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과
염유창
uwindow@nate.com | 2013-03-08 13:18:26
사과를 하는 건 어렵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머리를 숙여야 하며 감추고 싶은 치부를 그대로 사람들 앞에 내보여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사과를 하는 건 더욱더 어렵다. ‘그래 너 잘났다’라는 식으로 비아냥대거나 사과하는 척 흉내만 내기도 한다. 혹은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만 해주길 원했던 상대방은 큰 상처를 받는다.
이건 결코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기업 대 기업 간의 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니클로의 표절 의혹은 이런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글로벌 공룡 브랜드인 ‘유니클로’는 한국 소규모 의류업체인 코벨의 양말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코벨은 블로그를 통해 “유니클로가 코벨 양말의 패턴을 그대로 무단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유니클로는 며칠 후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유니클로는 사과문에서 “양말 디자인 복제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켜 고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확인 결과 재질, 배색 등에 차이가 있으나 주요 디자인에 상당한 유사성이 인정 되어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지했다”고 전했다.
유니클로가 고의적으로 코벨의 디자인을 베꼈는지, 혹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로 뒤늦게 누가 봐도 쌍둥이 같은 패턴을 만들어 냈는지는 알 수 없다. 유니클로는 그에 대한 해명이나 책임 규명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문제는 일단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사과라기 보단 공지사항은 같은 유니클로의 사과문을 보면 그들이 상대방 업체인 코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유니클로의 사과문에 코벨에 대한 언급은 단 한 글자도 없다. 유니클로는 고객에게만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상대방 업체 코벨에 대해서는 사과는 커녕 유감의 뜻을 전하지도 않았다. 사과를 받아야 할 대상은 명명백백히 상대 업체인 코벨 임에도 불구하고 유니클로는 코벨을 유령 취급했다. 상대방 업체가 거대 기업이었어도 그랬을까. 코벨이 반쪽짜리 사과문이라고 분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기자는 유니클로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디자인 유사성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올린 것은 표절을 인정하는 것이냐고. 관계자는 사과문이 공식입장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유니클로가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냐고 질문하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밖에 없는 답변을 들었다.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말이었다. 코벨 측에서 항의가 올 때까지 조치할 계획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응당 사과를 해야 할 측은 팔짱 끼고 가만히 있다가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이 오면 상대해 주겠다는 식이었다. 어째 일의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진심 어린 사과는 그 사람을 더 훌륭한 인격체로 만들어 준다. 진정한 사과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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