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왕이 되려면 스스로 쌓은 덕이 있어야

문화·라이프 / 정해용 / 2015-02-16 09:07:47
91. 초 평왕 기질

▲ 정해용 시인
토요경제 상임논설위원
同惡相求 如市賈焉 동악상구 여시가언


같은 것을 미워하고 같은 것을 소망함이 장사꾼들이 이익을 좇듯 (楚世家, 左氏傳)


초나라 사람들이 영왕을 미워하여 새 왕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결 같았음을


간계에서 군사를 잃어버린 초 영왕이 산속을 헤매다가 죽었지만, 도성인 영도는 아직 어수선했다. 자비(比)가 돌아와 새 왕이 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영왕이 죽었는지 확인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는 또 이런 혼란을 주도적으로 수습할만한 지혜나 용맹도 갖고 있지 못했다. 영왕이 살아있다 죽었다 하는 소문이 들릴 때마다 신하들과 백성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불안해 했다. 비와 기질 사이에 누가 실세인가 하는 수군거림도 있었을 것이다.


관종이 초왕 자비에게 은밀히 말했다. “기질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장차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는 ‘차마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실망한 관종은 곧 비의 곁을 떠났다.


공자 기질이 귀국해 오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밤마다 ‘영왕이 돌아온다’며 불안에 떨었다. 밤에 강을 오르내리며 “영왕이 돌아왔다!”고 외쳐 민심을 소동시킨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기질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기질의 수하인 만성연이라는 사람이 먼저 도성에 들어와 왕인 비와 그의 아우인 자석에게 거짓말을 했다. “영왕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군사들은 영왕을 맞아들이기 위해 임금님과 사마를 죽일 것입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치욕을 당하실 것이니 먼저 도모하소서.” 비와 석은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직후에 기질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성하여 왕위에 올랐다. 그가 평왕이다.


초 평왕은 속임수로 세 명의 형을 죽이고 왕좌에 올랐으므로 민심을 얻기 위하여 유화책을 썼다. 정복했던 진(陳)과 채(蔡)나라를 회복시켜 주고 영왕이 빼앗은 정나라 땅도 돌려주었다. 내정은 온화하게 하고 각종 은전을 베풀어 안정시켰다. 영왕을 몰아내는 데 공이 컸던 관종은 그가 원하는 대로 복윤(卜尹)이 되었다.


처음에 진(晉)으로 망명했던 비가 귀국하기 위해 채나라로 출발했을 때, 진나라의 대부 한선자는 현인 숙향에게 “공자 비가 과연 성공할까요?”하고 물었다. 숙향은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선자가 물었다. “지금 초나라 백성들은 모두 영왕을 싫어하며 새 왕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장사꾼들이 이익을 따라 몰려드는 것과 같니다(同惡相求, 如市賈焉). 그런데 왜 비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보십니까.”


숙향이 대답했다.


“나라를 얻는 데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나 현명한 인물이 없으면 안됩니다(有寵無人). 둘째, 인물이 있더라도 중요한 지지기반이 없으면 안 됩니다(有人無主). 셋째, 지지기반이 있더라도 전략이 없으면 안 됩니다(有主無謀). 넷째, 전략이 있더라도 백성의 호응이 없으면 안 됩니다(有謀而無民). 다섯째, 백성이 호응하려 하더라도 스스로 덕을 쌓은 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有民而無德). 비는 진나라에 13년이나 머물렀는데, 진이나 초나라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적고, 있더라도 학식이 높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가족이 없고 친척과 친구들이 그를 배반했으니 중요한 지지기반이 없는 것이며, 때가 되기 전에 정변을 꾀하니 전략도 없습니다. 팽생 외국에 있어서 호응해줄 백성도 없고, 그 사이에 알려진 덕행도 없습니다. 비록 초나라 사람들이 새 왕을 원한다 하더라도 비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새 왕이 된다면 아마도 기질이 가장 유력할 것입니다.” 과연 숙향이 바라본 그대로였다.


숙향은 비가 떠난 뒤에 또 말하기를 “자비는 백성들에게 이익을 준 적이 없고, 밖에서 후견하는 나라도 없으며, 진나라를 떠날 때 진나라에서 호위해주지 않고 초나라에 들어갈 때 초나라에서 환대하는 사람이 없으니, 초나라를 향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야기 PLUS


초나라의 강왕 자위(영왕) 자비(초왕) 자석 기질(평왕)은 모두 공왕의 아들들이다.


맏아들인 강왕이 후계자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다 죽은 후에 자신의 아들 겹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지만 자위가 곧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그가 오만한 정치로 백성을 고달프게 하며 전쟁을 일삼자 나머지 동생들이 연합하여 그를 몰아내고 차례로 왕이 되었다. 공왕의 다섯 아들 가운데 네 사람이 왕이 되었는데, 그 과정마다 처참한 피의 살육이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초나라 공왕은 다섯 아들들의 미래를 알기 위해 점을 쳐보았다 한다.


전국의 천지신명에게 두루 제사를 지낸 후에 사당에 몰래 옥벽(玉碧)을 묻어놓고 사당 안에 순서대로 들어가게 하였다. 첫째인 강왕은 묻어놓은 옥벽을 건너뛰어 들어갔고, 둘째인 위는 팔꿈치를 옥벽 위에 올려놓았으며, 비와 석은 옥벽에서 멀게 돌아 들어갔다. 기질은 아직 나이가 어렸으므로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절하여 옥벽의 중심을 내리누르는 형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왕은 무사히 등극하였으나 아들 대에서 왕위를 빼앗겼고, 위는 스스로 왕위를 빼앗아가졌으나 살해되었고, 비는 10여일 왕위에 앉았을 뿐이며 석은 왕이 되어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마지막으로 공자 기질만이 후에 등극하여 초나라 종묘사직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이것이 다 신령의 계시 때문이라고들 여겼다.


비(比)는 백성들에게 이익을 준 적이 없고, 밖에서 후견하는 나라도 없으며, 진나라를 떠날 때 진나라에서 호위해주지 않고 초나라에 들어갈 때 초나라에서 환대하는 사람이 없으니, 왕위를 향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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