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화가 '김숙'… 심상(心像)으로 그리는 작품 남기고 싶어

문화라이프 / 김병윤 기자 / 2023-08-28 13:04:45
▲ 맨드라미를 주제로 작품활동 하는 김숙 화가<사진=김숙>

 

7~8월에 피는 꽃 맨드라미. 들꽃이다. 붉은 색을 띄고 있다. 흰색·홍색·황색 등의 색깔도 있다. 생명력이 강하다. 꽃말이 영생이다. 시들지 않는 사랑의 뜻도 있다.

맨드라미 전문 화가가 있다. 김숙(63) 작가다. 질긴 생명력의 소유자다. 비전공자의 불리함을 극복했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냈다.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었다.

김숙의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미대에 가고 싶었다. 부친의 반대가 심했다. 환쟁이는 안 된다고 했다. 부친의 뜻에 따라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다. 홍보실 잡지에 삽화를 그렸다. 5년간 근무했다. 결혼과 동시에 퇴사했다. 

결혼하고 편하게 그림을 그렸다. 취미활동이었다. 자녀 친구 엄마들이 실력을 인정해 줬다. 미술교습소를 차리라 했다. 10년 동안 운영했다. 어느 날 회의가 들었다.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처음에는 수채화를 배웠다. 나중에 유화의 매력에 빠졌다. 유화를 그리기로 했다.

35살에 인사동에 나갔다. 작가가 될 마음은 없었다. 그냥 인사동 구경에 나섰다.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됐다. 공모전이 있었다. 

초보들이 응모하는 공모전에 출품했다. 색감이 좋다는 평을 받았다. 그림에 힘이 있다고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좋은 점수를 줬다. 입선을 했다.
미술단체에 가입도 했다. 화가로 인정받았다.

입선 후 용기가 생겼다. 밤을 새우며 습작을 했다. 닥치는 대로 그려댔다. 장르의 구분이 없었다. 맨드라미 전에는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가족의 희생이 뒤따랐다. 

어느 날 길을 가다 맨드라미를 봤다. 집 마당에 피었던 추억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의 향수가 떠올랐다. 열정과 질긴 생명력을 가진 맨드라미. 자신을 닮은 느낌이 들었다. 맨드라미를 그리기로 했다. 

2005년 단체전에 맨드라미를 출품했다. 관람객의 호응을 받았다. 미술계에 맨드라미 화가로 알려진 발판이 됐다. 다른 화가들과 교류도 하게 됐다.

단체전이 끝난 뒤 갤러리 관장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자고. 정신이 없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꼬집어 봤다. 분명 생시였다. 첫 개인전이었다. 개인전도 성황리에 마쳤다. 

김숙은 개인전 33회. 단체전 300여 회를 했다. 개인전은 모두 초대전이었다. 갤러리에서 인기가 좋아서다. 관장들은 맨드라미 전시를 원한다. 예정 된 전시회도 모두 맨드라미다.

김숙은 2011년부터 맨드라미만 그렸다. 다른 그림그릴 시간이 없었다. 현재까지 300점 이상 그렸다. 150점 정도는 이미 판매됐다. 전시회의 인기 그림이다.

김숙은 요즘 새로운 맨드라미 작품에 도전하고 있다.

“원래의 맨드라미 색상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다양한 색을 도입하려 힘쓰고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심상(心像)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림과 제가 대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단순화 시키고 싶어요. 다시 말해 편안한 그림 이죠.”(김숙)

맨드라미 작가 김숙은 후학양성의 꿈을 가지고 있다. 2009년부터 문화센터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를 가르치고 있다. 15년째 미술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김숙은 강의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우친다며 겸손한 자세로 살짝 웃는다.

▲ 김숙 화가는 맨드라미의 도창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사진=김숙>

 

토요경제 /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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