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은 필라델피아 조선소 인수로 현지 교두보 확보
다만 美 법적 장벽은 여전히 높은 과제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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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오션이 MRO를 진행한 월리 쉬라호(USNS Wally Schirra) 모습. 한화오션은 설계도 없이 손상된 러더를 전면 교체하는 등 300여 개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미국 해군은 한화오션의 뛰어난 기술력과 신속한 대응에 대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상징하는 쾌거”라고 평가했다./사진=한화오션 |
[토요경제 = 이강민 기자] 미 해군은 2020년 중국 해군에 함정 보유량을 추월당한 이후, 함대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미국 내 조선 인프라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주요 조선소의 생산 역량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군함 정비와 신조 일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최대 조선소인 뉴포트뉴스조선소조차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3분의 1,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은 미국이 직면한 현실적 공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인프라 부족은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 조선 재건’이 국정 과제로 다시 부상하면서 동맹국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적극 활용하자는 논의가 워싱턴 정가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MRO 성공으로 시장 진입 성공한 조선 빅2
한국의 조선 빅2인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이미 미 해군 MRO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 쉬라함’의 정비를 국내에서 최초로 수행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특히 설계도가 존재하지 않던 방향타를 자체 역설계(reverse engineering) 방식으로 교체해 주목받았다. HD현대중공업 또한 페루 등 해외 군함 프로젝트를 수주한 경험을 기반으로 미 해군 MRO 시장 참여를 공식화했다.
MRO는 단순한 수익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미국 방산 시스템 내부로의 진입과 ‘대미 신뢰 구축 단계’로 평가된다. 조선업계 내부에서는 “미 해군 MRO는 마진율이 높고 물량 확보가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계약을 통해 자연스럽게 건조 협력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HD현대, 헌팅턴 잉걸스와 손잡고 ‘공동 건조’
이 같은 기대가 현실로 옮겨진 사례가 바로 HD현대의 움직임이다. HD현대는 올해 10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HII)와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공동 건조를 위한 양해각서(MOA)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의 설계 및 건조 협력을 중심으로, 미국 내 조선 생산시설 인수·신규 설립과 엔지니어링 합작법인 설립과 MRO 협력까지 포괄한다. 한국 조선사가 미 해군의 함정 건조 프로그램에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팅턴 잉걸스 측은 “이번 협력은 동맹국 간 조선 산업 협력을 본격화하는 중요한 순간”이라며, 미국 조선산업의 기반 혁신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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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사진=HD현대중공업 |
한화, 필라델피아 조선소로 ‘현지 교두보’ 확보
한화그룹은 지난해 말 1억달러를 투입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했다. 현재 이 조선소는 미 해군의 전투지원함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 중이며 이미 두세 건의 정보제공요청서(RFI)를 제출했다.
한화 필리조선소의 데이비드 김 CEO는 “미 해군의 신규 지원함 예산 중 일부는 우리가 건조 가능한 범주에 속한다”며 “이번 입찰을 반드시 따내겠다”고 밝혔다. 조선소는 현재 연간 1.5척의 생산 능력을 향후 5년 내 10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종무 조선소장은 “지금은 물음표가 붙어 있지만, 2~3년 내 건조 속도를 증명하면 미국 정부가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현지화 전략은 단순한 생산기지 확보를 넘어, ‘법적 장벽 회피’라는 실질적 의미를 가진다. 미국 내 생산시설에서 조선이 이뤄질 경우 현행 반스-톨레프슨법의 직접적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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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사진=한화오션 |
미국산 우선법·반스톨레프슨법, 여전히 높은 벽
한국의 조선업체가 미 해군 군함을 직접 수출하거나 건조하는 데에는 아직 제도적 장벽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산 우선구매법(BAA)과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이다. 전자는 외국산 제품의 입찰가를 최대 50% 높게 산정해 미국산 제품에 가격 우위를 부여하고 후자는 외국 조선소에서의 미군 함정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 벽을 넘기 위한 열쇠는 한·미 간 국방상호조달협정(RDP MOU) 체결이다. 해당 협정이 발효되면 한국은 미국산우선구매법의 예외국으로 지정되어 미 조달사업 참여 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이 협정의 연내 체결을 추진 중이지만 현 정치 상황으로 인해 논의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그럼에도 미국 내에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선 인프라 부족과 예산 제약으로 인해 미 해군 함정의 생산 지연이 계속되자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합리적 조선 분담’ 논의가 점차 힘을 얻는 분위기다.
결국 한국 조선업계는 단순한 협력 단계를 넘어 ‘미 해군 공급망의 일부’로 진입하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HD현대는 미국 방산기업과의 공동 건조로, 한화는 미국 내 조선소 인수를 통한 현지화를 통해 각각 다른 경로로 접근 중이다. 두 회사 모두 이미 MRO를 기반으로 신뢰를 확보했고 이는 군함 건조 협력으로의 전환을 위한 실질적 기반이 되고 있다.
향후 RDP 협정 체결과 반스-톨레프슨법의 완화가 이루어진다면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 해군 군함의 일부를 직접 건조하거나 모듈 단위로 공급하는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토요경제 / 이강민 기자 lgm@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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