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과 월드컵, 그 끈질긴 인연

문화·라이프 / 토요경제 / 2010-06-21 09:14:06
사령탑 대신 월드컵 해설가…모든 짐 내려놓고 마이크 잡다

프로축구 수원삼성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차범근 감독(57)이 전격적으로 2010남아공월드컵을 단독 중계하는 SBS의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지난 2002한일월드컵을 시작으로 2006독일월드컵에서도 해설했던 차범근 감독은 익숙했던 MBC가 아닌 SBS에서 새롭게 해설을 하게 됐다.
감독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며 본인 스스로 이번 월드컵에서의 해설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던 차 감독이지만, SBS의 계속된 설득에 결국 그는 3개 대회 연속 마이크를 잡게 됐다.


울고 웃었던 수원에서의 7시즌


차범근 감독이 해설자로 변신하게 된 데는 전 소속팀 수원의 부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팀을 떠나게 된 이후 월드컵 해설을 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이어졌지만, 소속 팀이 부진한 가운데 팀을 떠나 월드컵 해설을 한다는 것은 팬들에게 좀처럼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팀을 떠나는 차 감독은 곧바로 해설자로 변신을 꾀하게 된 모습이었지만, 수원에서의 차 감독은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던 지도자였다.
수원의 초대 지휘봉을 잡았던 김호 감독(66)에 이어 2003년 12월에 수원의 2대 사령탑으로 취임한 차 감독은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팀을 이끌며 2010시즌까지 포함해 7시즌 동안 K-리그 우승 2차례, 컵대회 우승 2차례, FA컵 우승 1차례 등 수원을 K-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끌어 올리는데 공헌했고 전성기를 이뤄냈다.
차 감독은 부임 첫해인 지난 2004년 단숨에 수원을 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과거 울산 호랑이축구단(현 울산 현대), 국가대표팀(1998프랑스월드컵) 사령탑 당시의 불운을 날리며 스타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듬해 컵대회와 슈퍼컵 우승에 이어 2006년에는 리그와 FA컵에서 준우승도 이끌었다.
지난 2007년에는 수원의 K-리그 최단기간 200승을 달성하는데 기여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수원을 각각 리그와 FA컵 정상에 올려 놓았다.
2009년을 앞두고 주축선수였던 이정수(30), 조원희(27), 마토(31) 등이 대거 팀을 떠나 리그 10위로 부진했던 수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강민수(24), 염기훈(27)을 영입하고 위건 애슬래틱에서 조원희를 임대해 전력 보강에 나섰지만 또 다시 하위권에 머무르고 말았다.


차범근과 월드컵, 그 끈질긴 인연


사실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과의 인연이 썩 좋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선수시절에도 딱 한번 월드컵 무대를 밟는데 그쳤을 뿐 아니라 지도자로서도 중도경질이라는 불명예를 맛봤던 기억 때문이다. 유럽무대를 호령하던 그는 월드컵에서는 자신의 기량을 완벽하게 살려내지 못했고, 두 번의 월드컵은 모두 그에게 영광을 안기지 못했다.


현역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무서운 활약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드높였던 그는 1986멕시코월드컵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멕시코월드컵 당시 한국은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와 함께 A조에 편성돼 어려운 경기가 예상됐다.


1982스페인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 참가할 뻔했던 차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참가하지 못한 이후 4년 뒤 멕시코 대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 사상 첫 월드컵 출전이라는 감격을 맛봤다. 비록, 오랜 해외생활로 인해 호흡 면에서 완벽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월드컵 출전의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12년이 흐른 뒤 ‘선수’ 차범근은 어느새 ‘감독’ 차범근으로 변신해 또 한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다. 차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은 ‘숙적’ 일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에서 이민성의 통렬한 중거리슈팅이 골 망을 흔드는 이른바 ‘도쿄대첩’을 통해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본선에서 멕시코와 네덜란드, 벨기에와 한 조에 속한 한국은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내리 3골을 내주며 역전패를 당한데다 2차전에서는 네덜란드에 0-5 대패를 당했고, 대한축구협회는 대회 중 감독 경질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모두의 눈이 월드컵에 쏠려 있는 사이 차 감독은 쓸쓸히 짐을 꾸려야 했다.


모든 짐 내려놓고 마이크 잡다


차범근 감독이 해설위원을 시작한 것은 2002한일월드컵부터였다. 프랑스월드컵 이후 중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부적절한 발언으로 자격정지 5년의 징계를 받는 등, 야인생활을 했던 차 감독은 2002한일월드컵을 앞두고 MBC의 해설자로 변신,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해설가로서 시청자들의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던 그는 징계가 풀린 뒤에는 K-리그 수원의 감독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6독일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던 아들 차두리(30·프라이부르크)와 함께 풍부한 독일에서의 경험을 살려 MBC의 월드컵 시청률 1위를 지켜내는데 큰 힘을 더했다. 이후 2008년에 수원의 2관왕을 이끌며 지도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했던 그는 주축선수들의 연쇄 이탈로 2009년에는 리그 10위에 그쳤고, 올 시즌 역시 하위권을 전전한 탓에 결국 모든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다시 한 번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된 그는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축구 해설가로 다시 변신을 선택했다. 자진사퇴 기자회견 당시에 그는 “당분간 쉬고 싶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지쳐있어 중계를 잘 할 자신이 없다. 국민들께 최선의 방송을 제공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설 제의를 고사하는 듯했지만 결국 SBS의 끈질긴 설득에 다시 마이크를 잡기로 했다.
“월드컵이 축구의 대축제인데 부족하지만 뭔가 도움이 되고자 했다”며 해설자 복귀를 신고한 차 감독은 “해설을 통해 우리 축구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상당히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결정을 하고 준비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상당한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한국 축구의 영웅’ 차 감독은 자신을 둘러쌌던 모든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왔다. 김병지, 박문성, 장지현, 김동완 등 든든한 동료 해설진이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 비록 불명예스럽게 그라운드를 떠난 차범근 감독이지만, 2010남아공월드컵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축구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되찾을 수 있기를 모든 축구 팬들은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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