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문화·라이프 / 전성운 / 2012-12-06 14:30:21
황석영, 현실에 맞선 문학 인생 50년을 돌아보다

1962년 <사상계>에 ‘입석부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황석영이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동시에 그의 나이 칠십에 이르렀다. 그의 문학 인생 50년을 되돌아보면 단 한 순간도 평범했던 적이 없었다. 황석영의 발자취는 우리의 근현대사와 항상 함께해왔다.


황석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격동의 시대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그릇인 것이다. 황석영은 당대 역사의 큰 물줄기 속에서 단 한 번도 직면한 현실을 피하지 않고 맞서며 주옥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황석영이 우리 식의 ‘이야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심해온 것은 그의 후반기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출옥 이후부터로 작가는 “올해로 칠순이다. 자서전이나 자전적 작품을 쓰는 대신 작가의 일생을 19세기에 갖다 놓고 펼쳐본다면 나로서도 기념되는 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오래된 정원>으로 이전 산문의 습관들을 해체하는 데서 시작된 그의 ‘이야기’에 대한 탐색은 그 뒤 연이어 발표한 <손님>, <심청>, <바리데기> 등을 통해 우리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형식과 내용 모두 지금의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심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제 등단 50주년을 맞이한 자신을 돌아보며 ‘19세기 이야기꾼’의 발자취를 더듬는 자전적 작품 <여울물 소리>로 찾아왔다. 이 작품은 외세와 신문물이 들이치며 봉건적 신분 질서가 무너져가던 격변의 19세기를 배경으로 이야기꾼 ‘이신통’의 일생을 뒤 쫓으며 동학과 이야기꾼이라는 존재를 큰 축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이야기꾼’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다. 그들은 조선 후기 신분제도가 해체되던 시기에 매우 ‘수상한 중인층’이다. 그 시기의 사회가 신분층의 변동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라면 그들은 더 이상 신분 상승이 불가능했던 독서 계층이었다.


19세기 격동의 시대를 담아낸 작품 <여울물 소리>는 주제의식과 소재 면에서 대하소설을 써도 충분할 만큼 방대하다. 이런 방대한 작업을 단 한 권으로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진정한 압축의 미를 보여준다.


서얼의 서자로 태어나 몰락한 지식인으로서 주변부를 떠돌며 전기수, 강담사, 재담꾼, 광대물주, 연희 대본가, 그리고 나중에는 천지도에 입도하여 혁명에 참가하고 스승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주인공 ‘이신통’을 통해 작가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바로 동학이다. 글을 읽는 솜씨가 신통방통하다 하여, 본명 ‘이신’보다 ‘이신통’으로 더 잘 알려진 주인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지만 행적 만큼은 여느 누구 못지 않다.


19세기 말 격변의 시대에 엄격한 신분 제도로서 유지되던 유교적 사상을 뒤엎고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놀랄 만한 선언을 했던 동학(소설 속 ‘천지도’라고 지칭)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을 스케치하면서 고통과 상처투성이의 근대를 거대한 서사 안에 녹인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 황석영은 묻는다. “이야기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어떤 것이 남고 어떤 것이 사라지나?” <여울물 소리>, 황석영 저, 1만5000원,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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