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WC] 무너진 중앙수비, 알제리전 대패의 단초

문화·라이프 / 박진호 / 2014-06-23 17:46:54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여러 포지션에서 부침을 겪었지만 현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이 은퇴한 수비수 자리에서 ‘제2의 홍명보’를 찾는 것도 엄청난 지상과제로 등장했다. 숱하게 많은 선수들이 ‘제2의 홍명보’라는 기대 속에 등장했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축구 행정가를 목표로 했던 홍명보 감독이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며 직접 수비수 발굴에 나섰다. 청소년 대표부터 올림픽 대표를 거처 성장한 세대들이 대표팀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의 아이들’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비수들로 자리를 잡았다. 홍명보가 직접 키운 ‘제2의 홍명보’들이 우리 대표팀의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있었던 홍정호와 김영권이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의 가장 중요한 고비가 되는 고비였던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시간으로 23일,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이 위치한 베이라 히우 경기장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알제리 전에서 대표팀의 실점 장면을 보면 수비진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전반에 허용한 3골은 모두 알제리의 차원 높은 조직적인 플레이나 뛰어난 개인기에 의해 만들어진 골이 아니었다. 우리 수비진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연달아 실점을 허용했다.
전반 26분, 이슬람 슬리마니에게 허용한 선제골은 하프라인 부근에서 뛰어 들어가는 슬리마니에게 칼 메자니가 찔러준 롱 패스가 연결되며 골로 이어진 상황이었다. 최전방에 있던 슬리마니의 주변에는 홍정호와 김영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가져가는 슬리마니를 두 명의 센터백이 모두 잡지 못했고 30미터 이상을 달려가는 동안 스피드에서 따라잡지도 못했다.
슬리마니가 문전에서 몸싸움과 제공권을 무기로 싸우는 성향이 아닌 스피드를 무기로 큰 활동반경을 가져간다는 것은 이미 주지된 상황이다. 스피드가 뛰어난 슬리마니를 사이에 두고 김영권과 홍정호는 수평형태의 방어선을 서고 있다가 속도경쟁에서 떨어졌고, 단 한 번의 패스가 시도된 후 의미 없는 경주마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스피드가 뛰어난 공격수를 상대로 우리나라 센터백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달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나타났던 약점을 상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제골 실점 후 세트피스에서 바로 두 번째 골을 허용했다. 2분 만에 허용한 실점은 압델무멘 자부가 올려준 코너킥을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라피크 할리시가 헤딩으로 성공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골 역시 아쉬움이 크다.
알제리의 세트피스는 특별한 묘책이 있었던 전술적인 플레이도 아니었다. 수비수를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선수도 없었고, 속임 동작을 하는 선수도 없었으며 압도적인 신체조건으로 골 에어리어 부근에서 우리의 수비를 방해하는 선수도 없었다. 그냥 자리를 잡고 있다가 스위치를 통해 달려들며 헤딩을 시도하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골 에어리어 부근에 골키퍼를 제외하고도 우리 수비수가 8명이나 있었지만 할리시의 헤딩을 막지 못했다.
우선은 김영권이 할리시를 완벽하게 놓쳤다. 그것도 상대 선수가 아닌 우리 수비수의 동선에 막혀서 할리시가 돌아들어가는 것을 잡지 못했고, 할리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공중에 혼자 뛰어 올라 완벽하게 머리로 공을 받아 넣었다.
골키퍼 정성룡도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필드 플레이어가 아무리 도움닫기를 해서 헤딩을 시도한다고 해도 웬만해서 골키퍼보다 공중볼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쉽지 않다. 할리시 역시 187cm의 장신이지만 정성룡은 이보다 더 큰 190cm이며 팔을 뻗게 되면 훨씬 더 공을 처리하는데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성룡은 볼을 잡아야 할 지점에 대한 판단 자체가 잘못됐다. 할리시는 정성룡의 앞쪽에서 소위 공을 끊어먹는 헤딩으로 골을 성공 시켰다. 심지어 정성룡의 주변에는 우리 선수는 물론 알제리 선수도 없었다. 정성룡이 공을 막는데 방해가 되는 조건도 없었다. 그저 정성룡의 판단 미스만 있었을 뿐이다.
세 번째 실점에는 또 다시 중앙 수비수의 문제가 눈에 띄었다. 후방에서 한 번에 넘어온 공을 홍정호가 헤딩으로 걷어낸 것이 슬리마니 앞으로 연결되자 홍정호는 바로 슬리마니 앞으로 달려나갔다. 페널티박스 정면 위험지역을 지키고 있던 홍정호가 자기 주변의 상황을 보지도 않고 바로 슬리마니에게 달려 나간 것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김영권이 커버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홍정호가 굳이 이동할 필요가 없는 장면이기도 했다.
만약 홍정호가 김영권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홍정호가 움직이는 것을 본 김영권이 자리에 변화를 주었어야 했다. 김영권은 홍정호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자신의 바로 옆에 있다가 홍정호가 있던 자리로 이동하는 자부를 전혀 체크하지 못했다. 결국 슬리마니의 패스가 자부에게 연결됐을 때 자부는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이했고 여유있게 3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네 번째 골의 실점 장면에서는 야신 브라히미와 소피안 페굴리 두 명의 주고받는 패스 플레이에 네 명의 수비수가 허수아비가 되는 장면이 연출됐다.
1954년 처음 월드컵에 진출한 우리나라는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28년 동안 8회대회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오고 있다. 그리고 조별 예선 통과를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대로 꼽았던 팀을 상대로 목표를 달성했던 적도 있었고 그렇지 못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러한 대패를 당했던 적은 없었다.
세계 언론과 도박사들조차 우리 대표팀의 승리를 예상했던 경기에서 의외의 대패를 당한 알제리 전의 악몽은 결국 중앙 수비가 괴멸되면서 대량실점을 허용한 것이 빌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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