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땅의 너그러움을 기억하라

정해용

webmaster@sateconomy.co.kr | 2009-08-07 19:14:57

# 1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미국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Gone with the Wind)라는 영화 한 편으로 달아올랐다. 미국역사에 취미가 있던 신문기자 마거릿 미첼은 잊혀져가는 남북전쟁을 글로 쓰기 위해 1~2세대 전의 사건들을 취재하였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격동하던 남북전쟁 시기 미국 사회의 단면을 소설로 썼다. 미첼은 이 작품으로 퓰리쳐상을 받았고(1937년), 2년 뒤 러닝타임 4시간의 대작영화가 탄생했다. 그 해 유난히 많은 명작들이 할리우드에서 탄생했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아카데미상 8개 부문과 특별상 2개를 휩쓸었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영화는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중 하나다.
미첼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작성한 원고는 맨 뒤 대단원의 장면이었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남기고 싶은 핵심 메시지를 먼저 정리해두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단원은, 알다시피 중심인물인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가 모든 것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면이다. 자신만만하고 이기적이고 그러면서도 강인하고 도전적인 데다 희생적이기도 한 여인 스칼렛 오하라는 그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악착같이 지켜온 도시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사랑하던 사람들이 곁을 떠나고 사업은 끝이 나고 마지막 희망이자 기쁨이던 어린 딸까지 급작스런 사고로 죽어버렸다. 애증을 나눠온 남편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는 그녀와 격렬한 다툼을 벌이고 또 격렬한 정사를 나눈 밤이 지나자 아직 꿈속을 헤매는 그녀를 놓아두고 떠나버린다. 그 아침에 남편이 떠난 길을 멀리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대는 그녀의 말은 할리우드 역사에 남은 명대사로 꼽힌다.



“그를 이대로 보낼 순 없어. 그를 돌아오게 할 방법을 생각해야지, 오 지금은 생각할 수 없어, 그랬다간 미칠 것만 같아. …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지. 정말 중요한 게 뭘까.”
“타라, 오 내 고향, 타라에 가자. 거기에 가면 그이를 되찾을 방법이 생각날 거야.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깐(After All Tomorrow Is Anther Day).”


# 2
영화 속의 타라(Tara)는 가상의 지명이다. 그 의미는 신화로부터 가져왔다. 이스라엘에서는 타라가 협동농장을 일컫는데, 본래 아람어로 언덕 같은 것을 의미한다. 라틴어에서는 테라스(terras)로 쓰였다. 땅, 언덕을 의미한다. 히말라야 불교에서 타라는 어머니를 의미하는 관세음보살의 의미다. 그 것은 여러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땅과 母性을 상징하는 언어다.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를 통해 작가가 남기고자 했던 원관념은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도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 할 수 있다. 그 희망을 일구는 일은 구체적으로 ‘땅’에서 시작된다.


# 3
45년 전 미국의 쉘 실버스타인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Giving Tree)라는 작품도 어린이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인이 감동을 받으며 즐겨 읽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한 인간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놀이 상대가 되어주며, 먹을 것을 주고, 사업 자금이 되어주고, 마지막에는 베어져 남은 그루터기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어 앉아 쉬게 해주는 과정을 그렸다. 사람들은 이 나무에서 어머니를 느낀다.



어머니처럼 아낌없이 나눠주는 나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후한 땅이 있기 때문이다. 땅은 너그럽고 후하다. 포도 덩굴을 심어 포도밭을 만들고 그 사이에 고추나 가지 모종을 심으면 땅은 포도도 주고 고추도 주고 가지도 준다. 밭고랑에는 옥수수를 심을 수도 있고 들깨를 심어도 좋다. 약간의 수고, 심고 가끔 돌보고 거두기만 하면 인간은 땅으로부터 얼마든지 먹을 것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엔 땅이 부족하다고? 돌아보니 그것도 고정관념일 뿐이다. 농촌엔 노는 땅이 널려있는데, 단지 심고 거둘 사람이 없을 뿐이다. 땅은 여전히 후덕하나 인간에게 그 풍요를 베풀 길이 없을 뿐이다.



패기만만하고 진취적이었거나 화려했던 시간과 인연들이 다 지나가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게 될 때, 한번쯤 고향을 돌아볼 일이다. 그 곳에 아직도 내일의 태양을 기다릴 수 있는 타라(땅)가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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