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스 피카르트 저.배수아 역, 247쪽, 1만3000원, 봄날의책
‘침묵의 세계’가 침묵에 관한 성전(聖典)이라면,
‘인간과 말’은 말(wort)에 관한 성전이다!
이 책은 말과 언어, 그리고 인간에 관한 매우 아름다우며 시적인 운율을 가진 명상록이다. 말을 중심으로, 말과 소리, 말과 빛, 말과 진리, 말과 결정, 말과 사물, 말과 행위, 말의 시간과 공간, 말과 인간의 형상, 말과 목소리, 그림과 말, 말과 시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본다.
말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 그리고 말이 탄생하는 순간에 펼쳐진 세계를 깊이 응시하고 그것이 빛이 되는 순간을 포착하여 인간과 말의 관계를 관조한다. 독자들은 말의 껍질이 벗겨지고 말이 원래 지니고 있던 빛이 드러나면서 언어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놀라운 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침묵 속에서, 천천히, 느껴야 하는 책!
제목에서 연상되는, 언어에 관한 책이 아니다. 또 비트겐슈타인 유의 철학책도 아니다. 저자가 관찰하는 언어는 언어학과는 관련이 없고, 철학적인 문구들도 사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이나 전문용어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은 언어로 함축된 해방의 모든 몸짓이다. 또한 진지함에 관한 책이다. 그것도 파편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성으로서의 진지함.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는 언어를, 육감적으로, 공간적으로 구체적으로,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지녔다. 지나치게 구심적이기보다 강줄기 흐르는 물처럼 동사 느낌으로 풀어 흩어져 더욱 시적이고 산문적이다.
이 책은 단숨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마치 나무처럼 서서히 자라난 책이다. 《인간과 말(Der Mensch und das Wort)》은 인간을 깊이 동요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편안하고, 무결하며, 건강한 책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한밤중의 탐닉이 아니라 아침의 명료함을 선사한다. 더할 수 없이 섬세한 감수성으로 무장했으면서 동시에 넉넉한 천성을 가진 책이다.
피카르트가 주목하고 비판한 것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인간의 육체, 인간의 얼굴, 이미지와 회화와 같은 시각적 요소들이, 대개의 경우 철학자의 주된 관심사에서 밀려나기 마련인 것들이, 말에 대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피카르트는 인간의 육체를 정신의 산물, 말의 산물로 보았다. 그러므로 말이 우리를 보게 하며, 보이게 한다. 또 그는 우리 현대인이 그동안 거의 자명한 것으로 여겨왔던 현대적인 가치들, 즉 실존주의, 개인, 주관, 정신분석, 감성 등을 비판한다. <토요경제=이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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