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역마진에 대비하라”
금융당국, 제도 개선 나서…장기화 대비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08-09 19:09:31
보험업계의 총자산이 역대 처음으로 600조원을 돌파했으나 저금리 상황이 계속되자 보험사들이 속속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최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일부 보험사들은 이달부터 공시이율을 인하하고 일시납 즉시연금보험의 가입한도 조정 및 판매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보험사의 총자산은 620조4천391억원으로 600조원 고지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올해 정부 예산 약 325조원의 1.9배 수준이다. 작년 12월 말 558조407억원에서 불과 3개월 만에 62조3천984억원이나 급증한 결과다.
그러나 보험사들의 자산운용 성적표는 실망스러울 정도다. 대부분의 자산운용 이익률이 4~5%대에 그쳤다. 1년짜리 정기 적금 금리 3.8~4.0%를 약간 웃돈다. 초저금리 기조와 경기 불황으로 자산을 굴려봐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실정인 셈이다.
막대한 돈이 쌓여있는데도 굴릴 데가 없어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경기 불황으로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치가 하락한 탓에 자산 운용 수익률이 은행 정기적금 이자와 비슷한 정도다 보니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포트폴리오를 짜서 투자하기보다 차라리 은행에 예치해 이자를 받는 게 더 낫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에는 기준금리마저 인하돼 보험사들은 자산 운용 수익보다 고객에게 지급할 이율이 높아지는 역마진을 걱정한다. 일부 보험사는 은행과 증권사를 통한 즉시 연금 판매를 축소하고 일시납 저축성보험의 방카슈랑스 판매도 중단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국고채 금리가 기준 금리를 밑돌고 부동산과 주식 가격도 폭락해 현재로선 자산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면서 “투자 수익률보다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율도 더 높아져 역마진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 “일본 보험사 경영난 사례 연구”
이렇듯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자 보험사들이 속속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국내 최대 보험사 삼성생명은 지난 7월 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직후 시중금리 하락에 따라 시나리오별로 보험영업, 자산운용, 손익영향 등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기 위한 ‘저금리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전격 발족했다. 삼성생명 고위 관계자는 “생명보험사는 장기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만큼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경영전략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대책을 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도 기준금리 인하 직후 신창재 회장 주재로 초저금리 시대에 대비한 마라톤 대책회의를 연이어 개최, 이들 회의에서 총체적인 전략 전환을 점검했다. 특히 일본 보험사들이 과거 20년 동안 겪었던 경영난 사례 연구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저금리 시대를 비상 상황으로 인식한 보험사는 대형사뿐만이 아니다. 중상위권인 A보험사는 지난 3월 말 전체 운용자산 중 56%였던 국내 채권 비중을 지난달 말 기준 5%포인트 높은 61%로, 국외 채권 비중은 3%에서 무려 10%포인트 높은 13%로 끌어올렸다. 이 보험사 임원은 “7월 기준금리 인하 이전부터 저금리 기조를 전망했고 이에 따라 채권 투자 비중을 대폭 확대했다”며 “철저한 분산 투자 원칙과 함께 우량 자산에 대한 투자전략이 상실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초저금리에 따른 역마진에 대비해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를 통한 즉시연금과 일시납 저축성보험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외국계인 B생보사는 8월부터 기존 무제한이었던 즉시연금 가입한도를 3억원으로 제한하고 공시이율도 4.5%로 지난달 대비 0.2% 포인트 인하했다. C생보사도 업계의 움직임을 살펴본 뒤 일시납 가입금액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앞서 미래에셋생명과 흥국생명도 방카슈랑스 채널에서의 즉시연금 판매를 중단했다. 또한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동양생명, ING생명, IBK연금보험 등은 지난달 대비 0.1% 포인트씩 공시이율을 내렸다.
손보사들도 마찬가지다. 삼성화재와 동부화재는 일부 은행에서의 일시납 저축성보험 판매를 중단하거나 가입한도를 무제한에서 1억원으로 제한시켰다. 현대해상과 LIG손해보험 역시 KB국민은행 등에서 판매중인 일시납 저축성보험의 가입한도를 1억~2억원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금융당국 “제도개선으로 역마진 대응”
금융당국 역시 저금리 기조 장기화에 따른 보험사들의 이차 역마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보험사들의 고시이율결정권을 제한하고, 금리 역마진 리스크를 위험기준자기자본(RBC) 비율에 반영하는 것이 제도 개선의 핵심이다.
최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기존에 보험사가 공시이율을결정할 때 공시기준이율의 20%까지 금리를 가감할 수 있었던 제도를 변경해 조정폭을 최대 10%로 제한하기로 하고, 관련 규정을 입법예고한 후 의견을 수렴 중이다.
또 RBC 비율 산출 시 금리 역마진 리스크를 지급여력기준금액에 가산해 역마진이 큰 보험사의 RBC 비율이 하락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RBC 비율은 지급여력금액을 지급여력기준금액으로 나눈 비율로 지급여력기준금액의 한 항목인 금리 리스크가 증가하면 RBC 비율이 하락한다.
당국은 이와는 별도로 지난 6월 외환위기 등 위기 상황을 가정해 전체 생?손보사를 대상으로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했다. 테스트 결과 일부 보험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보험사는 위기 상황에서도 RBC 비율이 권고수준인 100%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보험사에 배당 자제등 재무건전성을 높이도록 지도했다.
◇ 지금부터 대책 마련 나서야
제도가 개선되면 보험사 간 공시이율 과당경쟁이 완화돼 저금리에 따른 보험사 부실경영 우려가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이러한 업계의 움직임에 대해 한 외국계 생보사 관계자는 “초저금리에 따른 이차역마진으로 줄줄이 파산한 적이 있는 일본의 생명보험사 선례가 있듯이 보험사에게 저금리는 악조건이다”라며 “저금리 추세에 따른 자산운용의 어려움 때문에 일시납 가입한도를 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부동산과 증권 시장이 악화되면서 보험회사의 자산운용 수익률도 나빠지고 있는데다 저금리 상황이 장기화될 우려가 높기 때문에 지금부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경영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보험회사들은 시장상황을 잘 진단하고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자사 상황에 맞는 채널을 잘 살려 운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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