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 배신과 거짓의 달인 권좌에 앉다

문화·라이프 / 정해용 / 2014-03-24 13:57:54
50. 배은망덕 晉 혜공①

能誅其大臣 此其調也 능주기대신 차기조야
(왕이) 대신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백성들의) 협조가 있기 때문이다. (秦本紀)
진왕(晉王)이 민심을 잃었으니 칠 수 있다는 주장을 진(秦) 목공이 반박하면서


한편, 백리해를 떠나보낸 당진(晉)의 사정은 어떠했던가.

헌공이 큰아들 신생(申生)을 죽이자 그 아래 두 공자, 중이와 이오는 각기 적(翟)나라와 양(梁)으로 피신했다. 중이가 적으로 간 것은 그곳이 어머니의 나라였기 때문이고, 이오가 양으로 간 것은 양나라 배후에 섬진(秦)이 있어 급할 때 의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진 헌공은 과연 젊은 여희 소생의 어린 아들 해제를 후계자로 세우고 병들어 죽었다. 그러나 헌공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대부들이 난을 일으켜 해제를 살해했다. 그들은 망명중인 공자 중이를 군주로 옹립할 생각이었다. 난을 주도한 대부 이극(里克)과 비정(邳鄭)은 적나라로 사람을 보내 중이를 모셔오게 했다.

중이(重耳)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선비를 존중해서 백성의 신망을 얻었으나, 성격은 너무 신중하여 소심할 지경인 사람이었다. 찾아온 관원들에게 사양하여 말하기를 “어버이를 거역하여 나라 밖으로 도망하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가서 장례도 치르지 못했으니 내 어찌 환국하여 군주가 되겠는가. 대부들은 다른 공자를 옹립하도록 하시오.”라고 했다. 대부들은 하는 수 없이 이오(夷吾)를 부르기로 했다.

전갈을 받은 이오는 즉시 귀국하려 했다. 이오를 보좌하던 여성과 극예가 만류했다. “아직 군주 자리에 오를 공자들이 있는데 불쑥 가신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섬진에 부탁해서 도움을 받도록 하십시오.” 이오는 옳게 여기고 많은 뇌물과 함께 사람을 섬진의 목공에게 보내 도움을 청했다. “만일 나의 환국을 도와주신다면 진(晉)의 하서 지방을 떼어 보답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또 본국에 있는 이극에게 따로 친서를 보내 “내가 무사히 즉위하게 되면 그대에게 성읍 하나를 봉토로 내리겠소.”라고 약속하였다.

섬진의 군대가 이오를 호송하여 당진으로 돌려보냈다. 마침 맹주인 제나라 환공도 군대를 보냈다. 진(秦)과 제나라의 합의 아래 이오가 당진의 군주가 되었다. 진 혜공이다.

권좌에 오른 혜공은 당연히 그가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할 터. 하지만 이오는 천성이 얕은 사람이었다. 측근 비정을 사신으로 보내 섬진의 목공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처음에 이오가 하서 지방을 군왕께 드리기로 약조하여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신들이 반대하여 수차례 논쟁을 했습니다만 마음대로 할 수가 없게 되어 부득이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안으로는, 자신을 받아들인 이극을 또한 배신했다. 역시 그럴싸한 명분을 붙였다. “그대가 없었다면 과인은 권좌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오. 그렇긴 하나 그대 역시 앞서 두 군주를 살해한 죄가 있으니, 임금된 사람으로서 어찌 이를 모른 척할 수 있겠소. 실로 난처하구려.” 국난의 화근이었던 해제와 그 동생을 연거푸 죽인 일을 말한 것이다. 이극과 비정 등 국내에 있는 대부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이오 또한 집권의 기회를 얻은 것인데, 혜공은 이러한 은혜를 도리어 배신으로 갚았던 것이다.

아직 진(秦)에 사신으로 머물고 있던 비정에게 이극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정은 치를 떨면서 섬진의 목공에게 제안했다. “이오는 본래 신의가 없는 사람이니 그를 몰아내고 중이를 환국시키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혜공의 측근들을 매수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진 목공 또한 허락하여 비정의 귀국길에 따라가게 했다. 그러나 매수공작은 실패했다. 혜공의 측근들이 선물공세를 의심하여 도리어 비정을 체포했다. 뿐만 아니라 이극, 비정과 가까웠던 대부 일곱 명을 가려내 함께 죽여 버렸다.

비정의 아들 비표가 섬진으로 망명해 목공에게 당진을 칠 것을 요청했다. “백성들이 이오를 따르지 않고 있으니 정벌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목공은 “백성들이 정말 이오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면 어떻게 일곱 명이나 되는 대신들을 죽일 수 있었겠소. 대신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백성들이 왕에게 협조하기 때문이오(百姓茍不便 何故能誅其大臣 能誅其大臣 此其調也)라며 공격을 미루었다.



이야기 PLUS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 신의나 정직 같은 ‘교과서적인 도덕’을 따지는 것은 종종 유치한 일로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부도덕과 권모술수를 신의나 정직보다 상위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도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교과서의 도덕과 현실의 도덕 기준이 다르면 백성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권모술수로 왕이 된 사람은 정직이 옳다고 배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얻기 위해 자신의 부도덕을 철저히 감춰야 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도덕의 화신으로 변장해야 한다. 거짓을 감추기 위한 거짓이 확대 재생산될 것이고,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혼란이 거듭되면 백성들은 진실 논란에 피로를 느끼며 마침내 거짓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조차 혼미해진 다음에야 그 나라가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부도덕한 왕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에 협조하는 백성들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진 목공의 말도 그르지 않다. 기독교 성서에도 ‘모든 권력은 위로부터(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하늘이 부도덕한 권력을 축복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늘은 오로지 민심에 따르는 것이니, 민심이 어리석거나 부패하면 그 가운데서 부패한 권력자도 나오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세태에서는 정직한 지도자가 나온다 해도 오히려 핍박을 받아 도태된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부도덕한 권력에 의해 백성이 고통을 받는다면, 이 또한 백성이 자초한 것이라는 의미도 된다. 부도덕한 왕에게 협조하면서 하늘을 원망한다는 건 일종의 자가당착일 것이다.

“백성들이 정말 왕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면 어떻게 일곱 명이나 되는 대신들을 죽일 수 있었겠소. 대신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백성들이 왕에게 협조하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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