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둥이’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춘추전국시대’ 에서도 ‘본질’에 집중하다

유통·소비재 / 김은선 기자 / 2025-12-19 18:00:07

[토요경제 = 김은선 기자] 화장품 브랜드가 넘쳐나고 유행 주기가 급격히 짧아진 대소비 시대의 뷰티 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화장품의 ‘본질’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행보다.

 

▲ 아모레퍼시픽 회사 전경/사진=아모레퍼시픽

 

이 방향 전환은 회사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출발은 화려한 글로벌 브랜드가 아니었다. 서성환 선대회장의 사업 인생은 어머니가 동백기름으로 머릿기름을 만들던 1930년대 작은 상점에서부터 시작됐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를 도우며 심부름을 하고 가게 일을 거들었고, 이 과정에서 상업의 기본을 몸으로 익혔다. 이러한 경험은 해방 이후인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창립하는 결정적 토대가 됐다. 

 

그러나 사업을 창립한 이후 불과 5년 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진다. 전쟁 직후 생존이 우선이던 시절 기술력에 주목한 기업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은 단기적 생존보다 품질을 위한 기술 경쟁력을 선택했고 그 결과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어낸다.

 

이후에도 이 회사는 단순 대량 생산보다 포장과 디자인 무엇보다 품질과 기술에 신경을 쓰며 국내 화장품 산업의 기준을 끌어올렸다. ‘만드는 사람의 철학이 제품에 남아야 한다’는 생각은 브랜드 전략 전반에 스며 있었다.

 

◆ 파우더의 틀을 깨다…세계 최초 쿠션 화장품 '에어쿠션' 개발

 

이 같은 집요함은 R&D 투자 그대로 이어져 아모레퍼시픽을 상징하는 혁신 제품에서도 볼 수 있다. 

 

아이오페가 2008년 개발한 세계 최초의 쿠션 유형 화장품인 ‘에어쿠션’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낯선 형태였지만, 사용성과 위생, 휴대성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소비재’가 아니라 기술 집약적 제품으로 바라본 시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 파우더의 틀을 깬 아이오페의 에어쿠션/사진=아이오페

 

이는 폭발적인 성장세와 K뷰티 화장품 수요를 이끌어내며 화장품 종주국인 유럽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 화장품은 ‘품질이 좋고 바르면 예뻐진다’는 단순한 공식이 통한 것이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부터 크리스챤 디올과 쿠션 기술 제휴를 지속하며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무대로 확장해 왔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한국 화장품 기술을 기반으로 협력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7년 출시된 아모레퍼시픽 산하 브랜드 헤라의 ‘블랙쿠션’은 지난해 2월 기준 누적 판매 1000만 개를 돌파했다. 이는 단순 수치로 환산해도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이 사용한 수준이다.

 

에어쿠션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6.25 전쟁과 외환위기, 중국 사드 갈등과 코로나19까지 수차례 위기에서도 놓지 않았던 R&D 투자다.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을 때도 연구소 투자를 이어가며 헤라·아이오페·설화수 같은 핵심 브랜드를 키웠고, 한방 원료와 과학을 결합한 설화수는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의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 아모레퍼시픽 신제품의 공통분모 ‘기술력’

 

최근 출시된 신제품들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설화수는 스킨케어 기술을 접목한 베이스 메이크업으로 글로벌 고객을 겨냥했고, 아이오페는 목과 데콜테 전용 안티에이징 제품으로 전문 영역을 세분화했다. 에스트라는 민감 피부 시장을 겨냥한 더마 라인으로 해외 수요를 흡수하고 있으며, 려·미쟝센 등 헤어 브랜드는 기능성 중심으로 글로벌 플랫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연말을 맞아 아모레퍼시픽의 산하 브래드인 두피·탈모 전문케어 브랜드 려는 루트젠 라인에 ‘뿌리 볼류머’를 추가하며 여성 탈모 케어 영역을 확장했다. 

 

2023년 첫선을 보인 루트젠은 두피 에센스와 리페어 세럼 등을 통해 기능성 중심의 탈모 관리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탈모 관리와 스타일링을 기술적으로 연결했다.

아이오페는 안티에이징 영역을 얼굴에서 목과 데콜테까지 확장했다. 이달 출시한 ‘슈퍼바이탈 넥 앤 데콜테 크림’은 얼굴보다 얇아 노화가 빠르게 드러나는 목 피부에 특화된 제품으로, 독자 성분 ‘세노뮨’과 펩타이드 리프팅 콤플렉스를 결합했다.

 

인체적용시험에서 목주름과 탄력 개선 효과를 확인하며, 스킨케어 기술을 보다 세분화된 신체 부위로 확장하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남성 스킨케어 브랜드 오딧세이는 30주년을 맞아 ‘붉은 말의 해’를 테마로 한 2026년 신년 한정판 에디션을 선보였다. 

 

로맨틱 라인과 블랙 라인으로 구성된 이번 에디션은 말 모티프를 활용한 패키지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 헤리티지를 강조했다. 향과 기능을 중심으로 한 기본기에 상징성을 더해, 남성 화장품에서도 ‘의미 있는 제품 경험’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설화수는 메이크업 라인에서도 스킨케어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달 출시한 ‘퍼펙팅 베일 프라이머’와 ‘퍼펙팅 틴티드 크림’은 각각 85.36%, 78.83%에 달하는 스킨케어 성분 비중과 통기성 메이크업 기술을 결합한 제품이다. 

 

꾸준히 기술을 개발해 모공·결·톤 보정을 넘어 피부 본연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메이크업을 가능하게 해, 설화수가 지향하는 ‘스킨케어 기반 메이크업’ 전략을 분명히 했다. 

 

▲ 설화수 퍼펙팅 베일 프라이머 & 틴티드 크림 연출 이미지/사진=아모레퍼시픽

 

◆ ‘광복둥이’ 아모레퍼시픽 80년, 다시 기술로 승부수


해방과 함께 태어난 광복둥이 아모레퍼시픽은 어느덧 올해로 80돌을 맞았다.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하겠다”는 창업주의 말처럼 이 회사는 화장품 ‘춘추전국시대’로 불리는 경쟁 환경 속에서도 본질인 품질을 최우선에 두고 화장품 그 자체로 승부하고 있다.

 

유통 환경과 소비 트렌드는 크게 달라졌지만, 기술과 집요함으로 세계 시장을 두드린다는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어쿠션으로 화장품 지형도를 바꾼 아모레퍼시픽이 마케팅이 범람하는 작금의 화장품 시대에서 다시 한 번 기술력으로 화장품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지, 전 세계 뷰티 시장이 그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토요경제 / 김은선 기자 kes@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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