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그랑프리 우승 영광 재현하고파”

문화·라이프 / 전현진 / 2013-02-07 11:38:48
52세 최고령 기수 : 김귀배

▲ 서울경마공원 최고령기수 김귀배(52).
[토요경제] 산전수전을 다 겪은 50대 베테랑 기수의 활약이 경주로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울경마공원 최고령기수 김귀배가 지난달 26일 서울경마 제8경주(국4, 1300M)에서 5세 암말 ‘누볼라’와 함께 시즌 2승을 합작했다.


김귀배 기수(52)는 경주 시작 전 처음 만난 ‘누볼라와 경주에 나섰다. 소위 ‘잘 나가는’ 기수들처럼 여러 번 사전 훈련을 통해 출전마와 호흡을 맞춰볼 기회는 없었지만, 토요일 출전하는 단 하나의 경주를 위해 묵묵히 출발대 앞에 섰다.


‘누볼라’는 힘이 단단히 차올라 있었다. 김기수는 출발대에서부터 요동치는 ‘누볼라’를 제어하느라 애를 먹었다. 출발대가 열리자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누볼라’의 고삐를 당겨 페이스를 조절했다.


결승선 200M 앞, ‘이때다!’ 싶었던 김기수는 고삐를 가볍게 풀며 ‘누볼라’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누볼라’는 날아오르는 듯한 걸음으로 앞서 가던 11마리를 거침없이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밟았다.


이날 단승식 30.9배, 복승식 62.9배에 쌍승식 무려 216.3배로 그를 믿어준 팬들에게 멋진 선물을 선사한 경마공원 최고령 김귀배 기수는 “이 맛에 계속 말 타는 것”이라며 담백한 우승 소감을 전했다. ‘영원한 현역’ 김귀배 기수는 하루 3회 이하의 적은 기승기회에도 올해 벌써 2승을 수확하며 노장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 한결같은 노장 기수 ‘김귀배’
세월은 달리는 말보다 빨리 흘렀다. 김귀배 기수는 올해로 데뷔 35년 차를 맞았다. 조교사(감독)로 활동했던 숙부 손에 이끌려 말을 타기 시작한 열일곱 소년은 어느덧 쉰둘의 노장 기수가 됐다. 뚝섬에서 과천으로 경마장의 위치도 바뀌고, 수많은 경주마와 기수들이 명멸했지만 김귀배 기수만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김 기수는 항상 새벽 4시에 일어나 경마공원에서 4시간의 새벽훈련을 한다. 지난 35년 동안 그의 하루는 늘 그렇게 시작됐다. 20대 기수들조차 고통스러워하는 체중감량도 30년째 계속 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성실함과 지독한 자기관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아직도 뛰느냐’다. 그는 “체력은 괜찮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떨어져 시야 확보가 어려운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눈, 비가 내리면 앞이 잘 안 보이는 채로 질주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고 노장 기수로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 그의 전성기와 슬럼프
기수로서 35년을 살아오면서 그에겐 화려한 전성기도 지독한 슬럼프도 있었다. 그의 전성기는 뚝섬을 주름잡았던 뉴질랜드산 괴력마 ‘포경선’에 올라 86년 그랑프리(GⅠ) 우승컵을 거머쥐었던 때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대상경주 우승이었다. 89년 경마공원이 뚝섬에서 과천으로 옮겨오면서 운명의 장난 같은 기나긴 슬럼프가 시작됐다. 그러나 말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기수 이외 다른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낙마로 쇄골뼈가 부러져 핀으로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고도 다섯 달 만에 경주로로 복귀했다.


2남 3녀를 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당기게 했다. 성적이 좋지 못해 경제적인 넉넉함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자녀들에게 경주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꺼렸다.


그러나 몰래 경마장을 찾아 아버지 모습을 지켜보는 막내딸의 응원은 다시금 말 위에 오르게 하는 큰 힘이 되었다.


◇ 김 기수, 제2의 전성기 열어
좋은 말, 나쁜 말 가리지 않고 부단히 말몰이에만 집중해온 김 기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 3년 만에 힘겹게 1승을 알리던 그가 2010년부터 꾸준히 한해 6승 이상을 올리고 있다.


또 50승 내외에 머물던 출전기회를 170회 이상으로 늘려가며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93년 이후 쌓은 승수는 총 297승으로 이제 300승까지 세 번의 우승을 남겨두고 있다.


존재만으로도 경주로를 빛내는 그의 출전은 늘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는다. 김귀배 기수를 꾸준히 지지해온 골수팬들의 가장 큰 바람은 86년 그랑프리(GⅠ)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에 그는 “우선은 기수 정년인 60세까지 큰 부상 없이 달리는 것이 목표”라며 “천운이 따라준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35년 세월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긴 오천 칠백 사십 번의 질주. 시대적 상황과 악재에도 굴하지 않고 누구도 쉽게 쫓아오지 못할 자취를 경주로에 새긴 김귀배 기수는 가히 인간승리의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경마의 역사를 함께해온 ‘최고령’ 기수이자 존재만으로도 위대한 ‘최고’ 기수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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