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물속에서 들려온 한밤중 거문고 소리

문화·라이프 / 정해용 / 2015-02-02 11:23:28
89. 진(晉)평공-미미지악

▲ 정해용 시인
토요경제 상임논설위원


先王之樂 所以節百事也 선왕지락 소이절백사야


선왕들의 즐거움은 모든 일을 절제하는 데 있었다. <春秋左傳>


진(秦)나라 의사가 진(晉) 평공의 병은 여색을 절제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면서


오나라 계찰이 진(晉)나라에 들렀을 때 재상 숙향에게 “장차 정권이 조한위(趙韓魏) 세 가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삼진(三晋)이라 불리는 세 가문은 뒤에 각자 제후로 독립하여 세 개의 제후국으로 나뉜다. 나라의 분열은 제후의 권력이 허약해져 초래되는 것인데, 진 평공 시기에 그 조짐은 확연해졌다.


진나라는 본래 강국이었으므로 별다른 걱정거리가 없었다. 제후가 마음먹기 따라서는 좀 더 강대한 국가를 만들 수도 있었고, 개인의 호화사치나 누리면서 흥청망청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공은 만년에 환락에 빠졌다. 아무런 제어장치도 없는 호화사치를 즐겼으므로 제후의 권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제 경공의 대부 안영이 사신으로 진나라에 왔을 때 대부 숙향은 나라걱정을 털어놓았다.


“진나라는 이미 쇠하고 있습니다. 군주는 조세를 많이 거두어 누각과 연못을 만들며 정사는 돌보지 않아서 마침내 나라의 권력은 세도가들의 손에 들어가 있으니 어찌 오래 갈 수 있겠습니까.” 진 평공과 관련해 <한비자>는 다음의 일화를 전하고 있다.


위(衛)나라 영공이 즉위한 후에 진나라를 예방했다. 국경을 지나며 강가에서 유숙하는데, 한밤에 어디선가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렸다. 시종들에게 그 소리를 들었느냐 하니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영공이 악사인 연(涓)을 불러 말했다. “내 분명히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무도 듣지 못했다 하니 이는 귀신 비슷한 것이로다. 나를 위해 자세히 듣고 곡을 베껴보라.” 연이 단정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다음날 악사 연이 말했다. “신이 곡조를 들었나이다. 하오나 미처 다 익히질 못했습니다. 하루 더 묵으며 익히기를 청하옵니다.” 영공이 허락했다.


그날 밤으로 연은 귀신의 음악을 익혔다. 영공이 다시 길을 떠나 진나라에 도착했다.


연로한 진 평공은 젊은 이웃나라 제후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밤에 연회가 펼쳐졌을 때 위 영공이 말했다. “제가 오는 길에 물가에서 새로운 음악을 얻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저의 악사로 하여금 연주하게 할까 합니다.” 평공은 기꺼이 연주를 청했다.


악사 연이 거문고를 당겨 앉아 새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진나라 악사인 광(曠)이 그 곁에 앉았다. 곡은 애절하면서도 끈끈하게 심금을 울렸다.


음악이 길어지자 광이 중간에 연주를 그치게 하며 말했다. “이 음악은,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망국의 소리(亡國之音)입니다. 더 이상 들어서는 안 됩니다.” 두 제후가 놀라서 물었다. “이 음악을 아시오? 무슨 음악인데 그러오?”


광이 말했다. “이 음악은 옛날 은나라의 망군 주왕(紂王)을 위하여 연(延)이라는 악사가 만든 미미지악(靡靡之樂)입니다. 무왕께서 주왕을 칠 때에 연은 동쪽으로 달아나 강물에 투신했으니, 이 노래를 들은 곳은 반드시 그곳이었을 것입니다. 이 음악을 듣는 사람은 나라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평공은 ‘내가 좋아하는 음이니 마저 연주하라’고 독촉했다. 연이 남은 부분을 마저 연주했다.


“슬프도다. 이보다 슬픈 음악도 있는가?” 광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니 평공은 그것을 연주하라 했다. 광은 또 만류했다. “주군의 덕으로는 감당키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평공이 고집하므로 광이 거문고를 탔다. 한번 연주에 검은 학 열여섯 마리가 날아와 목을 빼어 울며 춤을 추었다.


“이보다 슬픈 음악은 없을 것이다” 평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광이 말했다. “오랜 옛날에 황제(黃帝)가 듣고 귀신을 불러들였다는 음악도 있습니다만, 주군은 들으실 수가 없습니다.”


평공이 말했다. “나는 이미 늙어서 죽음도 두렵지 않다. 세상에 존재한 모든 음악을 듣고 싶으니 제발 그것도 들려다오.” 광이 하는 수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한 번 연주에 흰 구름이 북쪽으로부터 몰려오고 두 번 뜯으니 비바람이 몰려와 연회장의 기왓장이 모두 날아갔다. 평공이 두려워 마루 밑에 엎드렸다. 이로부터 진나라는 삼년이나 가물어 국토가 벌겋게 되었다. 전설 같은 얘기다.


이야기 PLUS


역시나 전설이겠지만, 진 평공이 함부로 살았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가 <좌씨전>에 전해온다. 형공이 몸이 쇠하자 진(秦)나라에 청하여 의사를 불러왔다. 섬진의 명의 화(和)가 와서 진찰하고 말했다. “이 병은 지나치게 여색을 탐하여 생긴 병이니 나을 수 없습니다. 귀신에 홀려 생긴 것도 아니고 음식 때문도 아니고 의지를 잃어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인가?” 평공이 묻자 화가 대답했다. “절제가 필요합니다. 선왕들은 모든 일에 절제를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음탕한 음악은 마음의 귀를 막아 평화를 잃게 하는 것이므로 군자는 듣지 않았습니다. 군자가 금슬(琴瑟=비파와 거문고, 부부의 금슬을 상징)을 가까이 할 때는 절제하는 태도로 하며 방자한 마음으로 하지 않습니다(君子之近琴瑟 以儀節也 非以慆心也). 지금 제후께서는 절제도 아니 하시고 아무 때나 여색을 즐기시니 이런 병에 걸린 것입니다.”


화가 육기(六氣)와 오행의 절도에 대하여 길게 가르쳐준 내용은 황제내경(소녀경)에 나오는 원리와 대략 같은 것이므로 따로 옮기지 않겠다.


“나는 이미 늙어 두렵지 않으니, 그 음악도 들려다오.”


광이 연주를 시작하자 북서쪽으로부터 구름이 일고 비바람이 휘몰아쳐 기왓장까지 다 날아갔다. 이후 3년 동안 가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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