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ㆍ하이트진로 '독과점의 그늘'
진단-한국産 맥주, 왜 맛없나 했더니…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3-05-06 11:34:50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한국산 맥주는 목넘김은 좋지만 미각을 자극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영국에서 수입된 장비로 만드는 북한 대동강맥주 맛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
지난해 11월24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한국 맥주에 대한 평가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맥주산업에 대한 분석 기사를 쓰면서 한국산 맥주인 카스와 하이트가 맛이 형편없다고 혹평했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화끈한 음식, 지루한 맥주’(Fiery food, Boring beer)는 “한국의 맥주 시장이 하이트진로, OB맥주 양대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다양한 맛을 가진 맥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낮은 품질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 독과점체제 너무 오래 지속
국세청이 지난달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주류출고량은 383만334㎘로 전년도보다 9만9621㎘ 늘어 2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성인 남녀가 매일 한 잔반(200cc)씩 술을 마신 셈이다.
주류별로 보면 맥주가 202만2215㎘로 가장 많았다. 소주는 92만3028㎘로 2위, 탁주는 45만8198㎘로 3위를 각각 차지했다.
국민들이 이렇게 맥주를 사랑하는데도 국산 맥주는 왜 밤낮 형편없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주류 소비 대국이면서도 세계에 내놓을만한 명품브랜드 맥주가 없는 주요 원인으로 독과점 구조가 꼽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OB와 하이트가 전체 맥주시장에서 96%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시스템을 거의 80년 이상 유지해오다보니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품질향상이나 신제품 개발에 등한시 해왔고, 그것이 맥주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고 진단한다.
현행법에서는 신규 업체가 맥주제조업에 진입하기가 무척 어렵다. 주세법에 규정된 주류제조판매 면허를 받기 위해서는 500㎖짜리 20만병을 담을 수 있는 저장소를 갖춰야 한다. 주세도 72%나 되고 여기에 교육세 30% 등을 더하면 판매가는 출고원가의 108%에 달한다. 시장점유율이 0.2% 미만으로 극히 낮아 소량생산 할 수밖에 없는 중소업체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대형 맥주제조업체와 경쟁을 펼칠 형편이 전혀 못된다. 기득권을 가진 독과점 OB, 하이트가 시장을 휘저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 맥아함량 등 성분 표시 ‘불성실’
맥주는 성분표시의무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형 맥주제조업체는 재료의 함량을 영업 비밀을 이유로 성실하게 표시하지 않는다. 맥아를 몇% 썼는지 홉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어떤 첨가물이 들어갔는지 소비자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기껏해야 ‘맥아 수입산 94%(호주 캐나다 영국), 국내산 6%’, ‘수입산 맥아 79%, 국내산 맥아 21%’ 등으로 맥아의 수입산과 국내산 비율 정도만 공개한다.
맥주의 주정을 만드는 재료로 맥주보리를 100% 쓰는 걸로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주류업체들은 맥주를 만들 때 대부분 맥주보리 외에 부재료인 감자전분 고구마전분 등을 섞어서 쓴다. 이 비율은 영업 비밀이라며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어떤 브랜드는 맥주보리는 10%만 사용한 것도 있다니 맥주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소비자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 비율을 공개하라고 꾸준히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맥주는 국민건강과 직결돼 있는 식품이며 더구나 대량 소비되는 공산품이므로 당국은 맥주 제조업체들의 주장에 동조해 침묵하고 있을 게 아니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성분표시의무제를 맥주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에게 제품 선택의 판단 기준을 삼도록 하고, 품질을 높이기 위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자율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안 하면 공개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맥주 제조업체들은 “요리사들이 자신이 개발한 맛의 비결을 보존하기 위해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는 것처럼 재료의 성분 함량은 기업 고유의 노하우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4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맥주산업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맥주제조업협회 관계자는 “맥아를 100% 사용한 맥스, 골든라거 등을 내놨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며 “맥주보리 사용 비율과 맛은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는 독과점 체제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존 맥주 제조업체들이 늘 되풀이 해온 주장이라는 것이 하우스맥주 등 중소 맥주제조업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맥주라고 이름을 붙인 술에 원료로 맥주보리보다 감자전분 옥수수전분을 더 많이 사용한다면 그것을 맥주라고 할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제조방식도 거의 ‘하면 발효식’
재료의 문제와 함께 제조방식도 맥주의 질, 맛의 다양성을 구현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맥주 제조방식은 크게 상면(上面)발효방식과 하면(下面)발효방식으로 분류된다. 국내 대형맥주제조 업체들은 하면발효방식으로 만드는 라거 타입의 맥주만 생산한다.
라거 맥주는 맛이 깔끔해 목넘김은 좋지만 맥주의 향과 맛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게 맥주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대동강맥주는 상면발효 방식으로 만든 에일(ale) 타입 맥주다. 맥아 홉 등 주재료를 모두 독일에서 수입해서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동강맥주는 2011년까지 수입됐는데 천안함 사태에 따라 취해진 5ㆍ24 조치로 수입이 중단됐다.
북한은 지난 2000년 ‘최고의 맥주를 만들라’는 김정일의 지시로 1999년에 폐업한 영국의 어셔트로브리지 맥주회사의 설비를 1500만 파운드에 들여와 평양시 사동구역 송화동에 공장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대동강맥주 외에 평양맥주 금강맥주 용성맥주 등 4개가 있는데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대동강맥주를 추켜세운 것은 설비가 영국제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페스티벌에도 참가 못하게 ‘규제’
차보윤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 회장은 “우리나라에도 이젠 세계에 내놓을 우수한 맛과 개성이 있고, 품격 있는 맥주가 나와야 한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맥주 중에서 선택해서 마실 권리가 있다”며 “마이크로브루어리(소규모 제조맥주)가 활성화 되는 것이 그 해답”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몇몇 업체가 맥주시장을 과점해온 일본은 우리보다 8년 빨리 마이크로브루어리 시장을 열었는데 지금은 200여개의 다양한 맛을 가진 맥주들이 등장해 어디를 가나 지역 특색에 맞는 맥주를 즐길 수 있다”며 “아직 점유율은 낮지만 이들이 양적 질적으로 일본 맥주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하우스맥주는 아무리 맛이 좋아도 외국에서 열리는 맥주페스티벌이나 맥주콘테스트에 참가해 평가를 받아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주세법에 소규모 맥주제조자(하우스맥주)는 제조시설에서 판매장까지 배관으로 연결해야 판매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맥주 축제를 순례했다는 하우스맥주 바네하임 대표인 김정하 브루어마스터(맥주제조장인)는 “우리나라에도 하우스맥주 중에서 훌륭한 맛을 가진 맥주가 많은 데 외국 페스티벌에 나가 본 맥주가 하나도 없다”며 “콘테스트와 축제에 나가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행사에 참석한 많은 바이어들로부터 주문도 많이 받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출품조차 못하게 돼 있어 매번 아쉬움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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