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악’만 범죄? 박근혜정부 ‘불통치안’

문화·라이프 / 유지만 / 2013-06-17 15:32:44
정부 ‘4대악 척결’ 성과 진단

▲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강력하게 추진했던 ‘4대악 척결’의 성과에 의문부호가 찍혔다. 4대악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강력범죄에 너무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 5월 열린 ‘4대악 척결을 위한 국민행복사업 설명 간담회’.

[토요경제=유지만 기자] 경찰이 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치안정책으로 역설한 ‘4대 사회악 척결’에 집중한 나머지 민생치안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불통 치안’ 비판에 직면했다. ‘4대 사회악(이하 4대악)’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을 가리킨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4대악 척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임기 초반 치안 정책의 무게 중심도 4대악에 쏠렸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검찰, 경찰,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유관 기관들은 정부 출범 100일 동안 ‘4대악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임 이성한 경찰청장은 취임 직후 전담팀을 꾸려 ‘4대악 척결’에 ‘올인’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정한 4대악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대우 탈주사건 장기화 등 치안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전주지검에서 탈주한 이대우는 서울에 잠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아직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고, 지난 4월 일어난 총기사고에 경찰이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2달째 감감 무소식이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4대악 뿌리 뽑으려다 치안이 무너질 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일선 경찰관은 “4대악 실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불량식품이나 학교폭력만 들여다보는 상황”이라며 “관할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등 경찰 내부에서도 개선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다”고 토로했다.


◇경찰, ‘4대악 잡기’에 총력

경찰은 정부 부처 중 가장 적극적으로 4대악 척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성한 청장은 지난 4월11일 전국 경찰지휘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정부 출범 100일이 되는 6월4일까지 4대악 척결에 경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경찰은 성범죄 관련 대책을 수립하고 17개 지방청에 성폭력특별수사대를 설치해 수사 인력 208명을 배치했다. 또 2015년까지 전국 250개 경찰서에 성범죄를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해 모두 879명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강력한 검거 활동도 뒤따랐다. 경찰은 지난 3월18일부터 성폭력 사범 일제검거 100일 계획을 세우고 대대적인 검거 활동을 벌였다. 4월에는 장애인 시설 1256곳과 특수학교 128곳을 방문해 성폭력 사범 13명을 검거했다. 또 성폭력 전과자 5000여명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해 신상정보 변경 미제출자 등 법률위반자 200여명을 잡아들였다.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들도 잇따라 내놨다. 전국의 초·중·고교에 학교전담경찰관(스쿨폴리스) 167명을 증원해 기존의 514명에서 681명으로 늘렸다. 가정폭력 전담경찰관도 137명 확보해 대형 경찰서 위주로 우선 배치했다. 경찰은 향후 전국 249개 경찰서 마다 1명의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4대악에 ‘올인’, 문제는 없나?

경찰은 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4대악 척결에 모든 조직의 역량을 집중했지만,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혼란도 빚어졌다.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상부로부터 내려온 실적의 압박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상태다. 서울 시내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불량식품 업자를 단속하느라 다른 수사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불량식품 단속은 경찰 뿐 아니라 상인들에게도 원성을 샀다. 경찰과 식약처, 특별사법경찰대 등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재래시장으로 몰리면서 영세 상인들만 단속의 철퇴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식품상을 운영하는 A(32)씨는 “처음에는 하루에도 3번씩 단속을 나와서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불량식품 단속이 당초의 취지에 맞지 않게 영세 상인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 4월 뒤늦게 지침을 변경해 대규모 제조·유통 사범으로 단속 대상을 한정하기도 했다.

4대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각종 태스크포스(TF)와 특별수사팀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시하는 경찰관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은 김용판 청장 취임 후 서울 시내 각 경찰서에 ‘주폭(음주폭력사범)’ 전담팀을 만들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하지만 주폭 수사팀은 김 청장 퇴임 이후 정책 추진 동력이 사라지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형사과에서 수사를 담당하면 되는데도 주폭 수사팀을 따로 놔두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다. 일부 현장 경찰관들은 “4대악 척결 전담 조직들도 사회적 이슈가 바뀌게 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 4대악 외 사건·사고 잇따라

경찰이 4대악 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잇따른 각종 사건사고도 국민 불안을 가중시켰다는 평가다. 지난 4월에는 서울과 대구, 충남 천안 등에서 총기류와 모의 총기에 의한 사고가 잇따랐다. 당시 경찰은 불법무기 유통을 차단하고 총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종합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경찰이 불법 무기류와 관련된 대책은 없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피의자 도주 사건도 경찰로서는 뼈아프다. 지난달 20일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탈주한 이대우는 20일 가까이 잡히지 않고 있다. 이대우는 지난달 26일게 서울에 잠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아직 이대우의 소재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찰은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4대악 척결 활동을 홍보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 청장은 이대우가 서울에 잠입한 뒤에도 강원, 인천 지역 등을 방문해 4대악 관련 간담회와 특강 일정 등을 소화했다. 경찰은 이대우 도주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경찰이 4대악 홍보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 출범 100일인 지난 4일에는 오히려 조용히 행사를 치렀다.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열린 ‘4대 사회악 근절 100일 추진상황 점검 및 향후 과제 관련 토론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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