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31)

서울이야기 / 김병윤 기자 / 2022-04-19 23:54:06
임금의 아들이 신세를 한탄한 ‘대군(大君)들의 정자’, 양녕대군의 아픔이 서린 ‘영복정’, 효령대군이 임금의 꿈을 포기한 ‘망원정’, 형에게 죽임을 당한 안평대군의 ‘담담정’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임금의 아들이 신세를 한탄한 ‘대군(大君)들의 정자’ 

▲ 망원정 <사진=김병윤 대기자>

 

대군은 임금의 자손이다. 권세가 있었다. 재물도 있었고 무엇이나 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었다. 조건이 있었다. 임금에게 잘해야 됐다. 눈 밖에 벗어나면 안 됐다. 처신을 잘해야 했다. 성은을 받으면 임금이 됐다. 반대 상황도 있었다. 죽임을 당하기도 했었다. 귀양도
갔다. 임금인 아버지에게. 형제지간에도 그랬다. 권력을 놓고 싸움을 했다. 피 비린내가 났다. 긴장을 놓으면 안 됐다. 승자는 권좌에 올랐다. 패자는 없어져야 했다. 귀양 가는 것은 기본이었다. 목숨을 건지면 다행이었다. 성은이 따라야 했었다.

형제의 난으로 왕좌에 오른 인물이 있다. 조선조 3대 임금 태종이다. 형제를 무참히 죽였다. 피를 뿌리며 왕위를 찬탈했지만 임금 역할은 잘했다. 조선조 행정의 기본을 세웠다. 개혁의 기틀을 마련해 국민의 삶을 편하게 해줬다. 인재도 등용했다. 이런 태종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형제간의 불화였다. 인과응보였을까. 아들 문제로 골치를 썩었다. 부모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다. 자식 문제다. 태종도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태종의 아들들은 똑똑했다. 형제 간의 임금 양위로 고민도 했다. 최고의 성군 세종도 태종의 아들이다. 세종은 형들을 제치고 임금이 됐다. 왕위를 못 받은 대군은 움츠리고 살아야 했다. 자신들만의 생활을 추구했다. 대군들은 자신의 정자를 갖고 있었다. 그 곳에서 세월을 낚았다. 신세를 한탄하며 재기를 꿈꿨다. 대군들의 대표적인 정자가 있다. 영복정, 망원정, 담담정이다.

양녕대군의 아픔이 서린 ‘영복정’
영복정은 양녕대군 것이었다. 양화나루 쪽에 있었다. 양녕대군은 비운의 인물이다. 태종의 맏아들이다. 세종의 큰형이다. 재주가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문무 대신들도 감탄했다. 총명함이 하늘을 찔렀다. 막힘이 없었다. 시와 서예에도 능했다. 예술적 재능을 타고났다.

어린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불과 10살이었다. 어리광을 부릴 나이였다. 엄마 품에 안겨서. 왕위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임금은 하늘이 내린다 했다. 왕좌의 일보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재주가 많은 것이 탈이었다. 끼를 억누르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

방탕한 생활로 세월을 보냈다. 주색에 빠져 수많은 여인을 탐했다.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무서운 임금 태종마저도. 태종은 끝내 폐세자를 결정했다. 태종은 목 놓아 울었다. 피눈물을 흘렸다. 숨마저 쉴 수 없었다. 수족이 잘려나가는 아픔이었다. 숨겨왔던 부성이 터져 나왔다. 맏아들에 대한 애증이 있었다. 양녕대군은 떠났다. 많은 교훈을 주고 사라졌다. 절제된 삶을 살라고. 나처럼 살지 말라고.

효령대군이 임금의 꿈을 포기한 ‘망원정’
망원정은 효령대군 소유였다. 절두산 꼭대기에 있다. 효령대군은 태종의 둘째아들이다. 임금이 될 수도 있었다. 양녕대군이 왕세자에서 폐위됐다. 장남이 물러났다. 당연히 효령대군이 왕위를 받을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동생인 충녕대군이 왕좌에 앉았다. 세종대왕이다. 효령대군은 낙담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권력의 속성을 알았나 보다. 도전은 죽음이라는 것을.

정자에 올랐다. 망원정이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과 대화했다. 하늘에게도 물어봤다.
하늘이시여. 진정 이게 하늘의 뜻입니까. 하늘은 대답했다. 그렇다네. 효령대군은 무
릎을 꿇었다.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인생무상을 느꼈다. 인생무상은 허무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 심취했다. 마음을 비우고 살았다. 비우니 가득
찼다. 91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공(空)의 가르침이다.

형에게 죽임을 당한 안평대군의 ‘담담정’
담담정도 아픔이 있다. 안평대군이 지었다. 조선 초에 건축했다. 지금의 마포지역이다. 세조 때 신숙주에게 넘어갔다. 안평대군도 비운의 주인공이다.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이다.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다. 형인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단종 복위에 연루됐다는 죄목이었다.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찬탈했다. 목숨마저 빼앗았다. 안평대군은 분노했다. 정사를 바로 세우고 싶었다. 형에게 반기를 들었다. 조카를 복위시키려 했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세조는 무자비 했다. 동생마저 죽였다. 안평대군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형의 정치적 야심에 희생됐다. 36살의 젊은 나이였다.

안평대군은 담담정에서 무엇을 했을까. 임금을 꿈 꿨을까. 아닐 듯하다. 붓글씨를 썼을까. 학문을 논했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예술적 재능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안평대군의 서예실력은 칭송을 받았다. 송설체(松雪體)의 대가였다. 중국의 황제가 글씨를 받고 싶어했다.

대군의 정자는 알려준다. 대군들의 힘이 막강했다고. 풍류만 있던 것은 아니라고. 배반과 아픔도 간직했었다고. 죽임마저도 있었다고.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병윤 기자
김병윤 기자 안녕하세요. '토요경제' 김병윤 기자입니다.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