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답 1. 반기문이 직접 말하는 반기문
“저에 관한 책이 15권 정도 있습니다. 대부분 한국어로 쓰였지만 두세 권은 영어로 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책들의 저자들과 한 번도 책 출간을 전제로 한 사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습니다. 2년 넘게 10시간 이상 함께 보낸 사람은 톰 플레이트 교수가 처음입니다.”_반기문, 2013년 3월 뉴욕 출판기념회에서
#대답 2. 외교정책 보좌관 반기문과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이 제게 그러더군요. ‘반 대사, 우리에게는 외교통상부 장관이 있습니다. 그러니 외교통상부 장관으로서의 임무는 그 사람이 하게 합시다. 대신에 반 대사는 내 가정교사가 되어주세요. 나는 외교정책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노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성품과 사고방식을 감안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분은 그런 식으로…… 체면이 깎이는…… 굴욕을 견딜 수 없는 분입니다.”_<2장 코리안 커넥션> 중에서
#대답 3. 외교통상부 차관 반기문과 김대중 대통령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한국에 돌아와서 문제가 되었지요. 그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이미지가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3월 정상회담은 총체적인 외교 실패였어요. 김 대통령은 매우 불쾌해했고, 그래서 저를 해임하기로 했죠. 그전에 외교통상부 장관도 해임했고요. (……) 저는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직업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마감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 대사로 파견되어야 했는데, 완전히 공직에서 해임되어 일반 시민이 되었죠. (……) 전례가 없는 일이었죠. (……) 제가 정치적으로 책임을 진 겁니다.”_<2장 코리안 커넥션> 중에서
#대답 4. 반기문 사무총장과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클린턴 전 대통령
“(전 하버드 총장이자 클린턴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일류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가 클린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을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클린턴이 10시 백악관 회의에 제때 나타난 비율은 30퍼센트였지만, 오바마는 90퍼센트였다고 합니다. 클린턴이 다음날 자기가 주재할 회의 주제에 관한 문헌을 읽었을 가능성은 아주 낮고, 오바마가 미리 자료를 읽었을 확률은 70퍼센트 정도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회의를 주재하기 전에 100퍼센트 어김없이 모든 자료를 읽습니다. 시간을 지키는 비율은 97퍼센트입니다. 저는 항상 규율이 잘 잡혀 있습니다.”_<에필로그> 중에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위한 10년의 로드맵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관련 책들이 어린 시절부터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까지를 다뤘다면, 《반기문과의 대화》는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난 이후를 그렸다. ‘세계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는 해피엔딩의 스토리로 인간 반기문을 기억하고 있던 독자라면,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24시간 전화 대기 중인 피로와 불면의 직업인 이야기를 반전으로 맞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유엔이라는 조직과 사무총장이라는 직무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적 자원과 경제력을 가진 국가 지도자와 달리 유엔 사무총장은 오직 도덕적 힘과 권위, 그리고 회의 소집권만 있다. 모든 결정과 자원은 회원국에서 나온다. 분명한 한계 속에서 반기문 총장은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위해 매일매일의 로드맵을 짜야 하는 치열한 분투의 현장 한가운데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세계 일급 외교관 반기문의 면모는 유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를테면, 반인륜적 범죄가 벌어지는 국가에 유엔이 개입해 인권을 보호하는 개념인 보호책임(일명 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에 대해 회원국들이 그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실행을 위한 제반 작업에는 반대하자 반 총장은 연봉 1달러의 보좌관을 채용해 R2P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166쪽). 그리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 다른 국가 지도자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동시 휴전’ 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해 분주할 때, 그는 ‘동시 휴전’의 프레임을 탈피해 이스라엘의 ‘일방적’ 휴전을 성사시켰다(180쪽). 이후 팔레스타인 진영의 하마스가 휴전 선언을 하기까지 1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뛰어난 외교 수완을 보여준 반기문 총장은 남수단 독립,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전, 코트디부아르 내전 종식을 이룩한 역사상 가장 능동적인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가 각광받는 시대, 겸손과 솔선수범의 리더십
임기 초만 해도 반기문 총장은 서구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외교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이라고 그를 혹평했고, <뉴스위크>는 2007년 3월호 표지에 반 총장의 얼굴을 싣고 “이 남자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타이틀로 기획기사를 실었다. 2011년 재선에 성공했을 때 그의 연임 소식은 <뉴욕 타임스> 같은 미국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반 총장 자신은 “충격”이었다고 회상한다(129쪽). 언론 플레이에 능숙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카리스마 부족도 문제였다. 이는 유엔 조직 개편에도 큰 걸림돌이 되었다. 기존 유엔 직원들과의 조화가 어려웠다. 그러나 반 총장은 말보다 성과가 먼저이고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카리스마보다 집단의 리더십, 즉 모든 사람의 지지와 합의를 기반으로 조직을 움직이는 리더십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그 실천으로 그는 유엔에 여성기구를 최초로 설립, 유엔 사무차장보 이상의 직급에 여성의 비율을 40퍼센트 높이는 등 인적 자원 활용에 있어 모범을 제시했다. 그리고 부하 직원들에게 전권을 주고 실수로 인해 생길 정치적 책임은 모두 자신이 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한 “재해를 입었는가? 조심하라! 다음 비행기 편으로 반기문이 간다!”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신속하고 적극적인 현장형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로 반 총장은 유엔 조직의 책임감, 효율성, 효과성, 윤리의식이 좋아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에게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있다
저자인 톰 플레이트는 상임이사국들이 이번 사무총장Secretary-General을 두고 장군general 스타일보다 비서secretary 스타일을 원했다는 주장을 비롯해 “유엔은 미국 외교정책의 유용한 도구”라는 의혹, 5개 상임이사국 체제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콘돌리자 라이스가 대북문제에 능숙하지 못했다는 평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반 총장의 견해를 서슴없이 묻는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이 직업이 총장님을 미치게 하지 않습니까?”라든지 “미국인이라면 아마 이혼당하셨을 겁니다!”와 같이 즉흥적이고 익살스러운 언사의 톰 플레이트와 반듯하고 정답 같은 한국인 신사 반기문 총장이 일곱 번의 공식 대담, 여섯 번의 사적인 만남에서 서로 공감하고 맞장구치고 때론 견제하고 긴장하는 길항 과정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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