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제지회사 담합 논란···“중소업체 고사 직전”
신유림
syr@sateconomy.co.kr | 2020-12-09 14:29:24
[토요경제=신유림 기자] 포장 상자 원재료를 생산하는 대형 제지회사들의 담합행위가 도를 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장을 독점하는 대형업체 몇몇이 특별한 가격 인상요인이 없음에도 주기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물량을 조절해 중소업체들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9일 골판지 상자를 제조하는 지함회사를 운영하는 A씨의 주장에 따르면 대형 제지회사들이 지난 10월 발생한 대양제지 안산공장 화재사건을 계기로 원지 공급을 더욱 줄인 탓에 중소 박스생산 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몰렸다.
A씨는 “이들은 평소 가격 인상 요인이 없음에도 연 단위로 한 번에 20% 넘게 가격을 올렸다”며 “더구나 이들은 단가 인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고의로 일정 기간 원자재 품귀현상을 일으켜 수급 불균형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A씨는 “제지회사들은 판지회사 몇 개를 계열사로 두고 일괄사업을 전개하며 그룹사 위주로 자재를 공급, 우리 같은 회사들은 한 달 넘게 원재료를 못 받아 공장 가동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국내 골판지 박스 흐름은 제지회사, 판지회사, 지함회사로 전개된다. 제지회사는 박스 원지를 생산하고 판지회사는 원지를 공급받아 골이 들어간 판지를 생산한다. 경우에 따라 상자까지 생산·판매하기도 한다. 지함회사는 판지회사에 판지를 공급받아 인쇄, 절단, 접착 등 가공을 거쳐 박스를 생산한다.
특히 국내 제지생산 규모는 일정량의 수출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업계 점유율 7%대에 불과한 대양제지가 화재로 가동을 멈춰도 전체 수급에는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2016년 신대양제지 공장 화재 때에도 제기됐었다. 업계 상위권인 신대양제지 화재로 수급에 차질이 우려됐지만, 잉여 물량과 수입 물량 등의 대체로 재료 공급에 전혀 지장이 없었음에도 원재료 가격이 20% 넘게 치솟아 의구심을 자아낸 바 있다.
사실 제지회사들의 담합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공정위는 2013년 백판지 가격담합 혐의로 한솔제지, 깨끗한나라, 세하, 신풍제지, 한창제지 등 5곳에 약 1000억 원을, 2016년에는 골판지 가격을 담합한 아세아제지, 신대양제지, 고려제지, 동일제지 등 13곳에 약 12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또 2017년에는 직접적인 제재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은 “대형 제지회사 갑질에 고사 직전”이라고 호소하며 공정위의 문을 두드렸다.
중소 지함회사들이 이 같은 어려움에 놓인 건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해제된 2006년부터다. 대기업들은 당시 경영난에 처한 중소 판지·지함회사들을 대량 인수, 수직 계열화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워왔다.
공정위의 제재도 이런 독점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다. 대형 제지회사들 대표와 임원들은 수시로 만나 고의적 조업단축을 통한 생산량 축소, 가격 인상 등을 모의했다.
특히 일방적으로 원지 가격을 급격히 올리면서도 자신들은 골판지와 상자 가격을 기존대로 유지해 중소 회사들의 판로를 막았다.
제지 생산은 환경 문제와 직결돼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 사업으로, 제지회사들의 끊임없는 갑질 논란은 이 같은 폐쇄성에 기인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횡포로 얼마 전 한 영세기업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린뉴딜 시대를 맞아 제지사업이 사람과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도 관심 대상이다. 지난해에는 전남 담양군의 한솔페이퍼텍의 환경공해가 이슈화된 적이 있다.
당시 한솔페이퍼텍에서 발생하는 악취, 소음, 폐수, 특히 소각시설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이 문제로 지적돼 지역 주민들이 ‘환경대책연대’를 조직, 한솔페이퍼텍의 폐쇄와 이전을 요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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