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 소 열두 마리로 나라를 구한 소장수

문화·라이프 / 정해용 / 2014-06-16 14:25:06
60. 금가는 晉과 秦

尙猷詢玆黃髮 則罔所愆 상유순자황발 즉망소건
(머리가 노래진) 노인들의 충고를 존중하여 들으면 잘못되는 일은 없다 (<周書>秦誓)
진 목공이 원로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정나라를 기습했다가 실패한 뒤 뉘우치며


정(鄭)나라의 소장수 현고(弦高)라는 사람이 소를 팔기 위해 주나라 도읍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하인들과 함께 끌고 가는 소들은 열 마리도 넘었으며 수레에는 소가죽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팔 물건들이 실려 있었다. 그들이 활이라는 나라를 지나고 있을 때 열 몇 마리 소떼 정도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거마 행렬과 조우했다. 그 행렬은 예사롭지 않았다. 멀리서 보니 수많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는데, 깃발 사이로 햇빛을 반사하는 시퍼런 금속들은 병장기가 분명했다. 그들은 전쟁터로 나가는 기병대였다.

기병대가 읍내 가까이 진을 치고 쉬는 동안 시골사람들은 이 예사롭지 않은 행렬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소장수 현고가 하인들을 보내 알아보니, 이 기병대는 정나라를 치기 위해 달려온 섬진(秦)의 기습부대가 아닌가. 기병 300승은 한 나라를 정복하기에는 부족한 병력이지만, 아무런 대비도 없는 성을 문득 기습하여 함락시키기에는 충분할 것이었다.

현고는 자기 나라를 떠나 이곳에 이를 때까지 전쟁이나 외적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본국에서는 턱밑까지 다가온 기습침략의 위험을 까맣게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현고는 급히 하인에게 말을 내주어 본국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 알리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가지고 있던 소 열두 마리를 끌고 진나라 기병대가 쉬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젊고 용맹스러워 보이는 장수들 앞으로 인도되자 현고는 말했다.

“우리 정나라 군주께서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급히 보내셨습니다. 정나라가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먼 길 오느라 고생하신 여러분을 위로하기 위해 하루치의 식량을 마련한 것이니 우선 이 소를 잡아 나누어 드시고 오늘은 여기서 편안히 쉬십시오. 내일 아침 식사가 끝나면 소인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물론 지어낸 얘기였다. 하인을 본국으로 보냈으니 정나라에서는 섬진의 기습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방어태세를 충분히 갖추기까지 공격군의 진군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게 필요했다. 열두 마리나 되는 소를 잡고 배를 불리면 이들은 하룻밤을 유숙하게 될 것이니, 정나라는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속셈이었다.

결과는 좀 엉뚱하게 진행됐다. 우선 진나라 장수들이 깜짝 놀란 것이다. 기습작전의 생명은 상대가 눈치 채기도 전에 들이닥쳐 허를 찌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발 빠른 소수의 기병대만으로 전광석화처럼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나라에서 이미 알고 이렇게 식량까지 보내왔다면 기습에 대한 대비도 되어있을 터이니 더 이상 진군하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장수들은 정나라 정벌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가기도 아쉬웠던지 애꿎은 활나라를 점령하여 항복을 받았다.

일은 더욱 공교롭게 돌아갔다. 그들이 점령한 활나라는 하필이면 섬진의 우방인 당진의 동맹국이었다. 친구의 친구를 느닷없이 점령하다니, 이것은 믿는 사람의 뒤통수를 느닷없이 갈긴 격이다. 마침 당진에서는 문공이 집권 9년 만에 죽어 아들 양공이 상을 치르고 있었다. 갑작스레 활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양공은 충격을 받았다. ‘국상중인 나라의 동맹국을 치다니, 우방의 도리가 아니다.’ 양공은 하얀 상복을 검게 물들여 입고 군대를 몰아 마침 당진의 경계를 지나고 있던 섬진의 군대를 기습해 장수들을 사로잡았다.
당진과 섬진은 이 일로 인해 좋던 사이가 틀어지고 서로 원수가 되었다.


이야기 PLUS

섬진이 당진의 땅을 건너 정나라를 갑자기 치게 된 것은 애당초 욕심이었다. 섬진이 당진과 함께 정나라를 공격하다가 물러날 때, 정나라에 몇 사람의 대부를 남겨두었다. 그 중 한 사람인 기자(杞子)가 본국에 보고를 보내왔다. “제가 이제 정나라 도성의 북문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군대를 몰래 보내신다면 문을 열어드릴 터이니, 정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단지 기습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진 목공은 정나라에 욕심을 가졌던 것이다.

대부 백리해와 건숙은 출병에 반대했지만 한번 욕심이 생긴 목공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백리해와 건숙은 장수가 되어 출병하는 아들들을 위해 울었다.

당진에 사로잡힌 세 장수는 마침 목공의 딸이기도 한 진 문공 부인의 기지로 살아 돌아왔다. 목공은 몸소 상복을 입고 교외로 나가 패장들을 맞아들였다. “그대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 그대들은 이 치욕을 씻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태만하지 마시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옛일을 들어 충고하는 말을 싫어하고 당장의 꾀를 내는 말만 좋아하다가 실패하였다. 그래서 깨달았다. 머리가 노래진 노인들의 충고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잘못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尙猷詢茲黃髮 則罔所愆).”


“제가 이제 정나라 도성의 북문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군대를 몰래 보내신다면 문을 열어드릴 터이니, 정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단지 기습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진 목공은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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