을 넘어서는 일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업 규모 자체도 적지 않다. 2024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약 582억6000만 달러(한화 약 85조2227억원)였으며, 2029년에는 646억1000만 달러(한화 약94조7505억65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 함정 MRO 시장은 그중 약 1/4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이다.
당장, 국내 사업장과 비교했을 때 미국의 인프라가 보여주는 초라함도 우리가 미국 시장을 두드리는 이유로 꼽힌다.
이를테면 미 해군의 함선을 건조하는 조선소 중 가장 큰 '뉴포트 뉴스 조선소'는 HD현대중공업의 1/3,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인프라가 부족하며 숙련된 인력도 부족해 현재 미국에선 군함 MRO 부분에서 지속적으로 지연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미국이 함정 건조 및 정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우리에겐 기회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화오션이 MRO를 진행한 윌리쉬라함의 경우, 정비 과정에서 자체 기술력을 이용해 추가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초기 계약 시 인지하지 못한 함정의 새로운 정비 소요를 확인해 기존 계약보다 증가한 매출을 보장하는 수정 계약을 맺고, 계약 기간도 연장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설계도가 없는 방향타를 역설계해 교체한 부분이 주목받기도 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단일 계약 건으로 신조보다 선가가 낮지만, 마진율이 높고,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며 “철저한 비용분석, 준비가 있으면 높은 수익성 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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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사진=한화오션> |
◆ 미국과의 협력 강화..."기회가 왔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 해군 MRO 사업의 단기적인 수익성은 크지 않지만,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법상 미국을 모항으로 하는 함정은 해외 조선소에서 MRO를 할 수 없다. 미국을 모항으로 하지 않는 미 해군의 함정은 40척이다. 미국을 모항으로 하지 않는 함정이라도 조건 없이 MRO를 할 수 없는 만큼 수익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은 요코즈카 해군 기지의 미 해군 제7함대 함정들의 MRO를 담당해 왔다. 지난 11월 한화오션에서 수주한 2척의 군수지원함 MRO 사업도 모두 제7함대에서 발주한 사업이다.
특히 일본이 수주한 MRO 작업은 선체 세척, 도장, 장비 검사와 같은 사소한 작업으로 수익성이 크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현재 한국이 수주한 MRO 함정들이 주로 지원함이라는 점도 높은 부가가치를 내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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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사진=HD현대중공업> |
◆ 법 개정 가능성
현행 법령이 개정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미국이 자국의 조선산업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함정 MRO 제한 법령과 한국의 MRO 시장 진출 가능성(군판사 이소영)’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3일 마이크 리 유타주 상원의원은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한 바 있다.
비록 통과되지 않았지만,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해외 조선소에서도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조건은 ▲나토 회원국 또는 미국과 방위 협정을 맺은 인도·태평양 국가에 위치한 조선소일 것 ▲비용이 미국 내 조선소보다 저렴할 것 등이다.
또한 올해 2월 마이크 리, 존 커티스 상원의원이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을 공동으로 재발의했으며, 트럼프 2기 정부의 기조를 고려하면 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 정부 지원이 MRO 시장 확대의 '열쇠'
미 해군 MRO 사업은 '단순한 정비 계약'을 뛰어 넘어 향후 '미국 조선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현행 법령의 제한과 미국 내 조선업 보호 기조를 고려하면, 개별 조선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외교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미국과의 방산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법 개정 논의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전략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업계가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소영 군판사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전투함의 MRO를 맡아야하지만, 지원함의 MRO 사업이 다른 국가와의 사업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라며 “정부, 조선업체, 법률전문가 등 모두가 힘을 합쳐 한국의 미 함정 MRO 시장 진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토요경제 / 이강민 기자 lgm@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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