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2의 건강보험 '이제는 우리가 지켜줘야 할 때'

김효조

khj@sateconomy.co.kr | 2020-12-18 18:57:51


[토요경제=김효조 기자] 몇 주 전부터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움직여서인지 온몸이 쑤셨다.


며칠 후 계속되는 통증에 운동은커녕 발목이 아파 잘 걷지도 못하게 돼 결국 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한의원에 가서 통증부위에 침을 맞고 피를 뽑았다. 다음날 엄청나게 부어오른 다리와 더 큰 통증을 느낄수 있었다.


쩔뚝거리는 다리로 근처 통증의학과를 찾아갔다. 뼈 사진·초음파를 찍고, 검사와 주사를 맞았다, 일주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물리치료를 받았다.


일주일 후, 처음보단 통증이 가라앉긴 했지만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으로 제대로 걷기는 무리였다.


결국 다른 정형외과를 찾아가 다시 진료를 받았다. 또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를 보고 주사를 맞았다.


이번에도 처방대로 약을 짓고 계산을 했다. 계산해보니 불과 2주도 안되는 시간에 치료비로 돈 '백' 넘게 들었다.


그러던 중 가입해뒀던 실손보험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에 청구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진료비의 약 80% 정도를 보험금으로 받았다.


매달 나가는 실손보험료가 아까울 때도 있었지만 안 들어놨으면 어쩔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환자의 본인 부담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보완형 상품으로, 지난해 말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는 약 3800만 명이 가입했다.


그간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사적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해왔다.


다만, 일부 가입자의 과다한 의료서비스 이용 등 구조적 한계점이 존재했다.


보험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의료이용량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56.8%를 지급받았다.


무사고자를 포함한 가입자의 93.2%는 평균 보험금(62만 원) 미만을 지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실손보험 가입자 중 대다수는 보험료 부담이 가중되고, 보험사 손해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오르는 보험료에 결국 피해를 입는건 보험 청구금이 없는 선량한 가입자들이다.


이에 금융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부터 상품구조를 개편한 '4세대 실손보험'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4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의료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적으로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비급여 지급보험금이 많은 가입자에게는 보험료가 할증되고, 지급보험금이 적은 가입자는 보험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간 일부의 과도한 비급여 의료 이용으로 인해 선량한 대다수 국민의 보험료 부담이 가중된 데 따른 조치다.


보험료가 이렇게 계속 오르고, 개편안이 논의 되는 이유는 결국 손해율 때문이다.


지난해 실손보험 위험손실액은 2조8000억 원에 달했고, 위험손해율은 133.9%로 지난 2016년 131.3% 이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에 보험사들은 올해 구실손과 표준화 실손의 보험료를 평균 9.9% 인상했고, 신실손은 9.9%를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보험사들의 보험료 조정에도 불구하고 실손보험은 여전히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상반기 위험손해율은 131.7%로 전년 대비 2.6%포인트 상승했고, 이로 인해 1조 4000억 원 가량의 위험손실액이 발생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비급여 체계를 손보지 않는 이상 실손보험료는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목소리다.


비급여 치료를 환자 본인이 원해서 받는 경우도 있을 거다.


하지만 환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병원에서 비급여 치료를 권장해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 역시 이번에 병원에서 "실비 있으시죠?"라는 말을 당연하듯 들을 수 있었다.


비급여의 경우 진료비 코드조차 표준화가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실손보험에서 과잉진료가 벌어지는 이유는 피부과, 정형외과, 내과, 한의원 등 각각의 병원에서 시행되는 비급여 치료 항목의 치료비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병원의 비급여 진료 권장 등 과잉진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결국 비급여 항목관리, 비급여 진료비 표준가격제도 등 의료제도 개편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단순히 비급여 치료에 대한 보험료를 더 받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과잉의료를 하는 의료기관과 보험가입자만을 탓할 수만도 없다.


1990년대 말 국민은 병원 진료비를 절반 가까이 부담해야 했고 진료비 자기 부담률이 높던 시절, 자기공명장치(MRI) 진단비나 레이저치료비 등엔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았다.


이때 입·통원 진료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상품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보장범위도 진화해 2003년 10월부터는 아예 자기부담금을 없앤 실손보험이 나왔다.


파격적인 혜택에 보험소비자는 열광했고, 보험업계에서도 일명 ‘실손보험 끼워 팔기’까지 하며 경쟁사끼리 보장 범위를 넓히는 등 경쟁에 붙었다.


덕분에 병원들은 신이 났다. 의료비 부담이 적어진 보험가입자들은 병원을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결국 보험료 인상의 주범인은 보험사·의료기관·보험가입자 모두다.


실손보험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던 '제2의 건강 보험'이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지켜주던 실손보험을 지켜줘야 할 때다.


이번 실손보험 개편안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의 대처방안이 아닌 근본적 해결방안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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