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좀 사가세요”… 조선업계도 ‘할인 경쟁’
조선업계 빅3, 해외 저가수주경쟁 치열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3-05-27 10:24:04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수주 가뭄’을 견디지 못한 조선업계에 저가 수주 경쟁이 불붙고 있다.
특히 ‘빅3’ 조선업체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ㆍ현대중공업ㆍ삼성중공업이 올 들어 일감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가 수주 경쟁이 당장 일감 확보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Maersk)로부터 2011년 2월과 6월에 10척씩 수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가격을 일부 깎아 줬다. 조선업체가 이미 계약을 끝낸 선박 가격을 일괄적으로 깎아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머스크는 당초 대우조선해양에 6m 짜리 컨테이너 1만8000개를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컨테이너선을 1척당 평균 1억8500만달러(2030억원)에 발주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컨테이너의 운송 용량을 늘려 연비(燃費)를 줄이겠다는 포석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 컨테이너선 가격을 깎아준 것은 이달 초 현대중공업이 중국 선사인 CSCL로부터 1만84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을 7억달러(1척당 1억4000만달러)에 수주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CSCL이 발주한 컨테이너선은 머스크와 수송 용량이 엇비슷하지만 가격이 약 25% 싸다. CSCL은 외신과 인터뷰에서 “매력적인 가격에 발주했다”며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머스크는 대우조선해양에 1척당 500만 달러 씩 총 1억 달러를 깎아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장 다음 달부터 컨테이너선을 순차적으로 인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머스크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나중에 주문한 10척에 대해 1척당 100만달러씩 모두 1000만달러를 깎아주기로 한 것이다.
◇ 같은 규격 선박도 100억원 가까이 차이
업계에선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지난달 나이지리아 선사로부터 나란히 수주한 17만5000㎥급 LNG(액화천연가스)선 가격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4척을 수주한 삼성중공업은 1척당 2억2500만달러에, 2척을 수주한 현대중공업은 1척당 약 100억원 싼 2억1700만달러에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기본 규격은 같지만 선박에 적용되는 옵션에 차이가 있다”면서 “같은 등급의 자동차라고 하더라도 어떤 옵션이 장착되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기본 사양이 같은데 선가가 100억원 가까이 차이나는 것은 저가 수주 영향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앞으로 예정된 대규모 선박 입찰에서 국내 기업들끼리 과당 경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장 중동 해운사인 UASC가 이르면 이달 중에 실시할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5척 입찰에서도 국내 업체끼리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무현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조선업계는 도크(선박 건조장)의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감이 없어 도크를 놀리기보다 인건비 등 기본 운영비라도 건지기 위해선 공격 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공격 수주와 수익성 악화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공격 수주는 저가 수주를 동반할 수밖에 없고, 저가 수주는 1~2년 뒤 배를 인도하는 시점에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 수주 경쟁은 결국 국내 업체끼리 제 살을 깎아먹는 것”이라면서 “전반적으로 선가가 살아나고 발주량이 늘어날 때까지 저가 수주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저가 수주 전쟁. 장기적으론 毒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 사이에서 ‘실적 차별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종을 무기로 업황 침체가 무색할 만한 실적을 달성하고 있는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대우조선이 지난 2010년부터 고수해 온 저가 수주 전략이 스스로를 옭아맨 격”이라고 지적했다. ‘저가 수주 전쟁’이 장기적으로 조선업계에 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조선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4분기 영업이익이 673억 원으로 전년 동기와 전 분기에 비해 각각 63%, 24%씩 급감했다. 시장에선 전망치(영업익 1000억 원 남짓)를 훨씬 밑도는 ‘어닝쇼크’로 받아 들였다.
전문가들은 실적 부진의 주된 원인으로 ‘저가 수주’를 꼽았다. 2010년 낮은 가격에 수주한 저선가 물량이 1분기 매출에 대부분 인식되면서 이익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건조 경험이 없는 해양파이프 설치선 등 일부 프로젝트에서 수익성 훼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애널리스트는 “조선업 침체가 본격화된 2010년과 2011년 수주한 악성 물량들이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며 “올해 말까지 대우조선의 실적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실적 부진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결실적 기준으로 대우조선해양의 1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52.5%, 전 분기보다 23.8% 감소했다”면서 “조선과 해양부문 매출이 모두 줄어든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분기 실적 악재가 길게는 내년 초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엄 연구원은 “1분기 실적저조는 다른 때처럼 높은 충당금 탓에 이익률이 하락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영업 마진이 낮아진 탓”이라며 “2분기 이후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도 실적악재 요인이 계속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반해 삼성중공업은 지난 1분기 사상 최대 분기 순이익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의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익은 각각 3조8879억 원과 4402억 원. 영업익은 지난 해 같은 기간과 전분기와 비교할 때 각각 34%, 67%씩 급증했다.
삼성중공업이 경쟁사와 달리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이어가는 배경은 고부가가치 해양 부문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드릴십이나 LNG(액화천연가스)선, 해양설비 등의 수익성 높은 선박이나 설비의 건조 물량이 늘면서 실적이 계속 개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일부 해양프로젝트는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 공사대금 입금(Change Order)으로 수익성 개선에 일조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장기간 이어지는 업황 침체로 인해 주력 선종과 수주 금액이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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