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과 카리브해를 한 눈에 … 파나마 볼칸바루 (Volcán Barú)

문화·라이프 / 박진호 / 2015-04-29 03:57:33
해발 3474m, 파나마에서 가장 높은 화산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등산을 좋아하는가? 1920년대 초 지금과 같은 등반장비도 없이 에베레스트 등반에 최초로 도전했던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는 “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Because it’s there)”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중 실종됐고 75년이 지난 1999년, 8160m 높이의 남벽에서 두 팔과 상체만이 발견됐다.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는 조지 말로리의 도전정신은 현대 스포츠 등산을 지칭하는 알피니즘(Alpinism)에서도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해발 1000m가 넘는 산에 오르는 것조차 숨이 턱턱 막히는 이들에게 등산이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비록 국내 인구가 가장 많이 즐기는 취미생활이 등산이라 하더라도(2014년 한국갤럽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 조사에서 14%로 1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 나름이다. 산이 거기에 있다면 돌아서 가면 된다. 어떤 이들은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자 역시 등산을 기피한다. 오르면 오를수록 내려올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면 내려오는 걸음이라도 가벼워야 하건만, 등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기자에게 등산이란 ‘높이 오를수록 고통의 강도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중남미 여행을 떠났을 때 파나마(Panam)의 보케떼(Boquete)에서 등산의 유혹에 빠진적이 있다. 바로 볼칸바루(Volcán Barú) 등반이었다.
중미의 봉우리, ‘볼칸바루’
볼칸바루는 바루 화산이라는 뜻이다. 파나마 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볼칸바루는 파나마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3474m를 자랑한다. 볼칸바루는 탈라망카 산맥-라 이미스타드 보호지역(Talamanca Range-La Amistad Reserves) 중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역이자 파나마의 ‘볼칸바루 국립공원’ 내에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 열대우림지역이면서 제4빙하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북미와 남미의 동식물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적 생태적 매력이 3000m가 넘는 고산의 유혹으로 다가오기는 개인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볼칸바루의 정상에서는 태평양과 카리브해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말이 귀를 솔깃하게 했던 것이다.
파나마는 익히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운하의 나라다.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연결하는 파나마운하는 파나마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 해상 운송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류의 역작이다. 북미와 중미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높은 산 볼칸바루는 이러한 파나마의 특성상 서쪽의 태평양과 동쪽의 카리브해를 모두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보케테의 고도 자체가 이미 1000m 가까이 되며, 일부 거리는 차로도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3474m라는 고지에 대한 부담을 다소는 덜 수 있다. 백두산도 올라봤으니 ‘볼칸바루’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착각의 시작이었다.
편하게 오르는 길은 없다
차를 타고 볼칸바루를 오르다보면 승차감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사치인지를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4륜구동 차량 중에서도 특별히 힘이 좋고 바퀴가 높은 차들만 산을 오를 수 있다. 차가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기보다 산을 그냥 냅다 오르는 느낌이라고 할까? 물이 완전히 마른 계곡과 같은 곳을 거슬러 오르는 터프함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모든 코스를 도보로 시작한 일행을 만날 수도 있으며,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이미 늦은 시간 산행을 진행했는지 하룻밤을 보낸 텐트도 발견할 수 있다. 볼칸바루 등반이 잘 다져진 트래킹 코스가 아니기에, 또한 다른 이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지 않기에 사람이 붐비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도보로 등반을 시작하자 쾡한 어지럼증과 사방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찾아왔다. 어떤 이들은 돌연 코피를 쏟기도 했다. 3000m가 넘는 고지라는 것을 자연이 인간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전문 산악인들이 오르는 해발 고도의 절반에 올라 느끼는 고산병 증상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뼈져리게 느끼게 한다. 안정을 찾고 계속 걸어가자 커다란 십자가가 꽂힌 볼칸바루의 정상이 등장했다.
두 개의 바다를 가르는 절경에 서다.
정상에 꽂힌 십자가는 가톨릭 문화권의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가장 높은 곳에 십자가를 꽂아 산이 더 높아지지 말라는 토속적인 바람과 믿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해가 떠오르기 전 태양 빛에 여명이 밝으며 정상까지 채 이르지 못한 구름들이 파도와 같이 산허리를 휘감고 돈다. 이윽고 태양이 구름을 뚫고 떠오르고 옅은 안개가 부서지듯 구름이 산재하고 나면 시리도록 푸른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확히 어디가 태평양이고 어디가 카리브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곳으로 나뉜 두 개의 바다와 인간이라는 존재를 한 없이 낮출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장엄함은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장관이다. 여전히 등산 애호가는 아니지만 인간이 산을 오르려는 본능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고난 끝에 얻은 결실의 달콤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고난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올라온 만큼 다시 내려가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왕복간의 치열함을 통해 맛보는 짧은 황홀함이지만 숙연함과 겸손함 속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내가 섰다”는 자부심은 적어도 한 번은 느껴볼 만한 상당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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