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폐지론 급부상
우리·외환·기업銀 매각 앞두고 대기업 은행소유론 대두
황지혜
gryffind44@hotmail.com | 2007-03-26 00:00:00
업무의 진화, 파괴 현상에도 지난 25년간 산업과 은행업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상호 소유가 금지된 '금산(金産)분리' 원칙으로 두 분야 사이의 높은 장벽이 철저히 지켜져 왔던 것. 그러나 이 철옹성 같았던 벽도 현실 앞에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는 금산분리 원칙이 깨질 수 있을까. 외환은행을 비롯해 우리, 기업은행의 매각을 앞두고 국내에선 이를 인수할 만한 여력을 가진 금융사가 없는데다 외국 투기자본의 침투가 예상되면서, 일각에서 국내기업에 은행을 팔자며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운 자식에 떡 하나 더 준다'고 외국 투기자본에 은행을 내줄 바에 차라리 국내 기업에 기회를 주는 게 낫다고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폐지론자인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국내 산업자본이 밉다고 해서 외국자본에 은행을 내줄 수만은 없다"면서 "외국자본은 결코 천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산분리 정책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입찰 참여를 막은 결과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가 경쟁자도 없이 단독 입찰해 헐값에 인수하고, 그것도 모자라 막대한 차익을 보고 은행을 되팔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우리은행도 오는 2008년까지는 팔아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국내 기업들이 쌓아두고 있는 60조원이라는 엄청난 현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국민 86.01%, 외환 74.0%, 하나 72.70% 등 절반을 훌쩍 뛰어넘어선 만큼 더 이상 외국 투기자본에 안방을 내줘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도 이들 주장울 한 몫 거들고 있다.
이미 여야 일부 국회의원들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은행법에 대해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신학용 열린우리당 의원은 "금융 주권 수호를 위해 더 이상 외국 자본에 시중은행을 넘겨줄 수는 없다"며 "기존 은행법의 금산분리 원칙 규정을 삭제한 은행업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지난 19일 밝혔다.
또 현재 대기업 계열 보험, 증권 회사의 운영이 별탈 없는데 은행에만 유독 규제를 두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양수 한나라당 의원도 지난주 산업자본의 주식보유 제한을 현행 4%에서 외국인과 금융전업 내국인과 동일한 지분율인 1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권에서 이렇게 제도 개정에 적극 나서는 것은 뚜렷한 매수자가 보이지 않은 시점에서 대형 은행을 잇달아 매각해야 하는 정부로서도 '제 2의 외환은행' 사태를 피하면서 빅딜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산분리 원칙을 옹호 논리도 만만치 않다.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들이 자신들이 지배력을 갖는 은행을 통해 ‘장난’을 칠 수 있는 만큼 금산분리 정책 폐지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지난해 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금산분리 정책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한 사안 중 하나”라며 “지금은 금산분리 정책을 완화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도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 금융회사들이 자기 돈이 아닌데도 그것을 이용해 계열사를 늘리거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라며 금산분리 정책을 고수를 지지했다.
그간 은행에만 유독 이 원칙을 고수해 온데는 기업의 여신을 제공하는 은행과 기업체간의 견제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기업에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평가, 감시를 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기업 구조조정의 주체가 된다.
그런데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게 되면 자사 기업에 대한 감시가 소홀해질 수 있다. 과거 1998년 서울투신운용이 투자한도를 어기고
대우그룹 16개 계열사가 발행한 기업어음, 채권 등 총 7조5910억원을 세계물산, 쌍용양회 등을 경유해 부당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한 사례처럼 사(社) 금융화로 전락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더욱이 현재 대기업 계열 보험, 증권, 카드 등 금융사의 운영 현황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병윤 한국금융학회 연구원은 지난해 6월 '금산분리 관련 제도의 현안과 논점' 보고서를 통해 "현재 대기업의 보험, 카드 등 금융회사 운영 형태가 올바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의 비은행금융회사 소유 현황은 상호출자제한 자산 2조원이상 기업의 경우 55개 기업이 68개의 금융기관을 보유하고, 출자총액제한 자산 6조원 이상 기업은 11개 기업이 24개 금융기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때 대부분 총수나 총수의 친척 등 특수 관계인보다는 계열회사를 통해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국내 대기업 집단이 여전히 금융계열사를 활용해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전체 계열기업에 대한 소유지배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재벌그룹의 독식을 눈감아 준다고 해도 경영 성적, 건전성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이 연구원은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의 경영성과가 비계열 금융회사에 비해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4년 국내 생명보험회사의 경영현황을 비교한 결과, 대기업집단 계열생보사(총 7개)의 수익성을 나타낸 총자산이익율과 운용자산이익율은 각각 0.88%, 6.92%로 비계열사의 2.18%, 7.56%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의 경우에도 대기업계열 금융회사의 총자산이익율과 영업용순자본비율 각각 0.46%, 126.8%로 비계열사 0.70%, 506.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연구원은 "이런 현실은 자금조달처 확보에 따른 거래비용의 절감, 시너지효과의 창출 등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합리화하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는 장점보다는 폐해가 너무 크다"면서 "산업자본이나 외국자본 이외에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자본을 육성하는 방안 마련이 더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 의원은 "일부에서 제기되는 부작용은 감독당국이 사후적 규제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 역시 "현재도 금산분리 원칙을 깨지 않기 위한 차단장치가 돼 있으며, 앞으로도 차단 장치를 보완해 가면 폐지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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