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이제 미움을 끝낼 수 있을까
정해용
webmaster@sateconomy.co.kr | 2009-08-03 14:53:39
한 시대의 풍운아가 세상을 떠났다. 백만 인파가 운집한 국민장 영결식 뒤에는 하늘을 덮은 1천개의 만장이 운구를 따랐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 전국 곳곳, 시민들의 손으로 만든 크고 작은 분향소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문객들이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미국에서, 일본에서, 중국에서, 영국에서, 러시아에서, 그리고 북한에서까지, 무수한 나라의 시민들과 최고 지도자들이 조전을 보내거나 그 나라에 주재한 한국대사관에 찾아와 분향하며 애도했다. 눅진한 오월의 마지막은 그렇게 충격과 비탄, 혹은 당혹 가운데 지나갔다.
물론 그의 죽음에 즐거워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장례를 위하여 나랏돈을 한 푼도 쓰지 말자거나 시신을 북한에 보내자고, 죽음 그 위에 저주를 더한 유명인도 있다하지 않던가. 남의 ‘흉사’에 예의상 말은 안하지만 속으로는 한 위선자, 혹은 실패한 혁명가의 ‘당연한’ 죽음일 뿐이라고 애써 신경을 끊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국내외적으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애석해 하는 죽음이, 그것도 자연스런 病死나 사고사나 노환별세가 아닌, 스스로에 의한 自決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전쟁통도 아니요, 암살과 테러가 난무하는 신생국도 아니요, 버젓이 세계 몇 위의 부를 누리고 민주주의가 상당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나라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백주에 벼락이듯, 그 누가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아닌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부패혐의의 가짓수나 거론되는 금액만으로는 가장 청렴한 편에 속함에도, 가장 집요한 조사를 받은 끝에,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죽었다는 ‘사실’은 지금 누구에게나 충격일 뿐 아니라 앞으로 역사에도 충격의 한 페이지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당장 진위나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판단을 역사에 맡긴다‘고 말을 한다. 언제부터 역사가 되는 것일까. 첫 번째 기준은 최소한 이해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후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부터 그가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5월 23일 아침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이제는 해석 가능한 역사가 되었다. 이미 그것은 시작이 되었다.
우선 그의 죽음이 자살에 의한 것이라는 공식 발표가 일부 지지자들에 의해 부정되는 현상부터가 해석이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을 부인하려는 심리는 상상력과 더해져 새로운 상상으로 이어진다. 그의 죽음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바라보는 정부와 정치 권력들은 국민들이 곧 일어나 정부를 비난하고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잠을 못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분향하러 모이는 시민들을 애써 분리시키고 흩으려 한 경찰의 방어본능 또한 이런 상상과 해석 속에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다. 그가 자신의 不正을 덮으려고 역사 속으로 도피한 것인지, 지저분한 시시비비로부터 고고한 인품을 지키려고 현실세계를 등진 것인지, 심한 억압을 받은 끝에 좌절하여 생의 의지가 꺾인 것인지,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우울증이 생겼던 것인지, 아니면 위선적인 생애를 변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 것인지, 다양한 해석들이 뒤따를 것이다.
모든 해석이 나름의 일리가 있거나, 어떤 해석은 맞고 어떤 해석은 틀릴 수도 있다. 각기 다른 해석들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해석들이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과정으로 서로를 보완하고 보충해간다면, 우리는 이 죽음의 해석을 통해 보다 나은 역사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서로 충돌하기만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이제부터 사회는 혼란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이 사건이 지금 한국이 새로 쓰고 있는 역사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이유다.
故人은 아주 짧은 유언을 남겼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여기에 용서라느니 화해라느니 사랑이라느니, 그런 숭고한 용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유언대로 따른다면 이 충격이 혼란이나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적어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혼란이나 충돌이 생기겠는가.
생전에 ‘사람 사는 세상’을 외쳤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가 미움을 거두고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람으로 대접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그도 편히 잠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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