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29)

서울이야기 / 김병윤 기자 / 2022-04-12 23:52:04
생명수이자 젖줄인 '서울의강',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강의 기적 ‘한강’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생명수이자 젖줄인 '서울의강' 

▲ 한강 <사진=김병윤 대기자>

 

한강은 서울시민의 생명수다. 젖줄이다. 한강은 기적을 만들었다. 외국인들은 말한다. 오늘의 풍요로운 한국을 칭송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서울은 축복받은 도시다. 산과 강이 있어서다. 그냥 산이 아니다. 높고 아름답다. 명산이다. 강도 예사롭지 않다. 개울 같은 강이 아니다. 바다 같이 넓은 강이다. 서울을 길게 관통한다. 동에서 서를 가로지른다. 한강이다. 샛강도 있다. 실개천도 많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지하로 스며든다. 여기저기 물이 흘러넘친다.

물이 너무 많아 수도가 되지 못할 뻔 했다. 도성을 옮길 때 문제가 됐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안 좋다 했다. 반란의 운세가 있다고 꺼렸다. 청계천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된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게 이치다. 청계천은 아니다.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배신의 기운을 담고 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그것을 꺼렸다. 강성 군주 태종마저도 두려워했다. 지금의 운하를 만들려 했다. 광교에서 마포 쪽으로 물길을 돌리고 싶었다. 끝내는 포기했다. 워낙 큰 공사라. 돈과 사람이 무진장 들어가야 했다.

한강은 역사를 담고 있다. 삶의 터전을 만들어 줬다. 애환도 함께 했다. 한강 주변에는 정자도 많았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운치도 있었다. 시와 노래와 춤이 함께 했다. 종합예술의 극치를 선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강의 기적 '한강'

▲ 한강 셔터스톡 이미지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구분된다. 북한강 발원지는 금강산 부근이다. 양구를 거쳐 한강으로 유입된다. 남한강은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한다. 태백산 검룡소가 발원지라는 학설도 있다. 두 곳을 모두 발원지로 보는 것도 일리가 있다. 두 곳이 함께 만나기 때문이다. 평창강, 영월 동강, 충주호를 거쳐 서울로 온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장소가 있다. 양수리다. 두물머리라고도 한다. 두 물줄기가 합친다는 뜻이다.

물이 깨끗했다. 청정수였다. 조선 세조와 관계가 깊다. 세조의 피부병은 잘 전해지고 있다. 어의들은 고민했다. 세조의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비책을 내놓았다. 좋은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었다. 전국을 유람했다. 좋은 물을 찾아서. 운길산에 올랐다. 밑을

내려 보았다. 물길이 아름다웠다. 물 부딪치는 소리가 종소리 같았다. 세조는 감탄했다. 그 물을 받아 몸을 씻었다. 운길산에 절을 세웠다. 수종사라 했다. 물소리가 종소리 같다 해서 붙였다. 수종사에 관한 다른 유래도 있다. 세조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종소리가 들렸다. 부근을 조사해보라 일렀다. 바위굴을 발견했다. 18나한이 있었다. 굴속에 떨어지는 물이 종소리 같았다. 절을 짓고 수종사라 불렀다. 두 얘기 모두 정확한 자료는 없다. 수종사에 관한 유래는 접고 가자.

양수리에서 합친 물은 팔당을 거쳐 서울로 들어온다. 광나루를 통해서 온다. 서울시 입장에서 보자. 광나루가 한강의 경계선이다. 한강의 출발점이고 행주대교가 종착지다. 짧지 않은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그 여정 속에 많은 사연이 함께 흘렀다.

1960년대에 광나루다리가 있었다. 제1한강교와 함께 서울의 명물이었다. 다리마저 귀했던시절 얘기다. 뚝섬유원지가 가까웠다. 서울시민의 놀이터였다. 뱃놀이를 많이 했다. 식당과 술집이 성행했다. 술 마시고 뱃놀이.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강은 교통수단의 역할도 했다. 배를 타고 청담나루 봉은사까지 내려왔다. 60년대까지 뗏목의 수상통로였다. 3도에서 뗏목이 올라왔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보내왔다. 뗏목에 물건도 실어 보냈다. 한강주변에는 역사유물도 많다. 암사리가 대표적이다. 지금의 암사동이다. 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됐다.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사고도 많았다. 암사동은 모래산이다. 어린이가 많이 죽었다. 모래웅덩이에서 놀다 희생됐다. 웅덩이에 빠지면 모래들이 계속 흘러 내렸다. 헤어나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놀이터 하나 변변히 없던 시절 얘기다. 슬픈 과거사다.

