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열전]한국적 아메리칸 스타일

여선구

webmaster@sateconomy.co.kr | 2009-08-03 11:41:09

한국인이 즐겨 마시는 커피 가운데 아메리칸 스타일(American Style)이라는 커피가 있습니다. 아메리칸 스타일이란 마치 홍차처럼 농도를 연하게 조절한 커피를 말합니다. 간혹 미국식 커피 문화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을 가지고 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비엔나엔 비엔나커피가 없는 것처럼 아메리카엔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커피가 없습니다. 만일 미국의 어느 카페에 가서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를 찾는다면 낯선 동양인의 엉뚱한 주문이라고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이죠. 미국에서 아메리칸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커피를 마시려면 레귤러커피(Regular Coffee)를 주문해야 합니다. 영국이라면 필터커피(Filter Coffee) 찾으면 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필터로 걸러서 추출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아메리칸 스타일은 이들 나라의 커피들보다 훨씬 농도가 흐리죠.


한국에서 이런 커피가 유행한 것은 일본 커피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원두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추억된 이름이지만 ‘자뎅’, ‘난다랑’, ‘도토루’등 일본에서 건너온 세련된 커피하우스가 점차 구식 다방을 밀어내고 번화가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추출하는 기구는 제각각이었지만 인스턴트커피에 길들여져 있던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가 바로 아메리칸 스타일이었습니다. 사실 고급 원두커피라고는 하지만 커피 프림과 설탕을 혼합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던 한국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진한 블랙커피가 입맛에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농도를 극단적으로 흐리게 만든 아메리칸 스타일을 찾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많아지면서 대표적인 커피가 된 것입니다.


필자가 운영하는 카페에는 지금도 아메리칸 스타일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제법 있습니다. 메뉴보드에는 없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아주 흐리게 드시는 취향을 가진 분이라고 이해하고는 농도를 조절해서 드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흐리게 마신다면 좋은 커피와 그렇지 않은 커피, 오래된 커피와 갓 볶은 신선한 커피와의 구별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적정한 농도의 커피를 드시도록 유도하려고 합니다.


한편 아메리칸 스타일과 혼동하기 쉬운 커피로 카페 아메리카노(Cafe Americano)가 있습니다. 카페 아메리카노란 에스프레소를 물로 희석해서 만든 아탈리안 스타일의 커피입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하기 때문에 스타일도 다르고 농도도 아메리칸 스타일보다는 훨씬 진한 편입니다.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카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가는 자칫 연인에게 창피를 당하는 수모를 겪을 수도 있겠죠.


문화에 있어서 우열이란 있을 수 없듯이 우리 정서에 맞는 커피를 잘 정착시킨다면 굳이 외국의 낯선 이름을 가진 커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갖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