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이 뭐길래①] “손님은 왕?”...고객 갑질여전, 감정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

산업 / 문혜원 / 2018-09-10 09:51:38
10명 중 3명 고객 폭언 경험..‘금융산업노동자법’있어도 현장에선 유명무실<br>직원보호법 준수 할 인식제고·금융사 책임 개선노력 필요

<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화이트칼라 직업으로 선망 받는 은행원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고된 근무와 ‘진상고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기 때문. 최근에는 ‘금융권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금융기관 내 직원 보호를 목적으로 한 진상고객을 응대하는 매뉴얼도 생겼다.


예전의 ‘고객은 왕’에서 ‘직원보호’도 소중하다는 식의 조직문화가 형성되는 듯 보이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평가 리스크’를 우려해 고객과의 다툼에서 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전한다. 이에 은행원들의 어려운 점을 들여다보고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토요경제=문혜원 기자] # A은행에서 텔러로 근무하는 ‘강’씨(29세)는 일요일 밤마다 잠을 설친다. 월요일이 되어 출근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강 씨는 자주 고객으로부터 반말·욕설 등을 듣고도 참아야 했고, 이제는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린다고 호소했다.


# B은행 영업 창구에서 근무하는 ‘이’씨(34)는 고객으로부터 황당한 보상요구를 받았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고객이 통장을 만들면서 도장의 뚜껑을 닫아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제기했고, 그것도 모자라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강’씨·‘박씨’와 같이 고객과 자주 마찰이 생기는 은행원들은 하루 10명 중 3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8월 공동으로 조사한 모바일 설문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합원 1만80366명 중 폭언을 당한 경험은 5672명(31.4%)이었다. 이어 폭행(1.2%)·성희롱(3.9%)·괴롭힘(14.2%) 등의 피해 순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비단 오늘날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난2016년 노동사회연구소가 조사한 ‘2016 감정노동자 의식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원의 33.6%가 고객 응대 시 갈등이나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보고서에서 눈에 띈 대답은 ‘고객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고 답한 은행원이 45.4%에 달했다. 또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회사의 감시가 있는지와 고객응대 평가가 승진에 미치는 지를 묻는 질문에는 49.4%가 ‘그렇다’는 입장을 표했다.


은행원들이 이처럼 유난히 고객들에게 심한 스트레스 받는 이유는 바로 직업 특성에 있다. 고임금을 받는 엘리트 직업이라는 모습 뒤에 ‘감정노동자’라는 그늘이 숨어있는 것. 우리나라에는 대략 740만 명의 감정노동자가 있다. 그 중 은행 창구직원·텔러 등이 속한다.


감정노동이란 ‘감정을 숨기고 억누른 채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 따라 말투나 표정 등을 연기하며 일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대한항공 ‘갑질’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면서 정치권도 ‘갑질’을 근절할 방안으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2016년 6월 ‘감정노동자보호법’을 통과한 데 이어 지난2월에는 ‘금융권 감정노동자보호강화 5대 금융법 개정안’이 나왔다.


통과된 개정안에 따르면, ▲악성민원인에 대한 고발 등 법적조치 의무화 ▲ 금융회사는 근로자가 해당 고객을 기피할 수 있는 권리 보장 ▲근로자에 대한 상담·치료 지원과 상시적 고충센터 운영 등이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에 각 금융기관사마다 ‘직원을 보호할 의무지침’을 내렸다. 시중은행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진상고객’대응 매뉴얼·직원고충상담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직원 심리상담프로그램(힐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힐링카폐는 직원들의 정신건강 위험에 대한 예방관리·직원들의 대고객 상담 등 감정노동에 따른 직무스트레스 해소 및 만족도를 제고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은행은 ‘직원고충 119’ 홈페이지를 통해 심리적으로 고통 받은 직원들을 돕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우울증, 부모 자녀양육 태도 등에 대한 심리검사를 진행하고, 행내 전문상담가와 연결해주거나 외부 상담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신한은행은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지난2016년 7월 ‘특별 민원팀’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문제행동 소비자에 대한 현장 방문 상담 및 법률적 판단 제시 등을 통한 영업점 상시 지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선의의 다수 소비자 불만 해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금융권 직원을 보호하는 책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금융권 감정노동자보호강화 5대 금융법 개정안 조항이 유명무실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은행원들에 따르면 “‘고객은 왕’이라는 서비스 정신 아래 암묵적으로 ‘하대 취급은 당연하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 무리한 고객의 요구와 심한 폭언을 들어도 바로 ‘부당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특히 3중 평가로 불리는 CS(고객평가제도)·민원평가·KPI(영업평가) 등이 직원들에게 우회적인 압박만 주고 있다는 평이다. 금융산업안전법에는 ‘피해를 당했을 경우 휴가·휴직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실제 평가 우려로 인해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의견이다.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센터 소장은 “형식적 운영으로 인해 현장에서 법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 법 조항에는 ‘은행·금융기관이 직원을 보호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중요한 개정은 빠져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우미 금융노조 여성부위원장은 “은행 텔러 직원의 경우 고용외주업체를 두고 뽑기 때문에 만약 고객에 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은행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 단순하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 부위원장은 “고객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때 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며 “과도하고 불필요한 CS제도를 폐지하고, 은행 내부적으로도 직원들에게 공정서비스를 지향할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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