한강은 삶의 터전도 만들어 줬다. 나루가 많이 생겼다. 청담나루, 양화나루, 마포나루등이 대표적이다. 나루를 통해 생활이 형성됐다. 물건거래가 이뤄졌고 정보가 교환됐다. 마포나루는 규모가 컸다. 민물나루 중 가장 큰 곳 이었다. 상거래의 중요지점 이었다. 마포나루에는 돈이 많이 풀렸다. 술집이 많았다. 언제나 술집은 손님으로 가득찼다. 술에는 여자가 따르는 법, 장안의 색주가가 많이 모였다. 남자들의 허풍스런 웃음이 술집에 퍼졌다. 여자들의 간교한 웃음이 남자의 애간장을 녹였다.

한강은 체육시설로도 활용됐다. 1960년대까지 동계체육대회가 한강에서 열렸다. 스케이팅 대회가 치러졌다. 피겨스케이팅 대회도 했다. 수 천 명의 구경꾼이 모였다. 소리 지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대회열기가 대단했다. 아직도 의문스러운 일이 있다. 수많은 관중이 모여도 얼음이 깨지지 않았다. 얼음의 두께가 얼마였을까 궁금하다. 사람들은 겨울에 걸어서 강을 건넜다. 한강 물이 깨끗했다는 증거다. 불순물이 없었다. 한강의 물도 산업화와 함께 병들었다. 물이 오염되면서 냄새가 나고 얼지도 않았다.

동계체육대회는 장소를 옮겼다. 춘천 공지천에서 열렸다. 지금은 공지천도 얼지 않는다. 환경오염의 심각함을 느끼게 한다.

한강에는 2개의 섬이 있다. 여의도(汝矣島)와 율도(栗島)다. 율도는 밤섬이라고 부른다. 여의도는 큰 섬이다. 잉화도(仍火島)라 부르기도 했다. 나의 섬도 아니다. 너의 섬도 아니다. 누구의 섬도 아니다. 그래서 불린 명칭이 있다. 너섬이다. 지금도 불리우고 있다.

여의도에 비행장이 있었다. 6.25전쟁 이후 미군 비행장으로 쓰였다. 60년대 후반까지 사용됐다. 국제공항으로 이용했다. 대형 비행기는 사용하지 못했다. 활주로가 짧았다. 1968년에 폐쇄됐다. 당시에는 비행기 도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비행기를 훔쳐 가다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상상이 안 된다. 가끔은 상식 밖의 일도 현실이 된다. 당시 비행장은 경계가 허술했다. 비행기도 작았다. 현재와 같은 금속이 아니었다. 천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일부 비행기는 그랬다.

도둑이 비행기에 끈을 매었다. 밤에 샛강에서 비행기를 끌어당겼다. 비행기는 줄에 몸을 맡긴 채 끌려왔다. 가까이 가서 비행기 부속을 분해했다. 부속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비행기 부속은 비싼 가격에 팔렸다. 아침에 비행장은 발칵 뒤집혔다. 담당자들은 어땠을까. 상상이 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그랬던 여의도가 지금은 하나의 도시다. 정치의 본산이다. 금융의 중심지다. 문화의 산실이다. 젊은이들의 놀이터다.

율도는 지금 못 들어간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 됐다. 자연보호구역이다. 새들의 낙원이다.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다. 율도에도 사람이 살았다. 비가 오면 엉망이 됐다. 섬 안에 물이 흘러넘쳤다. 짐을 싸야 했다. 피신하기 바빴다. 1968년 정부는 주민들을 와우아파트로 이주시켰다. 유명한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의 시초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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