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고 나누고’, 미래부-방통위 ‘애매한 조직개편’
유지만
redpill83@naver.com | 2013-03-25 15:34:23
지난 17일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3주만에 극적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타결됐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계속되는 협상 끝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합의했다. 타결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방통위는 기존처럼 중앙행정기관의 지위를 가지며, △ 방송통신발전기금은 미래부와 방통위가 공동으로 관리 △인터넷TV(IPTV)는 방통위에서 미래부로 이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위성TV 등 뉴미디어는 방통위에서 미래부로 이관(단, 허가 및 관련 법 제정과 개정은 방통위 사전 동의 필요) △통신용 주파수는 미래부, 방송용 주파수는 방통위가 관리 △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조직개편안에 합의 후 여야 정치권은 자신들의 성과에 대해 자평했다.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밝히며"여야는 이제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각종 민생법안을 속히 처리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국회 운영과 관련해 민주통합당의 성의 있는 협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민주통합당은 윤관석 원내대변인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윤 원내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여러번 SO의 미래부 이관을 언급할 정도로 높은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대승적 차원에서 통 크고 깔끔하게 양보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새 정부의 핵심부처라 할 수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정보통신기술(ICT) 업무가 대부분 방송통신위원회와 쪼개지면서 새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정보통신산업 육성’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어정쩡한 ‘주파수 동거’
이번 미래부와 방통위 간 조직개정안의 내용 중 가장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부분은 바로 ‘주파수 관리 이원화’이다. 방송용 주파수는 방통위가 관리하고 통신용 주파수는 미래부가 관리하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희귀한 주파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것. 미국이나 아시아, 유럽의 국가들은 모두 단일 기관이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 문제에 직면한 주파수는 700MHz 대역이다. 700MHz 주파수는 세계적으로 롱텀에볼루션(LTE) 황금 주파수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조직 개편 합의안에서 정치권은 이 주파수를 방송용으로 규정해 방통위 관리로 남겨뒀다. 결국 700MHz 주파수를 무선인터넷용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주파수에 방송용, 통신용을 나눈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며 “주파수는 언제든지 용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눠서 관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당장 코앞에 다가와 있다. 지난해 말 아날로그 방송 종료로 700MHz 주파수 대역에 여유분이 생겨 할당에 들어가야 하는데, 국무총리실 주도 아래 방통위와 미래부 간 협의가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700MHz 주파수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통신용을 바꿨거나 통신용 전환 할당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관리분야를 나눠놓는다는 것은 스스로 세계적인 흐름에서 동떨어지는 것 아니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통신용 주파수는 미래부, 방송용은 방통위가 관리...효율성 의문
“정치에 정책이 희생당한 것 아니냐” 비판 목소리 높아
◇ 유료방송사업, 관리는 미래부 허가는 방통위?
합의된 개정안에 따르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인터넷방송(IPTV) 등 유료 방송 분야에 대한 업무는 미래부가 담당한다. 그러나 SO와 위성방송 등 허가와 재허가, 관련 법령 제·개정 때 무료 방송을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방통위가 중앙행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유지, 관할 기능에 관한 법률 제·개정권을 계속 갖게 되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 자체가 상임위원 간 합의로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다”며 “조직개편을 하게 되면 미래부가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방통위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방통위만 존재하던 시절보다 훨씬 복잡하게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업계 입장에서 규제 기관이 두 곳으로 늘어난 셈이라 어느 기관의 눈치를 봐야 할 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거미줄 같은 부처간 업무 분장에 효율성 의문
차후 미래부의 정책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비단 이 뿐 만이 아니다. ICT융합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항공, 자동차, 선박 등 제조업에 활용되는 임베디드(내장형) 소프트웨어(S/W)를 비롯해 정보통신 표준화 부문, e-러닝 등의 지식서비스, 정보보안산업, 휴대용 기기 등과 관련된 업무는 산업통상자원부에 그대로 남게 됐다. 개인정보보호 관련 업무는 방통위에 남았고, 해킹이나 바이러스 등 보안 업무는 미래부가 맡게 된다. 해킹이나 개인정보 유출 등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칫하면 부처 간 ‘떠넘기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대부분의 전자정부 업무와 정부통합전산센터 업무는 안정행정부에 남고 융합형 인력 양성을 위한 산학협력은 교육부가 맡는다. 현재 체제의 업무분장대로라면 IPTV업체가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려 할 때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 임베디드 S/W에 대한 협력을 받아야 하고 채널 규제는 방통위를, 서비스 출시에 대해서는 미래부를 찾아야 하는 복잡한 단계가 필요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보통신 산업은 다른 산업보다도 빠른 결정과 추진이 중요한데, 이렇게 되면 선제적인 사업추진을 하기 힘들어진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 ‘정치논리에 정책이 희생당했나’ 비판 목소리 높아
미래부에 대한 조직개편안 합의사항이 이렇게 나오자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규제기관만 늘어난 꼴이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보통신 환경에서 대처하기가 힘들어졌다”며 “무언가 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정말 뒤쳐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마찬가지다. 특히 SO 규제에 대해 정치권에서 ‘방송 공정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고 자평하자 박정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방통위 체제에서도 방송 공정성 시비는 늘 있어왔다"면서 "산업진흥, 먹거리 창출을 견인할 미래부에 보다 많은 기능이 이관돼 일관된 방송통신 융합 정책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하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학계의 다른 관계자는 “결국 이번 조직개편안은 효율성을 담보하기는 커녕 업무를 갈갈이 찢어놓은 격”이라며 “정치권의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국가 핵심산업이 희생당한 것 아닌가 싶다”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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