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김중수 김석동 ‘내가 맞소이다’

산업1 / 장우진 / 2011-10-10 14:38:55

한국은행법 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1라운드’ 대결을 치른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이번에는 그리스 사태에서 불거진 유럽의 재정위기 진단을 놓고, 또 다시 미묘한 시각차를 보여 관심을 끈다.
두 사람 모두 한국 경제가 이번 유럽재정위기의 파고를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그리스 사태로 불거진 이번 유럽재정위기가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판단을 하고 있다.
지난해 취임 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수장들과 국제적 공조의 수위를 꾸준히 높여온 김 총재는 이번 위기가 리먼 사태와 같은 양상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데 비해, 김 위원장은 4분기 이후 문제가 곪아 터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김중수 “예견된 위기는 더 이상 위기 아니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진단한 유럽 사태의 뿌리에는 “예견된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는 그의 견해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위기 경제학’을 가르치며 제자들에게 전수한 가르침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이번 유럽 재정위기가 ‘예견된 위기’였다고 진단한다. 리먼 사태와 유럽 재정위기는 서로 닮은 듯 하지만 잘 뜯어보면, 생김새가 다른 ‘쌍생아’라는 것. 무엇보다, 지난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발 위기를 내다본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금융상품은 복잡했고, 그 후폭풍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꼿꼿이 서있던 미국의 부동산이 털썩 주저앉자, 복잡한 파생 금융상품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으로 변했고, CDO를 사들인 은행들의 피해 규모를 종잡기조차 어려웠다.
위기는 세계 전역으로 바람처럼 퍼져나갔다. ‘제코가 석자’인 미국·유럽은행들이 달러를 회수하자 국내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치솟았다. 월가 영업사원들이 각국에 판매한 파생 상품의 규모는 어림짐작조차 어려웠다. 상대 은행의 재무제표에 있을 부실자산(toxic asset)을 두려워한 월가의 콜시장은 마비됐다.
이번 유로존 재정 위기의 위중함은 물론 리먼 사태보다 더하다.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연루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 피그스(PIGGS) 국가들의 방만한 재정운용에서 비롯된 이번 위기의 성격은 리먼 사태에 비해 비교적 명확하다. 살림살이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일삼다가 문제가 불거진 이번 사태의 피해 규모도 상대적으로 측정하기 더 용이하다. 유로존은 시나리오별 대처 방안도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고통 분담을 둘러싼 독일, 프랑스 등 유로존 리더들의 갈짓자 행보다. 김 총재는 유로존 리더들이 결코 이 문제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자칫, 유로존 해체의 쓰나미로 이어질 수 있는 이번 사태의 위중함을 아는 그들이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OECD대사를 지냈으며, 중앙은행 총재들과도 교분이 두터운 김 총재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이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가들의 리더십에 비교적 익숙한 국제화된 한은 총재의 분석이다.


◇김석동 “4분기 이후 유로존 문제 터질 수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시각은 다르다. 올 4분기나 내년 초 유로존 문제가 터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유럽의 양대 강국인 프랑스 은행들이 그리스 채권을 대량 사들여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국채 만기가 속속 다가오는데다, 정치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잃고 방황하는 유럽 사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5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이코노미스트 컨퍼런스(Economist Conference)’에서 “올해 초 취임 당시 유로존 문제는 해결이 어려울 것이고, 결국 올 4분기나 내년 초에 이 문제가 또 다시 터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유로존 비관론’을 내비쳤다.
그는 “부실 금융기관 정리, 가계부채, 외환건전성 등을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7개 저축 은행을 퇴출시키고, 주요 시중 은행들을 상대로 외화 차입 라인을 다변화할 것을 주문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외환보유고,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 등 금융 위기의 파고를 막기 위한 ‘해자’를 깊숙이 파놓은 우리 경제의 대응력이 매우 높아졌지만, 이번 위기의 발화점인 유럽이 향할 종착역은 음울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김중수 총재와 미묘한 차이가 읽히는 대목이다.


◇ 양대 수장의 예측능력 ‘누가 더 정확할까’


“그리스가 부도 상태에 있는 것과, 실제로 부도가 나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리스가 부도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하는 순간 엄청난 충격파가 몰려올 것이다. 리먼사태에 버금가는 금융위기가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
시중은행의 한 경제전문가는 “그리스 국가 부도 선언은 유로공동체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의 서막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문제는 유럽 재정위기 사태가 그리스 탈퇴를 부를 정도로 심각한 국면으로 갈 것인지 여부이다.
유럽사태의 추이를 바라보는 금융위원회·한국은행 수장의 미묘한 차이는, 한은법 개정안 통과로 금융안정이라는 한 배에 올라탄 양기관 예측능력의 역량을 헤아리는 단서이다. 시행령 개정 국면을 앞둔 양 기관이 전개할 한은법 2라운드 공방에서 지켜봐야할 또 다른 관전포인트이기도 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물론 양 수장이 일치된 견해를 보이는 대목도 있다.
이번 사태의 여진이 매우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를 필두로 재정위기에 신음하는 국가들이 상당기간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가운데 실물경제의 성장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된 미국 경제도 소비 여력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리먼 사태의 후폭풍에서 빠른 속도로 벗어나 고속성장을 해온 과거와의 결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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