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사발에 허심(虛心)을 담다…12년째 찻사발만 그리는 '강순자 화백'

문화·라이프 / 김병윤 / 2023-08-07 10:10:48

강순자(71)는 찻사발 전문화가다. 국내에서 유일무이하다. 반론이 있다. 찻사발을 그리는 화가가 많다고. 그럴 수도 있다. 찻사발을 그리는 화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의문이 든다. 왜 강순자를 유일무이라고 했을까. 이유가 있다. 

 

강순자는 오직 찻사발만 그린다. 올해로 12년째 그리고 있다. 다른 그림은 손도 안 댄다. 찻사발에 빠진 외길인생이다. 찻사발 작품만 70점 정도가 된다.  

▲ 강순자 화백은 투박하고 울퉁불통한 찻사발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사진=강순자 화백>

 

강순자의 인상은 단아하다. 그녀에게서는 은은함이 배어 나온다. 찻사발에 담긴 녹차향 같다. 녹차향처럼 상대에게 스며든다. 말투에는 차분함이 담겨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곤소곤 댄다. 좌선하는 수도승의 숨소리 같다. 귀를 기울여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 웃음마저도 수줍어 고개를 숙인다.
강순자의 이런 행동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 살았다. 성장과정도 한 몫을 했다. 집안이 어려웠다.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었다. 아픔을 가슴에 품고 조용히 생활했다.

강순자는 공부를 잘했다 미술전공을 하고 싶었다. 소질도 있었다.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유는 한 가지. 밑의 두동생도 배워야 했다. 미대 진학의 꿈을 접었다. 서울교대에 진학했다. 머리 좋고 가난한 수재들이 모이던 학교였다. 졸업 후 곧바로 교사가 됐다. 생활인의 길을 걸었다.

강순자의 미술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교사를 하며 야간대학 생활미술과에 편입했다. 내친 김에 대학원도 졸업했다. 교수들의 총애를 받았다. 대학 강의 자리를 마련해 줬다.

1년간 열심히 강의했다. 꿈이 생겼다. 대학교수가 되고 싶었다. 교사의 길을 접었다. 더 큰 꿈을 위해서였다. 장밋빛 앞길이 보이는 듯했다. 꿈에 부풀어 있을 때 변수가 생겼다.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강순자에게 시련의 계절이 왔다. 먹고 살아야 했다. 가게 점원. 미술학원 강사. 개인교습 등. 닥치는 대로 생활비를 벌었다.

2002년 강순자는 초등학교 교사로 복직했다. 2012년 퇴직했다. 교사생활은 안정감을 주었다. 여유가 생기니 병이 도졌다. 미술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다시 붓을 잡았다.

방과 후 교실 문을 걸어 닫았다. 무아지경으로 그림을 그렸다.승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방학은 강순자를 위한 성장의 시간이었다. 오직 작품 활동만 했다. 외출을 멀리 했다. 마냥 행복했다.

“교사 복직 후 10년이 저에겐 황금의 시간이었어요. 미술의 성숙을 이뤄준 시간입니다. 처음 5~6년은 꽃그림에 빠졌어요. 우연한 기회에 찻사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강순자)

강순자는 우연히 도자기 공방을 방문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번개를 맞은 듯 했다.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숨이 턱에 걸려 내뱉을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불가마에서 나오는 찻사발의 울퉁불퉁 매력에 정신을 뺏겼다. 혼이 나간 사람이 됐다.

강순자는 마음먹었다. 찻사발을 그려야 되겠다고. 처음에는 찻사발에 꽃을 그렸다. 과일도 그려 넣었다. 그리다 보니 찻사발의 고유미가 퇴색됐다.

강순자는 화풍을 바꿨다. 주제는 허심(虛心)이었다. 마음을 비우는 자세였다. 허심에는 강순자의 지나온 삶도 녹아있었다.

마음을 비우니 찻사발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했다. 있는 그대로의 둔탁함이 무지개처럼 아름다웠다. 꽃과 과일이 있던 자리는 여백의 평안함으로 가득 채웠다.

“찻사발 그림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아요. 찻사발이 놓이는 자리와 여백처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찻사발 그리는 것은 행복한 일이에요. 단지 작가로서 오직 찻사발 한 가지만 그리는 게 맞나 고민은 합니다. 작품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걱정도 하곤 해요.”(강순자)

강순자의 삶은 기사로 쓰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그녀의 찻사발 그림에는 그런 아픔이 담겨있고 녹아 있다.

그래서 화가들은 말한다. 강순자의 찻사발에는 한국여인의 한과 눈물과 인내와 울음이 섞여 있다고. 그런 아픔을 한국인의 따뜻한 정으로 승화시킨 예술품이라고.

강순자는 소박한 두 개의 꿈을 갖고 있다. 오래오래 찻사발을 그렸으면 한다.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담겨진 찻사발을 그렸으면 한다. 찻사발을 보면 가슴이 저려오는 그런 그림이다.

“나는 비워져 있는 찻사발을 통하여 나 자신의 미학적 정서인 허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찻사발은 그 자체로 무한한 깊이와 고요, 자연스러움이 스며있어 소박하고 질박하며 사치스럽지도 않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찻사발에 빠져든 강순자의 건강이 오래오래 유지되길 바란다.

 

토요경제 /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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