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물길은 順히 흘러야 한다
정해용
webmaster@sateconomy.co.kr | 2009-08-03 14:59:47
治山治水. 예부터 ‘물 다스리기’는 국가 지도자가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과제 중 하나였다. 첫째는 백성을 재해로부터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며, 둘째는 관개사업의 결과로 농업이 안정되어 백성을 굶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하여 세계 모든 나라의 고대 전설에는 용과 영웅의 전투가 자주 등장한다. 용을 물리친 영웅은 대개 제왕이 되어 그 나라의 제왕이 되었다는 줄거리다. 용은 강과 하천을 의미하며, 용이 인간을 괴롭힌다는 것은 곧 홍수로 인한 水災가 그 무렵 사람들의 고통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사악한 용을 물리친 자, 곧 물을 다스린 자는 곧 그 시대의 패자가 되었다는 것은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전래의 금언과도 일치한다.
중국 고대의 삼황오제라 불리는 요순 임금들도 그랬다. 堯임금이 해마다 범람하는 황하를 다스리기 위하여 마땅한 사람을 구할 때 신하들은 맨처음 ‘곤’을 천거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으나 자기 재주와 힘을 믿고 너무 강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임금이 주저했으나 신하들이 거듭 천거하므로 마지못해 일을 맡겼다. 그러나 홍수는 9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요 임금이 舜을 얻어 국사를 맡겼다. 순은 중신들 가운데 세도만 있고 일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각 동서남북 천리 밖으로 유배하였다. 곤도 우산(지금의 산동성 지역)으로 좌천되어 거기서 죽었다.
순 임금은 다시 적임자를 물색하였다. 신하들이 이번에는 곤의 아들 禹를 천거했다. 아버지처럼 명석한 사람이면서도 아버지와 달리 신중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잊지 않고 13년에 걸쳐 노력을 다한 끝에 마침내 물길을 다스렸다. 이후 하-은-주 세 왕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그 덕을 보았다. 우는 뒤에 순 임금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중국 최초의 국가라 할 수 있는 夏나라 왕조를 열었다(기원전 2100년경). 죽어서는 ‘수확의 신’으로 모셔졌다.
아버지 곤과 아들 우의 치수는 무엇이 달랐을까. 자연의 힘을 얕본 곤은 가두고(塞) 틀어막는(障) 방법으로 물길을 다스리려 하였으나, 우는 물길을 막는 대신 터주고(疎) 흐름을 억제하는 대신 이끌어주는(導) 방법을 썼다. 높은 산에 올라가 멀리까지 지세를 살피고, 직접 여러곳을 답사하면서 지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상류와 하류의 낙차가 커서 유속이 빠르고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이 흘러 그 힘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멀리 우회하여 천천히 흘러가는 새 물길을 만들고, 수량이 많은 곳에서는 물줄기를 자주 갈라 지류를 늘려주었다. 샛강과 하천이 늘어나자 넓은 지역에 관개사업도 절로 해결되어 백성들의 농지가 두루 비옥해졌다.
진시황 때 이빙이란 사람도 같은 방법으로 양쯔강을 다스렸다. 우선 강 한 가운데 인공섬을 만들어 격류를 진정시키고 500개의 지류를 만들어 물길을 순화했다.
옛날 이웃나라에만 사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
2006년 7월 전국적으로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졌을 때, 강원도 영서지방에 내린 비는 기록적이었다. 하루밤새 강수량이 3백~5백 밀리미터나 되었으니 가히 들이붓는 비였다. 강원도에서 이 기간에만 2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1조3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한꺼번에 쏟아진 양이 워낙 많기도 했지만, 人災요인도 지적됐다. 무분별한 개발과 삼림훼손이 있었던 것이다.
하천이 유실된 곳은 대체로 지자체가 관광개발 등의 명목으로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본래 흐르던 물을 가두고(塞) 가로막아(障) 새 물길을 낸 곳들이었다. 수량이 적을 때는 가두면 갇히고 막으면 막히던 물이, 일시에 수량이 늘어나자 석축과 콘크리트 옹벽을 보란 듯이 허물어버리고 본래의 물길을 찾아 흐른 것이었다.
반면 양구군의 경우가 새삼 눈에 띄었다. 민선 초기부터 연달아 세 번이나 군수에 당선된 임경순 군수(퇴임 후 작고)는 진즉부터 자연친화형으로 하천을 정비해 두었다. 물길을 터주고(疎) 자연스럽게 흐르도록(導) 하며, 둑을 쌓을 곳은 콘크리트 옹벽이나 석축 대신 자연형 공법을 썼다. 양구군에서는 하천이 유실된 곳도, 휩쓸린 농경지도 없었다.
정부가 전국 4대강을 비롯하여 많은 지류까지 삽을 대기 시작했다.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필수적인 사전 조사나 설계절차가 너무 간략하다. 옛날 곤의 예가 될까 우의 예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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