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형저축, 시작만 ‘창대’했나
재형저축 한 달, 벌써 ‘시들’
유지만
redpill83@naver.com | 2013-04-29 10:52:22
[토요경제=유지만 기자] 지난 3월 판매를 시작한 재형저축이 출시 초반 반짝 인기를 끌었다 다시 시들해지고 있다. 세간의 관심을 모으며 18년만에 부활한 재형저축은 출시 당시에는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다른 서민형 저축상품들과의 큰 차별화가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가 잦아들고 있는 상황이다.
재형저축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은행권이다. 재형저축 상품 판매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은행 직원들은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재형저축 가입을 권유하기도 하는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 한 은행원은 “판매 실적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피부로 체감 가능한 정도”라며 “판매 목표치를 채워야 하니 주변에라도 (가입을)권유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재형저축 출시 당시 가입자격을 갖춘 인구는 총 900만명 정도로 추산됐다. 출시 후 50여일이 지난 현재 실제로 재형저축에 가입한 사람은 총 160만 명 정도다. 가입 대상자의 20% 정도만이 가입한 셈이다. ‘18년만의 부활’, ‘일반 예금보다 고금리’등의 구호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마케팅했던 은행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8년 전과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다른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은행권의 안목이 좁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재형저축의 상황이 더 암담한 것은 판매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재형저축 판매 첫날인 3월 6일에는 198억원을 기록했으나, 이후 연일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 19일에는 33억 7000만원까지 줄었다. 50일 새 80%가량 실적이 급감한 것이다.
이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은행원들이 자기 이름으로 가입하는 ‘자폭 통장’이 줄어들고, 실제 적금이 필요한 수요자들의 가입이 거의 다 끝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9일까지 재형저축 판매실적은 총 165만6000계좌, 2641억원이다. 재형저축 가입 자격이 있는 사람(총급여 50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와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개인사업자)이 90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입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연봉 수준별 재형저축 가입률 차이도 상당했다. 연봉 3000만원대와 4000만원대 소득자의 재형저축 가입률은 각각 42.9%, 40.5%였다. 하지만 연봉 20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7.8%에 불과했다. 소득이 적을수록 가입자 비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상황이다.
◇ 소비자 부담 높아 ‘기피’
재형저축은 연소득 5000만 원 이하의 근로자나 3500만 원 이하 자영업자에게 이자·배당소득세(15.4%·주민세 포함)를 면제해주고 1.4%의 농어촌특별세만 내게 하는 상품이다. 1976년 도입된 비과세 저축상품으로 1994년 재원 부족 탓에 판매가 중단됐다가 18년 만에 부활해 큰 관심을 끌었었다. 새로 등장한 재형저축은 최초 3~4년간은 고정금리를 적용하고, 이후 1년 단위로 변동금리를 적용하는데 기본금리와 우대금리를 합산한 최고금리는 은행 4.0~4.6%, 저축은행 3.8~5.0%, 상호금융 2.8~4.8% 수준이다. 이는 다른 저축 상품보다 금리가 1%포인트 이상 높아, 출시 당시 이 같은 고금리가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하지만 이같은 혜택을 모두 누리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발목을 잡았다. 일반 예·적금보다 금리가 높지만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7년 간 불입해야 하는 데다 최고금리를 받으려면 신용카드 사용, 급여이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하는 등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는 요소가 많다. 또한 상당수 상품이 가입 후 최초 3년 동안에만 고정금리를 제공하는 점도 소비자들에게는 부담거리다. 재형저축에 가입한 회사원 조모(35세, 남)씨는 “가입하긴 했지만 7년간 돈이 묶인다는 것은 부담”이라며 “단기 적금 상품으로 가입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조금 있다”고 말했다.
◇ 시중 은행원들, ‘실적 부진’에 전전긍긍
재형저축 실적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은행 영업점이다. 당초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을 향해 직원별 실적할당 및 과도한 경품 제공 등을 금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일부 은행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신세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할당량까지는 아니더라도 (판매실적을)어느 정도 맞춰줘야 되는 상황”이라며 “일부 은행원들은 자신의 지인이나 가족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으로 가입하는 ‘자폭 통장’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귀띔했다.
시중은행에서는 “할당량이란 것은 없다”고 못박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금감원에서의 지침도 있고 해서 할당량은 전혀 내려주지 않고 있다”며 할당량 문제는 자신들과 상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실적이 부진한 영업점이 자체적으로 직원들에게 할당량을 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해 할당량이 존재한다는 의심의 여지를 남겼다.
◇ 재형저축 외에도 고금리 상품 많아
재형저축의 인기가 이처럼 빠르게 시든 이유로는 시중은행에 재형저축만한 고금리 상품이 많다는 점도 들 수 있다. 금리가 바닥을 치면서 고금리 상품이 뚝 끊기는 듯 했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복지가 강조되면서 은행들이 역마진까지 감수해가며 고금리 상품을 내놓았다. 특히 연소득 1200만원 이하의 근로자나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한 ‘초고금리’ 제품들까지 등장해 재형저축의 ‘고금리’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9월 출시해 매달 신규 가입자가 10%씩 늘고 있는 ‘우체국 퍼즐적금’은 3년 만기로 적립할 경우 최고 연 4.9%의 금리혜택을 볼 수 있다. 재형저축의 최고금리가 연 4.6%인 점을 감안했을 때, 이보다 0.3% 높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퍼즐적금은 6개월 만기일 경우 3.7%, 1년은 4.2%, 2년 이상은 4.7%가량의 이자를 받을 수 있고 최대 만기인 3년을 다 채울 경우 우대이율까지 합치면 4.9%까지 가능하다.
NH농협은행의 하트 적금은 인체조직기증 희망서약, 사회봉사 등의 공익 활동에 따라 우대 금리를 제공한다. 하트 적금의 최고 금리는 연 6.21%에 달한다. 인체조직기증은 사후에 피부나 뼈·연골·인대·건·혈관·심장판막 등을 기증하는 것으로 한 명의 기증자가 최대 100여명의 환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특히 3월부터 희망서약자가 하트적금 가입시에는 0.5%p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우리은행의 ‘우리매직적금’도 인기다. 이 상품은 7%의 초고금리를 적용해 인기를 끌었던 ‘우리매직7적금’의 후속상품으로, 금리는 6%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상품이다. 연 3.5% 기본이율에 신용카드 추가 시 사용액에 따라 최고 3.0%의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 금융당국, 대책 마련 나서
재형저축이 주춤하자 금융당국은 고정금리를 최대 7년까지 보장하는 상품을 출시하도록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재형저축 가입이 어려운 취약계층이 가입할 수 있는 적금상품 확대도 금융권에 주문했다.
금감원은 금융권에 고객 상품선택권을 위해 현재 3∼4년인 고정금리 적용기간을 최대 7년까지 확대한 상품을 개발하도록 지도했다. 일부 은행은 7년 동안 고정금리를 주는 재형저축 상품을 개발 중이다. 최소 의무가입기간인 7년 동안 동일금리를 보장해 줘 시중금리 하락에 따른 손해를 피할 수 있다.
재형저축도 가입하기 힘든 취약계층을 위한 고금리 적금상품 개발도 주문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재형저축 가입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해 고금리 적금상품 확대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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