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추천도서]나치즘과 동성애

문화·라이프 / 이완재 / 2013-11-18 15:14:44
독일의 동성애 담론과 문화 상세하고 생생하게 분석

김학이 저, 560쪽, 3만원, 문학과지성사


나치시대, 동성애 해방운동.정치 상세하게 분석하고
동성애자들의 일상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토요경제=이완재 기자] 동성애를 통해 나치 국가를 읽는다. 나치즘과 동성애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히틀러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왜 모호한 태도를 취했는가? 나치 치하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천연덕스럽게 만나 화려한 파티를 열며 그들만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까닭은?

이 책은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 시기에 출판된 수많은 책과 신문 기사, 동성애자들의 수기, 게슈타포의 수사기록, 법원의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당시의 동성애 해방운동, 정치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동성애자들의 일상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를 통해 나치즘과 동성애는 어떤 관계였는지, 나치 체제는 어떤 성을 생산해내려고 하였는지, 그리고 나치는 과연 어떤 국가였는지를 탐문한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시대 전문가인 김학이 교수의 첫 저작으로, 문학과지성사 ‘현대의 지성’ 151권.


◇바이마르공화국부터 나치 체제까지

동성애를 ‘국가의 적’으로 선언하는 등 동성애에 대한 나치의 공식 입장은 지극히 부정적이었지만 히틀러는 나치 돌격대 수장 에른스트 룀을 비롯한 나치 내 동성애자들에 대해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1890년대부터 1945년에 이르는 시기의 독일의 "성," 특히 동성애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나치즘과 동성애는 어떤 관계였는지, 나치 체제는 어떤 성을 생산해내려고 하였는지,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는 과연 어떤 국가였는지를 탐문한다.

20세기 전반기 독일에서 성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성애 연구서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으며, 베를린에만 19개나 되는 성상담소가 있었다. 성은 과학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다. [나치즘과 동성애] 1부에서는 당대 신생 학문이었던 ‘성과학’에서 도착적인 성들, 특히 동성애가 어떻게 이야기되었는지를 규명한다. 성과학에는 많은 학자들이 뛰어들었는데, 이 책에서는 성과학을 정초한 학자이자 의사인 리하르트 크라프트에빙과 동성애 해방운동을 개시하고 주도한 동성애자 의사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극우적인 동성애론을 제창한 문필가 베네딕트 프리들랜더에 주목한다. 이들은 각각 부르주아적인 성, 민주적·아나키즘적인 성, 파쇼적인 성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1890년대에서 1932년까지 국가가 동성애를 어떻게 처벌했고 동성애 해방운동은 어떻게 이의를 제기했으며 의회와 정당은 그 주장을 어떻게 논의했는지 검토하고, 동성애자 대중 조직 ‘인권동맹’의 기관지 [인권]을 통해 동성애자 운동의 양상과, 동성애자들은 어떤 직업,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자신의 성을 어떻게 규정했으며 그 규정에 성과학의 어떤 주장이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었는지 살펴본다. 또한 동성애자들이 성과학자들에게 보낸 자서전적인 편지와 르포 형식의 저술 및 저널 기사를 따라 읽으며 동성애자들의 하위문화를 분석하여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엿보는 동시에, 그 양상이 동성애 해방운동 및 성과학의 주장과 어떤 면에서 일치하고 어떤 면에서 어긋나는지 주목한다.


◇나치즘과 동성애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룀처럼 몇 년 동안 열대에서 산 사람들의 동성애는 다르게 보아야 해요. 당신을 위해서는 군부와 연줄이 닿아 있는 룀이 소중합니다. 비밀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나는 그의 사생활에 아무 관심도 없어요."―히틀러

3부에서는 나치즘과 동성애의 미묘한 관계를 살펴본다. 나치에게 동성애는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나치는 동성애에 대한 가차 없는 투쟁을 선포했지만, 나치당의 행동조직인 돌격대의 수장 에른스트 룀이 동성애자였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룀을 비롯한 나치 내 동성애자들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 책은 나치 집권 이전에 룀의 동성애가 나치당 내외에 일으킨 파장을 통하여 나치와 동성애에 대한 관계를 탐문하고, 나치 시대의 대표적인 성 이론가 두 명의 동성애론을 검토한다. 그런데 나치즘과 동성애의 관계가 간단치 않았던 것은 나치 내에 동성애자 몇몇이 속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치는 그 자체 여성이 배제된 남성 전사들만의 공동체라는 "남성동맹"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한 운동이었다. 영혼마저 하나가 되는 남성들만의 단일대오라는 특징은 집권 이전만이 아니라 집권 이후에도 나치즘을 규정했다. 따라서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된 후 나치의 동성애 정책은 인구 증가를 목표로 한 생명 정책과 "남성동맹"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의 긴장 속에 있었다. 게다가 히틀러는 인구 증가와 도덕성 회복을 고집하던 보수 세력과 함께 집권했다. 그리하여 히틀러 정부는 ‘히틀러운동’ 내부의 긴장과 보수 동맹 세력과의 긴장이라는 이중적인 문제 상황에 봉착했다. 이 책은 그 긴장 속에서 나치 동성애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고 또 변화하는지 주목한다. 저자는 독일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낸 게슈타포의 수사파일을 분석하여, 일선 게슈타포 경찰관이 동성애자를 어떻게 검거하고 기소하고 거세하고 수용소에 보냈는지, 그리고 판사는 얼마만큼의 형량을 부여하였고 판사의 판결문에 어떤 성 개념이 펼쳐졌는지 살피면서 나치 국가의 성격을 가늠하는 한편, 나치 치하 동성애자들의 일상을 재구성한다.


◇전체주의 체제에서조차 삶은 약동하고 있었다

저자 김학이는 "역사학은 이론과 논리적으로 대결하는 게 아니라 이론에 유념하면서 경험을 뒤지는 작업"이라고 말하며, 당대의 일상, 즉 구체적인 경험들을 통하여 ‘이론으로서의 역사’가 아닌 ‘삶으로서의 역사’를 마주 보여준다. 그는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 시기에 출판된 책들과 신문 기사, 팸플릿, 동성애자들의 수기, 기록보관소의 게슈타포 수사기록, 법원의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당시의 동성애 해방운동, 정치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동성애자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재구성해 그려낸다. 이를 통하여 그 시대에 뿜어져 나왔던 ‘말’들 사이의 간극이, 체제의 틈새가, 그리고 그 틈새 사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 시기에 대한 수많은 논문들을 발표하고 여럿 중요한 해외 연구서들을 번역, 소개해온 저자가 오랜 시간 묵직한 질문을 품고 당대의 자료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완성해낸, 학문적 깊이와 밀도를 갖춘 연구서이자 문학 작품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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