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당거래’ 해도 솜방망이 규제 뿐… ‘과징금 부과’ 제도 개선 준비

체크Focus / 양지욱 기자 / 2024-06-24 08:19:29
공정위, 관련 매출액 산정 못하면 정액 과징금 40억원…새 기준 마련 연구 착수
▲ 사진=토요경제DB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계열사 부당지원과 사익편취 사건에 부과되는 과징금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편에 착수했다.

불공정 행위로 수천억원의 부당이득을 거두고도 소액의 정액 과징금만 부과받는 ‘솜방망이 처벌’을 막기 위함이다.

2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조달청 나라장터에 “부당 지원 및 사익편취 행위의 지원·위반 금액 산정 관련 과징금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부당 지원과 사익 편취는 대기업집단이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지분 취득 또는 사업 기회 확보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부당한 이익을 얻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공정거래법은 부당 지원 및 사익편취 사건에 지원·위반 금액에 상응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원·위반 금액을 산정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거래·제공 규모, 관련 매출액 등의 10%로 과징금을 정한다.

문제는 부당 지원과 사익편취의 방식이 다변화하면서 거래 규모 및 관련 매출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 기회 제공’이나 ‘향후 발생 이득’ 같은 수치화하기 힘든 요소들이 포함되는 경우 정확한 지원 규모를 산정하기가 힘들어진다. 사익편취 제공의 객체가 자연인일 경우에는 법인에 적용되는 '관련 매출액'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은 이처럼 거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최대 40억원을 정액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명시했지만, 실제 부당 이익에 크게 못 미치는 ‘솜방망이 제재’가 된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 법원에서 공정위가 패소한 ‘SK실트론 사익편취’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SK는 2017년 1월 반도체 웨이퍼 생산 회사인 LG실트론(현 SK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한 뒤 같은 해 4월 잔여 지분 49% 중 19.6%만을 추가 매입했다. 나머지 29.4%는 이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들였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는 최 회장의 지분 인수가 지주회사 SK의 ‘사업 기회’를 가로챈 것이라고 보고 지난 2021년 12월 최 회장과 SK에 대해 각각 8억원씩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당시 사업 기회에서 파생된 관련 매출액 산정이 어렵고, 지원 객체인 최 회장이 자연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상대적으로 낮은 액수의 정액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최 회장 등은 “당시 SK는 LG실트론의 나머지 49% 지분 중 KTB프라이빗에쿼티가 보유한 일부 지분(19.6%)만 인수해도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가 가능했다”며 “SK가 잔여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지 않은 것을 ‘사업 기회 제공’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법 재판부는 지난 1월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받았던 과징금조차 법원에서 취소된 것이다.

이에 공정위는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과징금 산정 근거를 강화하고, 실효성이 있는 제재가 부과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섰다.

선행연구와 상속증여세법 등 다른 법률에서의 평가 방법을 참고하고 해외사례, 회계적·재무적 평가 방법 등을 종합 검토해 공정거래법상 지원·위반 금액 등 산정에 적합한 방안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개발된 산정 방법을 활용하기 위한 제도개선 등 정책 수단도 모색하기로 했다. 가령 관련 매출액 개념을 적용할 수 없는 자연인에 대한 부당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 위반 금액을 산정하기 위한 다른 기준을 마련하는 식이다.

제도 개선이 완료되면 향후 대기업집단의 부당 지원 행위에 대한 제재 수위가 전반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급감했다는 비판도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익편취 행위에 부과되는 과징금 산정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고, 과징금을 현실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연구용역 결과를 검토한 뒤 본격적인 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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