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아름다움에 대하여

정해용

webmaster@sateconomy.co.kr | 2009-08-03 14:52:41

오랜만에 만난 한의사 L씨는 얼굴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 사업이 잘 되시나 봅니다.


- 아뇨. 여전해요. 어디나 불경기인걸요.


-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 보입니다. 더 예뻐진 듯 보이는 걸요.


한참 얘기를 나누던 끝에 L씨가 지난해 부처님 앞에 삼천 배를 올렸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 아참, 전에 삼천 배를 한다 했었죠? 그러고 나서 달라진 게 있습니까?


- 아, 그 뒤로 자주 절을 올리고 있어요. 시작할 때는 삼천 배를 언제 하냐 했는데, 하고 나서 보니 이미 삼천 배를 했다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친한 스님을 만나 “내가 삼천 배를 마쳤습니다”했더니 “그러면 만 배를 해보시지요”하는 거에요.


L씨는 내친걸음에 다시 만 배에 도전했다. 108배를 100번쯤 하면 만 배가 되는 것인데, 주말마다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만 배가 채워지지 않겠나 하고 시작한 것이 석 달도 안 돼 끝나게 되더란다. 여섯시에 일어나 절을 마치고 돌아오면 샤워와 식사를 하고 출근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 되었기에 그대로 아침 큰절을 습관을 들였다고 한다.


L씨는 절을 올릴 때의 기분을 이런저런 말로 설명해주었다. 처음 절을 시작할 때는 한번 엎드릴 때마다 머릿속에 많은 상념들이 떠오르고 또 정리가 되어가는 기분이지만, 어느 정도 숫자가 올라가면서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오로지 몸이 엎드렸다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을 하게 되며, 천배를 넘어설 즈음에는 자신이 절을 한다는 사실조차도 의식되지 않는 ‘삼매’, 즉 무아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 효과로는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고, 종일 정신이 맑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 일상에서 하나의 규칙을 지키고 있다는 데서 오는 자신감도 생긴 것을 꼽는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의 표정이 전에 없이 평온해진 것도 하나의 유익일 듯 싶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명상이나 禪, 기도와 같은 정신수련 활동이 도시인들에게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강이라든가 정신집중력 강화, 학습능력 향상과 같은 실용적 효과가 강조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그런 설명이 없어도 명상이 좋다는 걸 누구나 인정하는 추세다. 그런데 요즘은 기도나 명상에서 한 단계 진전하여 ‘큰 절’이 개인 수행의 수단으로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종교활동을 겸한 108배나 삼천 배는 물론이고 요가수련의 한 방식으로도 큰 절 수련이 널리 퍼지고 있다.


명상이나 기도가 靜的인 정신활동이라면 108배니 삼천 배니 하는 것들은 보다 적극적인, 動的 정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수련이 어지간한 보통 사람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아무 것도 보거나 듣거나 말하지 않고, 그렇다고 졸음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명상의 심연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정한 양식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서 저절로 몰아에 들어갈 수 있다면 절은 매우 유용한 수행방법일 터이다. 게다가 운동효과에 몸매관리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어 일석삼조라나.


특정 종교를 떠나서도, 절은 개인의 마음을 진지하게 모으거나 또는 진지해진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 수단으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웃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는 양식이기도 하고, 조상을 추모하여 존경심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며, 결투나 전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갈렸을 때 패자가 진지하게 굴복을 표하는 예법이기도 하다. 기독교인들도 기도가 간절할 때는 반드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으려 기도하니, 이 역시 신에게 바치는 절과 다르지 않겠는가.


“삼천배를 하고 났더니 그만큼 절한 사람이 굉장히 많이 보이더라”고 한 L씨의 말도 의미가 깊다. 옛날 조선 태조 이성계와 술을 마시던 무학대사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입니다.”


어제 오늘 주요 일간신문을 보면 어느 신문은 대문짝만하게 죽창인지 죽봉인지를 휘두르며 싸움연습을 하는 경찰부대의 모습이 실렸고, 어느 신문은 대문짝만하게 통일의 여로를 오체투지로 향해 가는 신부와 스님과 시민들의 모습을 실었다. 아마도 ‘눈’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을 꽤 많이 본다. 서로가 말하기를 세상에 사람다운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탐욕만을 위해 사는 것 같다고들 비하한다. 이런 마음이 들 때, 나는 지금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L씨의 표정이 전보다 밝고 아름다워진 것은, 아침마다 엎드려 낮은 눈으로 세상을 올려다보는 까닭일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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