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추천도서]“마침표가 아닌 쉼표…<힐링>”

문화·라이프 / 서승아 / 2014-03-12 13:28:26
힐링 (박범신 지음 / 열림원 펴냄)

[토요경제=서승아 기자]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주인이 된 문장.

“누가 듣거나 말거나, 길 위에서 혼자 중얼거린 말들의 집합이에요. 소설은 밀실의 내 고유한 책상에 돌아가 앉아 쓰지만 여기 모인 말들은 천지사방 열린 길 위에서 쓴 것들이니 소소할는지 몰라요. 소소한만큼 더 진실하고 예쁠지도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주인이 된 문장들이라고.”(‘길 위에서’ 중)


▲<힐링> 박범신 지음, 열림원 펴냄


작가 박범신(67)이 고향인 충남 논산에서 3년 간 머물며 써내려간 짧은 글을 모은 ‘힐링’을 펴냈다. 벽에 그린 낙서처럼, 시 한 수 읊듯이, 이야기하듯이 또는 대화하듯이 적은 글들이다.

그래서 짧지만 강렬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꿈과 희망을 건네는 잠언과도 같이 다가오고 작가와 술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기분이 들게도 한다.


힘 있으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듯한 <힐링>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모두에게 위안과 휴식이 되는 글들을 담고 있으면서, 문장 마디마디 속에서 소리 없이 맹렬한 소통의 장이 펼쳐지고 있는가 하면 이해와 긍정, 회복의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한다.

또한 작가의 일상과 향기로운 소통의 간절함이, 하루하루 시시때때로의 단상을 적은 글들과 더불어 나란히 실은 사진들 속에 들여다보인다.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빈 집”,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현판이 붙어 있는 논산집 풍경이며, 탑정호의 잔잔한 물결, 작가의 서재 그리고 그 안으로 비쳐드는, 작가의 오후를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것 같은 햇살, 그 모두가 작가 박범신이 말하는 희망과 행복, 소통과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언뜻, 대작가의 소소한 일상이 묻어 있는 글이 한편으로는 쓸쓸하게 다가기도 한다. 그러나 불현듯 삶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실감하게 하는 글귀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힐링’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위안과 휴식이 되는 글이 주다.

“내가 서툰 건 나 자신에 대한 ‘힐링’이다. 자기연민, 아니면 자기를 용서하지 않는 것, 그 사이에 낀 나를 보는 건 괴롭다. 젊을 때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뒤끝이 긴 게 내 장점인 줄 알았다. 세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진실로 너그러워지려면 자신에게 먼저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92쪽)

결국 책 속의 글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나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박씨는 “사랑이 가장 큰 권력”이라고 한다. 고통과 외로움의 신랄함에 빠질지라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단한 울타리가 버팀목이 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비우는 것이야 말로 행복의 문”이라며 욕망을 쫓으려는 마음과 욕망을 내려 놓으려는 마음,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끝’이라고 쓰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한 박씨는 모든 관계에서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기에, 그는 영원히 갈망하는 것에 대해 아름다움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거울 본다. 어떤 머리칼은 검고 어떤 건 희다 옳거니, 내 영혼도 일부는 노인 일부는 청년이다. 예쁘게 늙어가려면 이 두 가지를 잘 버무려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바라노니 향기롭고 단아한 품격을 갖되 섹시한 감성 유지한 채 늙고 싶다. (63쪽)’

‘자기변혁에의 욕망이 남아 있다면 팔순이라도 청춘이고 자기변혁에 대한 아무런 욕망도 없이 인도만을 쫓아 걷고 있다면 스물이라도 노인이다. (143쪽)’

‘생은 걸어서 별까지 가는 것’ 그의 필력은 중장년에 마음을 읽은 듯하고 솔직 담백하며 작가와 독자간 일체감을 느끼게한다. 그렇다고 청춘에게도 소홀하지 않는, 청년작가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는 작가이기도 하다. 작은 울림이 있는 박씨의 글에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작가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던 것이다.

‘울지 않으니 화내지 않으니 말하지 않으니 네가 아픈 거야.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려워 네가 한사코 감정을 감옥에 가두는 걸 보면 가슴 아파. 생은 생각보다 짧거든. 슬프다고 화난다고 내 가슴 뜨겁다고 말하고 살아. 그게 웰빙의 삶이야. (82쪽)’

‘내가 서툰 건 나 자신에 대한 ‘힐링’이다. 자기연민, 아니면 자기를 용서하지 않는 것, 그 사이에 낀 나를 보는 건 괴롭다. 젊을 때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뒤끝이 긴 게 내 장점인 줄 알았다. 세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진실로 너그러워지려면 자신에게 먼저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92쪽)’

‘위대한 삶의 전범을 보여준 스콧 니어링은 늙어 일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단식해 죽고자 했다고 한다. 내게 아직 남은 자신감이 하나 있다면 어떤 힘든 일도 힘들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힘들기 때문에 모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노동이 즐겁다. 노동은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노동이 두렵지 않다면 삶도 두렵지 않다. (168쪽)’

“사는 건 오랜 병”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병이라서 힘들지만 병이라서 우리가 산다.
열정은 삶의 병을 이기기 위한 면역력 같은 것이다. 병이 아니라면 삶의 경이로움도 없다. (357쪽)’

“사랑은 큰 권력”이라고 말하는 박씨는 고통과 외로움에 처해있는 독자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면서 사랑이 세상을 향해 독자에게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이 책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다정다감한 문체로 일관되어 있으며, 논산 탐정호에 지내는 작가의 고독도 물빛을 띠고 있어 그래서 아름다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한권이 주는 의미는 적어도 독자에게 만큼은 특별하다 말 할 수 있겠다. 이젠 스마트 폰을 놓으란 소린 못하겠다. 대신, 중독된 스마트폰을 이 책 위에 올려놓고 지치고 힘들 때 한 번 펼쳐 보란 소릴하고 싶다.(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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