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둘러싼 法.檢갈등 어디까지
수사 54일, 전격 ‘불구속기소’ 결정 실상은?
유지만
redpill83@naver.com | 2013-06-14 18:11:38
[토요경제=유지만 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법처리 수위를 놓고 검찰과 법무부가 힘겨루기 등 ‘갈등 양상’을 보여 시선이 쏠리고 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당초 원 전 국정원장을 구속 수사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불구속 기소’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와의 갈등설이 흘러나오며 ‘힘겨루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검찰이 원 전 원장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결정한 것은 지난 11일이다. 그동안 국정원의 정치·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윤석열 팀장)은 이날 사건의 핵심 인사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이날 오전부터 원 전 원장에 대한 기소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도는 가운데 검찰청사 주변은 온종일 긴박하게 움직였다.
정치권에서는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인 6월19일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원 전 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수사팀 의견을 황 장관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혹이 증폭됐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날 오전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강공'을 폈다. 전날 신경민 최고위원이 대정부질문에서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사팀에 전화해 수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한 데 이은 것이다.
◇구속에서 불구속 기소 왜?
민주당은 또 검찰이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지 않으면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하겠다며 검찰을 압박했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이날 오전 11시께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결론이 나오면 (언론에)바로 알려주겠다"며 아직 법리검토와 사실관계 확인 작업이 남았다는 지난 며칠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오후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더욱 긴박해져 갔다.
이날 오후 1시께 문화일보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의 말을 인용, 황 장관이 이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수사팀 의견을 묵살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서둘러 대책을 논의한 검찰은 오후 1시45분께 언론사 출입기자들에게 "오후 2시에 티타임이 있다"며 긴급히 연락을 돌리고 자리를 마련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이 법무장관 방침에 공개 반발한 것처럼 내용이 왜곡됐다. 장관이 (아직)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바도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설득이 안된다", "장관의 압력이 있지 않았겠냐. 소명을 해달라"며 질문을 쏟아냈다.
다시 해명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검찰은 오후 4시를 불과 20분 앞두고 또다시 "발표할 것이 있다"며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사건 처리방침을 긴급 발표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되 국정원법 외에 논란이 됐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해 기소하겠다는 '절충안'을 전격 공개한 것.
검찰이 수사결과 발표에 앞서 이처럼 '처리방침'을 언론에 공식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채동욱 검찰총장도 이날 오후 6시를 넘겨 "드러난 사실에 대해 있는 그대로 법률을 적용했다"면서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은 사실이 아니다. 앞으로 수사 마무리와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의 발표문을 내놓으며 검찰 내 갈등설의 확산 차단을 거들었다.
◇ 수사 진행 잘 됐는데 법무부에 막혀
검찰은 지난 4월 18일 국정원의 대선·정치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채동욱 검찰총장 체제 1호 태스크포스(TF) 수사팀이었다. 공안부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2차장이 총괄 지휘하고, 특수통인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팀장을 맡았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탓에 수사팀 행보는 빨랐다. 수사 착수 10여일 만에 댓글 의혹 지휘라인에 있는 민모 심리정보국장, 이종명 국정원 3차장, 원 전 원장을 줄줄이 소환했고 국정원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말씀 원본과 댓글 활동 보고서 등을 확보했다. 국정원 심리정보국 요원들이 주로 활동한 인터넷 사이트 15곳의 게시글을 전수조사하면서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도 파악했다. 검찰은 국정원 간부들로부터 “원 전 원장이 지시하고 보고받았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원 전 원장을 재소환하면서 사실상 수사 마무리 수순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때 검찰 내부에서 이견이 감지됐다. 특수부 검사들은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 활동에 대한 책임을 원 전 원장에게 포괄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지만 공안 검사들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수사팀은 수차례 내부 토론을 거쳐 ‘선거법 적용, 영장청구’ 방침을 세우고 대검을 통해 법무부에 중간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 장관이 검찰에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주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사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특수통인 채 총장과는 달리 ‘공안통’이었던 황 장관이 “공직선거법 위반은 다시 생각해보라”며 사실상 수사지휘를 했다는 것.
이에 수사팀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검찰과 법무부 간 갈등이 표면화됐다. ‘검찰이 둘로 갈라졌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사법처리 방침에 대한 결론이 늦어지면서 황 장관이 편법으로 수사 지휘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11일 황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까지 거론했다. 검찰은 “결론을 내기 위한 토론 과정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날 오후 2시까지 검찰은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입장 표명만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거센 정치적 후폭풍을 감지한 듯 오후 4시에 갑자기 결론을 공개했다. 채 총장은 검찰이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직후 “갈등은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 총장도 나섰지만 ‘진화’ 실패
법무부-검찰 간 갈등이 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자 채동욱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서 해명했다. 채 총장은 지난 11일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서 법무부와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신병처리 및 사법처리 수위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는 의혹에 대해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다.
채 총장은 이날 공식입장을 통해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결정은 검찰 내부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쳤고, 검찰의 책임 하에 이뤄진 것"이라며 "법무부와 검찰간 마치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춰졌던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채 총장은 "검찰은 처음부터 이 사건이 매우 중차대하고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므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각오로 수사를 진행해 왔다"며 "그동안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 대해 있는 그대로 법률을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오해로 국민에 염려를 끼친 점에 대해 검찰총장으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수사 마무리와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 野, 연일 공세...“황교안 해임도 고려”
황 장관의 개입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민주당은 발끈하고 나섰다. 수사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해임건의안 제출은 물론 자진사퇴를 압박하는 등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지난 11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황 장관을 상대로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황 장관의 적법하지 않은 검찰 수사개입과 관련해 민주당은 황 장관 해임건의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할 때)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재정신청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검찰은 이미 보름 전에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을 적용해 구속수사키로 결론을 냈다고 하는데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국민은 온당치 않은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황 장관은 원 전 원장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 요구를 묵살하고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에도 사실상 재검토를 주문해왔다. 이는 스스로 법과 원칙을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은 수사가 진행될 경우)대선의 정당성이 훼손될까 우려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국정원 대선개입과 경찰의 은폐 의혹을 국기문란으로 보고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보장하는 것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선 신경민 최고위원은 "이미 황 장관은 검찰과 15일 넘게 대치해왔고 해임건의안 제출 요건은 충족됐다"며 "다만 검찰의 최종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결론이 나오는 대로 수사결과가 나오면 이에 대해 앞서 소개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청장과 관련해서도 "김용판 전 청장도 중요하다. 원세훈 전 원장도 물론 중대한 국사범에 해당하지만 김용판 전 청장도 중범죄를 저질렀다. 두 사람의 신병처리에 비슷한 비중을 갖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곽상도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 개입 의혹을 부인하는 데 대해선 "곽 수석과 검찰의 반응은 이미 예상했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놀랍거나 새롭지 않다"고 응수한 뒤 곽 수석에게 "대포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곽 수석은 핸드폰 기록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 장관과 곽 수석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어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검찰 수사를 방해한 일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고 대답했던 황 장관은 사실상 국회모독죄, 위증죄,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며 "민주당은 황 장관과 청와대 사정당국 수뇌부들이 주도해 국정원 불법대선개입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검찰의 노력이 묵살하고 있는 상황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와대도 검찰수사에 대한 부당한 개입에서 손을 떼고 검찰수사에 대해 어떠한 방해도 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면서 "황 장관과 곽 수석은 국정원 선거개입사건 수사개입에 대해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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