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권력

문화·라이프 / 전성운 / 2012-12-28 11:01:32
보수적인 여성이 퇴행시키는 여성의 권리

성정치는 끝난 것일까? 1990년대 한국 사회를 꽤나 들썩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성정치와 페미니즘은 2000년 이후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문제제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연일 보도되는 성 관련 범죄로 사회는 급격히 보수화되고, 언젠가부터 성차별이나 성평등 관련 이슈들은 제대로 된 논쟁이 펼쳐지기도 전에 꼴페미 대 마초의 대결구도로 몰아세워진다. 답답하리만큼 한국 사회의 성담론은 힘이 빠져 제자리걷기를 하는 듯하다.


하지만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영역에서 훨씬 더 세세한 갈등, 즉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제기들을 직면하고 있다. 젠더가 권력관계의 문제라면 섹슈얼리티는 주체와 권력,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차이와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 표면적인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이유는 없다. 이 책 <성의 정치 성의 권리>에서 운동가이자 학자인 5명의 저자들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트랜스젠더, 퀴어, 성판매, 동성애, 에이즈, 팬픽 등을 이야기하며 한국 사회에서 기만되고 있는 성담론을 좀더 현실적으로 역설하고자 새로운 시각을 풀어내고 있다.


권김현영은 글을 통해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여성 운동의 오랜 고민을 국내외 풍부한 실제 사례와 함께 또 다른 돌파구를 모색한다. 그는 여자니까 여자를 밀어주자 같은 말이 어떻게 여성 정치의 가능성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지, 보수적인 여자 정치인들이 얼마나 여성의 현실을 퇴행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여겨지게 하는지, 혹은 괴물로 여겨지게 하는지.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인간인지 괴물인지와 같은 문제에 집중해온 루인의 글은 성범죄자에게 가하는 형벌의 하나로 법률로 제정된 ‘화학적 거세’에 대해 다룬다.


2005년 무렵부터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어떻게 성매매 여성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십대 여자아이들을 만났고, 이를 토대로 석사학위까지 딴 ‘성매매 전문가’ 김주희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성매매 구조 속 여성들의 노동, 지위,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쳐낸다.


한채윤의 글은 ‘성적 타락’이라는 공통적 낙인이 조장하는 차별이 지배적 성규범 하에서 어떻게 유지되는지, 그리고 이를 뒤집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개별적 존재로서의 경험을 재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대 여성의 문학(화)적 입지에 대한 공부로 세월을 보내왔다. 주로 여성들의 글쓰기에 관한 동경, 이야기에 대한 매혹, 그로써 달라지는 문화들에 관심을 가져온 류진희는 2010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같은 소위 남성 간 애정물에 왜 여성이 열광하는지를 분석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있는 사회 현상이 모두 진실이 아니듯, 특히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말하는 페미니즘은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보수적이고 급진적인 성담론이 여성의 현실을 퇴행되게 만들 수도, 가부장제를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 <성의 정치 성의 권리>, 권김현영 외 저, 1만3000원,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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