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정현, “이형택 뛰어 넘겠다”

문화라이프 / 홍성민 / 2013-07-15 11:17:25
한국 선수 ‘최초’ 윔블던테니스대회 준우승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 테니스의 역사와도 같은 이형택 원장님을 뛰어 넘고 싶다.”

[토요경제=홍성민 기자] 주니어 세계랭킹 41위 정현(17·삼일공고)이 한국 남자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테니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주니어부문 남자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 정현은 지난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주니어가 아닌 시니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현은 지난 7일 오후 9시(한국시간)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대회 주니어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주니어 세계랭킹 7위 지안루이치 퀸지(17·이탈리아)에게 0-2(5-7 6<2>-7)로 석패했지만 준우승을 거머쥐며 ‘한국 테니스의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출국 전과 달리 수많은 환영 인파에 크게 당황한 정현은 “영국에서 코치님과 동료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며 칭찬을 해주기는 했지만 그때는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크게 와 닿지 않았다”며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 보니 이제야 (윔블던 준우승이)실감이 난다”고 귀국 소감을 전했다.

정현은 입국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큰 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차지하게 돼 기쁘다. 게임스코어 5-3으로 이기고 있다 역전을 당해 아쉽긴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경기를 뒤집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며 “이번 대회에서 어려운 경기를 연달아 치르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결승 무대를 밟으며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서브를 외국 선수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정신적인 면도 더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이형택 원장님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정현의 당찬 꿈에 윤용일(40·삼성증권) 감독은 “이형택 이후로 거물급 선수가 나오지 않아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정현과 함께 이번 대회를 치르며 하루하루가 보람이 있었다”며 “결승전에서 지기는 했지만 테니스 코치로서 그리고 선배로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정현을 칭찬했다.

그는 이어 “경기 내에서 정현이 보여주는 집중력은 이미 톱클래스 수준이다. 어린 선수들 가운데 최고라고 할 수 있다”며 “서브만 조금 더 보완한다면 정현은 이형택의 기록을 넘어 세계 톱10 안에 드는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차세대 스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결승전은 명승부였다. 경기 초반 몸이 덜 풀린 듯 퀸지에게 허무하게 2게임을 내주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1세트에서 게임스코어 5-3까지 앞서나가며 퀸지를 벼랑 끝에 몰아넣었다. 2세트는 시소게임 양상으로 정현이 한 게임을 따내면 퀸지가 곧바로 따라 붙었다. 팽팽한 분위기를 이어가던 가운데 정현은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흐름을 잃었다. 부상 투혼을 발휘했지만 급격한 체력 저하로 퀸지의 강력한 서브에 밀려 연이어 점수를 잃었고 2점을 챙기는데 만족했다. 최종 스코어는 0-2였지만 경기 내용은 막상막하였다.

부담이 큰 메이저 대회였지만 정현은 4강까지 모든 상대를 2-0으로 완파하며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특히 3회전에서 주니어 세계랭킹 1위 닉 키르기오스(18·호주)를 2-0(6-2 6-2)으로 제압하며 세계 테니스 팬들에게 ‘정현’이라는 이름 두 글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한국 선수가 윔블던 주니어 남자 단식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녀를 통틀어 윔블던 주니어 단식 결승에 오른 것도 1994년 전미라 이후 19년만이다.

메이저 대회 주니어 단식 준우승은 역대 네 번째다. 앞서 한국 선수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주니어 단식에서 거둔 최고 성적은 1994년 전미라, 1995년 이종민, 2005년(이상 호주오픈) 김선용의 준우승이었다.


◇우연히 시작한 ‘테니스’, 너는 내 운명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정현과 테니스와의 만남은 우연히 시작됐다.

정현은 ‘테니스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석진(47)씨는 삼일공고 테니스부 감독이고, 친형인 정홍(20·건국대) 역시 어려서부터 테니스 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정 감독과 정현의 어머니 김영미(44)씨는 처음부터 아들 두 명에게 모두 운동을 가르칠 마음은 없었다. 둘째인 정현은 그저 평범한 아이로 키우길 원했다.

하지만 정현이 7살이 되던 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정현이 약시라는 것. 그는 당시 약시로 인해 이미 시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그 후 김영미씨는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정현의 건강과 행복을 최우선 순위로 뒀다.

김영미씨는 “하루는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눈을 위해 넓고 초록색인 것들을 많이 보게 하라’고 말을 했다. 그 순간 테니스가 떠올랐다”며 “이때부터 치료 목적으로 형과 함께 테니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정 감독 역시 운동선수로 키우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의 건강과 교육을 위해 테니스를 가르칠 생각이었다.

어려서부터 체격 조건이 뛰어나고 운동 신경이 좋았던 정현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게다가 정현은 테니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고 누구보다 운동을 즐겼다. 약시도 그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정현은 약시라는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정현의 장점은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시력)이다.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아 사물을 볼 때 일반인들보다 더 집중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체시력이 발달했다. 테니스선수에게 이는 커다란 장점이다.

정현은 2008년 오렌지볼 12세부 우승을 시작으로 국내 남자 테니스의 '최초', '최고' 수식어를 모두 휩쓸기 시작했다. 에디허 국제주니어 챔피언십 우승(12세 이하 부문 한국인최초우승) 후에는 ‘될성부른 떡잎’의 면모를 보이며 2011년 오렌지볼 국제주니어 테니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16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는 정현이 최초였다.

또 정현은 지난해 제93회 전국체전 테니스 고등부 남자단체 우승, 2012년 제20회 오펜바흐 국제주니어 남자단식 우승, 2012년 홍콩 F3 퓨쳐스 4강(국내 최연소 퓨쳐스 4강 진출) 등 수많은 우승 트로피와 영예를 거머쥐었다.

정현의 기량은 올해 들어 더욱 꽃을 피웠다. 그는 지난 6월 경북 김천에서 열린 국제퓨처스 대회에서 한국 선수 역대 최연소(17세1개월) 단식 우승 기록을 세우며 예열을 마쳤다.

그리고 이번 윔블던에서 한국 테니스의 힘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정 감독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성적에 대한 부담은 절대 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현이도 지금까지 슬럼프 같은 것을 겪어본 적이 없다. 승부를 떠나 테니스 자체를 여전히 재밌어한다. 본인이 워낙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만 같다면 앞으로도 큰 위기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현의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현은 다음 주 열리는 대통령배 대회에 출전한 뒤 8월에는 퓨처스 대회, US오픈 주니어 단식 순으로 대회 참가를 이어갈 계획이다.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정현의 미래는 밝다. 테니스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즐기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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