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추천도서] 만주족의 역사

문화·라이프 / 이완재 / 2013-04-08 09:20:22
청 제국의 건설자 만주족의 흥망성쇠 한권에

[토요경제=이완재 기자]『만주족의 역사─변방의 민족에서 청 제국의 건설자가 되다』는 동북아시아의 문화 전통을 계승해온 만주족의 기원과 정체성, 그리고 흥망성쇠의 역사를 다룬다. 만주족은 중국 동북 지역, 시베리아와 한반도 북부 지역 등에서 말갈(靺鞨), 물길(勿吉), 여진(女眞) 등으로 불리다가, 17세기 왕조의 건설과 함께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신들을 ‘만주’(滿洲)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북아시아 변경의 맹주로 군림하다가 누르하치에 의해 중원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 그리고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 제국의 지배자가 됨으로써 중국사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책은 오래전에는 ‘야만인’(서구에서는 ‘타타르’로 잘못 알려짐), ‘오랑캐’ 등으로 업신여김을 당하다가 청 제국을 건설하였지만 결국 중국을 멸망시킨 원흉으로 지탄받았으며 20세기에는 한족에 의해 모진 핍박을 받은 만주족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동북아시아의 문화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는 만주어로 된 사료에 더해 조선왕조의 사료인 신충일이 쓴 『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에 주목한다. 『건주기정도기』는 16세기 말엽(1595~1596) 누르하치가 여진족 부족들을 복속시키면서 요동 지역의 우두머리로 군림하게 되는 상황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어, 청조 건설의 태동기를 엿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신충일은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어디에서나 여진족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중국의 동북 변경이 명조의 세력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징후를 감지한다. 또한 누르하치의 본영에 도착해서 누르하치를 만나고, 연회에 초대되어 그들과 어울리게 되는 사건까지를 꼼꼼하게 기록한다. 통상적으로 역사가들은 청 제국의 군사ㆍ사회 조직인 팔기(八旗)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사기(四旗)의 등장을 1601년으로 보고 있으나, 신충일의 관찰에 따르면 1595년에 이미 기 조직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누르하치가 외출할 때 백여 명의 기마병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그 기마병들이 황색ㆍ청색 등의 색깔을 띤 깃발을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르하치와 동생 슈르하치의 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흥미로운 기록을 남기고 있어 관심을 끈다. 공식적으로 누르하치와 슈르하치는 모두 ‘버일러’(족장, ‘주’〔主〕라고 번역할 수 있음)이고 공동 통치자였다. 하지만 신충일은 누르하치와 슈르하치 간의 위상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집이 나란히 있지만 남향을 하고 있는 집은 누르하치의 집이었다는 점, 몽골족 왕자들로부터 고두(叩頭)의 예를 받는 인물이 슈르하치가 아닌 누르하치였다는 점 등을 간파하고 있으며, 신충일이 누르하치만을 만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슈르하치가 신충일에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사실을 통해서 둘 간의 관계에 내재된 긴장감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신청사 학파가 만주어로 된 사료를 보기 시작한 것은 한어(漢語)로 된 사료에는 인위적인 왜곡과 누락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주어 사료들은 청 제국 건설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사실(史實)을 조작하거나 과장하는 등의 문제를 지니기도 한다. 만주족의 역사를 해명하는 데 조선의 문헌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건국 이전부터 여진족과 활발히 교류를 해왔으며 연행록(燕行錄) 등을 통해 만주족의 실상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살펴온 우리 민족의 기록이 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창(窓)이 되고 있다.

만주족의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반도 고대 왕국의 조상이라고 알려진 부여와 발해의 구성원인 말갈(靺鞨)과 물길(勿吉) 등이 모두 여진족의 조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공유되고 있는 문화 가운데, 만주족 문화의 기원을 형성하고 있다고 저자에 의해 제기된 종교지도자 ‘샤먼’shaman과 샤머니즘은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뿐 아니라 한반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만주족의 초기 역사는 분명 한반도의 역사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 점을 과장하여 만주족과 우리 민족을 동일시하고 그리하여 한국 민족이 만주 지역과 중원을 제패했다는 식의 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의 관점을 취해서도 곤란하겠지만, 고대 한반도의 역사를 해명하는 데 있어 만주족의 위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조선의 사대부들이 여진족 또는 만주족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가령 누르하치의 본영을 방문한 신충일과 박지원을 비롯한 연행록 작가들은 만주족을 분명 타자화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만주족과의 고대적 연계성을 상실하고 한족의 시선으로 만주족을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이 중국사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스스로를 어떠한 위치에 배치하고 싶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한반도 북부 지역의 역사와 교집합을 이루다가 어느 시점에서 분리되어버린 만주족의 역사를 살피는 것은 한반도의 문화와 관습을 잊혀진 대륙의 역사와 연결시키는 일이며, 동북아시아의 문화 원형을 상기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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