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 촌부들에게 베푼 은혜로 목숨을 건지다

문화·라이프 / 정해용 / 2014-03-31 11:31:01
51. 배은망덕 晉 혜공②

其君是惡 其民何罪 기군시악 기민하죄
군주는 나쁘지만, 그 백성들이야 무슨 죄가 있는가(晉 世家)
배은망덕한 혜공이 기근으로 식량을 청해오자 진(秦) 목공이 지원을 결심하며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당진(晉)에 기근이 발생했다. 혜공은 진(秦) 목공에게 식량을 요청했다. 혜공의 배신을 생각하면 물리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망명객 비표는 이 기회를 이용해 진을 공격하자고 부추겼다. 목공은 우선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공손지가 말했다. ”하늘의 재앙은 돌고 도는 것이라, 각국에서 돌아가며 발생하는 것이옵니다. 이웃한 나라들이 서로 기근의 재앙을 구제해주는 것은 정당한 도리입니다.” 백리해가 말했다. “이오가 주군께 죄를 지었을 뿐이지, 그의 백성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목공이 이 말을 옳게 여기고 진나라에 식량을 보내주었다.

바로 이듬해 이번에는 섬진에 기근이 찾아왔다. 목공이 당진에 식량을 청하자 혜공도 신하들과 의논하였다. 대부 경정(慶鄭)이 말했다. “주군께선 진나라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르셨으나 약속한 땅을 선물하지 않았고, 지난해 기근이 들었을 때는 도움을 청하여 또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기근이 들어 도움을 청하는데 망설일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오는 워낙 천박한 사람이어서 경정의 말을 고깝게 들었다.
간신 괵석이 나서서 말했다. “작년에 진(秦)나라가 우리를 공격했으면 쉽게 정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은 하늘이 준 기회를 잡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식량을 지원해주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늘이 우리에게 어찌 하늘의 뜻을 거역하겠습니까.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들을 쳐야 하옵니다.” 혜공이 기다리던 답이었다.

식량 대신 군대가 쳐들어오자 진 목공은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켰다. 이듬해 두 나라 군대는 한원이라는 곳에서 접전하였다. 두 나라의 군주가 직접 출동하여 맞붙은 격전으로, 일진일퇴가 기록되어 있다.

이 때 군주들은 모두 수레가 달린 기병을 이끌고 있었다. 처음에 싸움은 진(秦)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진의 군대가 강했기 때문이다. 목공이 승세를 몰아 적진 깊숙이 파고들다가 그만 진흙탕 길에서 발이 묶였다. 당진의 군사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위망을 좁혀왔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달려와 목공을 구했다. 목공이 숨을 돌리고 보니 기산에서부터 달려온 민병대였다. 여기에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처음에 섬진이 출병하기 전 목공의 말 한 마리가 고삐가 풀린 채 달아난 적이 있었다. 군사들이 말을 찾으러 쫓아가보니 말은 기산 아래까지 달아났는데, 그곳 마을사람들이 이미 말을 잡아먹은 뒤였다. 군사들은 마을사람 3백 명을 모두 잡아두고 보고를 올렸다. 그러자 목공이 말했다. “군자는 짐승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말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이 상한다 했느니라. 말을 잡아먹은 사람들에게 술도 보내주어라.”

임금의 말을 잡아먹고 처벌을 면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일인데, 손수 술까지 내려주었으니 기산 사람들은 감읍했다. 그 후 목공이 당진과 전쟁을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무장을 갖추고 목공을 위해 싸우려고 찾아왔다. 목공이 포위됐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구원한 것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목공은 다시 진격을 개시했다. 당진의 혜공은 진(秦)의 재물을 탈취해 수레에 싣고 돌아가다가 역시 진창에 빠져 추격대에게 사로잡혔다. 배은망덕한 혜공은 진나라로 끌려갔다.

이야기 PLUS
제후인 이오는 자신의 집권에 큰 도움을 주었던 목공의 은혜를 배신으로 갚았고, 기산 아래 살던 농투성이 3백 명은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달려와 은혜를 갚았다. 누가 더 값진 인생인가. 인격의 가치는 높고 낮은 지위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하늘은 누구를 더 축복하였던가. 은인을 거듭 배신하고 침략 전쟁까지 일으킨 혜공은 죽어 마땅했다. 진(秦) 목공이 모든 백성들에게 목욕재계할 것을 명하고 이오를 잡아 재물로 바치려 했다. 그러나 하늘은 그를 다시 살려내 제후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목공은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주 천자가 손수 사면을 당부하는 요청서를 보내온 데다 본래 혜공 이오의 누이인 부인 백희가 소복을 입고 달려와 간곡히 관용을 청하였기 때문이다. 혜공은 귀국하여 목공에게 땅과 인질을 보낸 뒤 4년을 평온히 권좌에 머물다가 병으로 죽었다.

사람들은 신의가 없고 어리석거나 탐욕에 눈먼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하늘이 매번 그리 되도록 교통정리를 해주지는 않는다. 사마천도 그 점을 자주 안타까워했다. 하늘은 법도가 없는 것인가. 인간세상의 권력 따위, 하늘에서는 일일이 개입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그저 내버려 두고 보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사필귀정의 역사법칙을 세우는 일은 하늘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주어진 숙제일지도 모른다.

혜공이 사악했다면 그의 아들 어는 심약했다. 진의 목공은 혜공이 돌아가 태자 어를 인질로 보내자 그를 잘 대우하면서 종실의 딸을 주어 혼사까지 맺었다. 그런데도 혜공의 부음이 들려오자 어는 진나라가 혹 자기를 억류할까 두려워하여 아내도 버려둔 채 본국으로 달아나버렸다. 목공은 크게 실망했다.

어가 당진에서 스스로 혜공의 뒤를 이어 제후가 되었으나(희공) 목공은 인정하지 않았다. 일찍이 제나라로 망명했던 당진의 공자 중이를 불러들여 융숭히 대접하고 어가 버리고 간 딸과 결혼시켰다. 그리고는 그를 당진으로 호위해 가서 제후의 자리에 앉게 했다. 그가 후일 춘추 5패의 하나로 불린 진(晉) 문공이 되었다.


우리를 뛰쳐나간 진 목공의 말을 시골 사람들이 몰라보고 잡아먹었다. 목공이 처벌하지 않고 말했다. “말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이 상한다 했으니 술을 보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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