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9000명·협력사 4603곳 생계 걸린 현금줄…위험관리인가, 숨통 조이기인가
| ▲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안수용 지부장이 13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홈플러스 전 점포 휴점에 대한 마트노조 입장 발표 기자회견 도중 정상화 대책 마련 및 사모펀드 규제 법안 신설을 촉구하는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삼성카드의 회생기업 대응이 다시 논란에 섰다. 홈플러스 회생절차 폐지 결정 직후 가맹점 대금 지급 보류를 통보했다가 홈플러스 측 반발 뒤 철회했다. 앞서 중앙그룹·JTBC 회생절차 신청 때도 법인카드 사용을 먼저 중단한 카드사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다. 위기에 빠진 기업 앞에서 삼성카드가 반복적으로 빠르게 빗장을 거는 모습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6일 입장문을 내고 “삼성카드 등이 오프라인 가맹점 대금 지급 보류와 상계 시행을 통보했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서울회생법원이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렸지만, 공고일로부터 14일 이내 즉시항고가 가능해 아직 최종 폐지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라는 게 홈플러스의 주장이다. 회생절차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카드사가 대금 지급을 보류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가맹점 대금은 대형 유통사의 핵심 현금흐름이다. 고객이 매장에서 카드로 결제하면 카드사는 일정 기간 뒤 가맹점에 대금을 정산한다. 이 돈이 막히면 상품대금, 임금, 임차료, 물류비 지급에 바로 차질이 생긴다. 홈플러스가 “카드대금 회수가 막히면 영업을 할 수 없다”고 반발한 이유다. 회생기업에 카드 정산은 단순한 회계 절차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시간 그 자체다.
홈플러스 문제는 한 기업의 부실로만 끝나지 않는다. 구조조정 이후에도 직접고용 인력은 90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와 배송기사, 입점업체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직간접 영향 인원은 최대 10만명 안팎으로 거론된다. 상품·용역 공급 협력사는 4603곳이고,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매출의 50% 이상을 홈플러스에 의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카드의 정산 보류가 단순한 금융거래 조치로만 읽히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카드는 고객 보호를 이유로 들었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카드 매출 취소가 급격히 증가했고, 물품·서비스 제공 중단이나 취소 불가에 따른 고객 피해를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가맹점 대금 지급을 보류했다는 설명이다. 이후 삼성카드는 매출 취소 추이가 안정세를 보였다며 7일부터 홈플러스 가맹점 대금을 정상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철회 여부보다 속도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확정되기도 전에 삼성카드는 먼저 대금 지급 보류 카드를 꺼냈다. 법원이 회생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판단하는 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삼성카드가 먼저 현금흐름을 틀어쥔 셈이다. 고객 보호 명분이 있더라도 회생기업 입장에서는 금융회사가 법원보다 먼저 사망선고를 내린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JTBC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중앙그룹 계열 JTBC가 회생절차를 신청한 직후 삼성카드 등은 법인카드 사용을 먼저 중단한 것으로 보도됐다. 법인카드 사용 중단은 앞으로의 비용 지출을 막는 조치다. 홈플러스 건은 이미 고객이 결제한 매출대금 지급을 보류하는 조치다. 돈을 못 쓰게 하는 것과 이미 번 돈을 못 받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삼성카드가 법을 어겼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카드사는 취소·환불, 포인트 정산, 미수금, 상계 가능성을 관리해야 한다. 고객이 돈을 냈는데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카드사도 민원과 손실 위험을 떠안을 수 있다. 금융회사가 부실 징후 기업을 상대로 손실 방어에 나서는 것은 계약과 리스크 관리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럼에도 삼성카드의 대응은 차갑다. 회생기업은 법원 절차 안에서 마지막 생존 가능성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현금흐름은 생명줄이다. 카드사가 먼저 빗장을 걸면 협력사와 임대인, 금융기관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인다. 삼성카드의 선제 조치가 시장 전체에 “이 회사는 끝났다”는 신호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삼성카드는 카드업계에서 보수적 리스크 관리로 평가받는 회사다. 자산건전성도 업계 상위권이다. 하지만 회생기업 앞에서 그 보수성은 칼날이 된다. 홈플러스와 JTBC 사례는 삼성카드가 부실 징후 기업에 대해 얼마나 빠르게 문을 닫는지를 보여준다. 금융회사로서는 빠른 대응일 수 있지만, 회생기업에는 조기 사망선고처럼 들릴 수 있다.
이번 논란은 삼성카드의 리스크 관리 방식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묻는다. 고객 보호와 손실 방어는 필요하다. 그러나 수천 명의 직원과 수천 개 협력사의 생계가 걸린 기업의 매출 정산을 먼저 막는 것은 다른 문제다. 회생기업을 살릴지 말지는 법원과 채권단이 판단할 일이다. 카드사가 먼저 돈줄을 죄면 그 판단은 절차가 아니라 현금 부족으로 끝날 수 있다.
회생기업 쪽에서는 이런 볼멘소리가 나온다. “수천명의 직원들과 수천곳의 협력사의 생계가 걸린 마당에 가장 먼저 계산기를 두드리고, 가장 먼저 칼을 빼 드는게 금융의 본질인가."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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