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석달>'세계경제수도' 월가의 몰락
리먼 공중분해, 메릴린치.와코비아 등 간판 내려
토요경제
webmaster | 2008-12-22 10:49:04
지난 13일 오후 5시 이른바 마천루가 즐비한 뉴욕 맨해튼.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부는데도 세계 경제의 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지 뉴욕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맨해튼 49번가 745번지에 있는 34층짜리 건물 주변에서도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이 건물은 불과 3개월 전 까지 리먼 브러더스의 본사였다.
관광객들은 그러나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던 이 건물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인근 상점의 성탄절 장식만을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바클레이즈 캐피털로 간판이 바뀐 이 건물에 리먼브러더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 메가톤급 폭풍을 몰고 왔던 미국 4위의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는 그렇게 흔적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지만, 리먼의 파산보호 신청 이후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연일 200∼300포인트씩 급락하며 극도로 불안한 투자심리를 반영했고, 시중의 투자자금은 그나마 안전하다는 금과 미 국채에만 몰려들었다.
11월 한 달 동안에만 50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직장을 잃고 '백수'의 신세로 전락했으며 실직이나 급여삭감으로 타격을 입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매출도 급감, 적자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위기는 비단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남미, 중동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또 금융에 이어 실물 경제의 각 분야에 이르기까지 경제 위기는 이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 월가의 몰락
지난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크리스토퍼 콕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등은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등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과 회의를 잇달아 열어 리먼에 대한 민간차원의 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리먼에 대해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를 단호하게 거부했고, 영국 바클레이즈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리먼의 인수를 위한 협상을 벌이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만 14일 바클레이즈가 돌연 협상장에서 철수하자 리먼은 마침내 백기를 들고 파산보호 신청 계획을 발표했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의 시작이자 첨단 금융산업의 메카인 월스트리트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리먼은 이후 투자은행 등 북미지역 증권사업 부문을 영국 바클레이즈에 매각했고 아시아, 유럽, 중동지역 사업은 일본 노무라가 인수하는 등 산산조각으로 해체돼 청산의 길을 걷고 있다.
이어 미국 최대의 증권사였던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와코비아는 웰스파고에, 워싱턴뮤추얼은 JP모건체이스에 각각 매각돼 간판을 내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보험사 AIG는 정부로부터 잇단 구제금융을 지원받으면서도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고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며 손을 벌리는 금융회사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의 초반에는 첨단 금융기법으로 고도의 레버리지를 이용해 수익을 내던 투자은행(IB)들이 과도한 탐욕 때문에 몰락하고 대신 전통적인 상업은행들이 패권을 잡았다는 분석이 대세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업은행들도 모기지 관련 부실 등이 누적돼 정부의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등 위기는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 '엉클 샘'의 부활
전 세계 경제질서 구도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시장경제 옹호론자들은 경제위기가 닥쳐도 인위적인 부양책이나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해왔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내부에서 엄청난 위기가 발생하자 달러를 찍어내는 발권력을 동원한 대규모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을 사용하고 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그들이 도산하는 기업들에 구제금융을 지원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잘 기억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지난 1년간 미 중앙은행은 도산하는 은행과 모기지 업체, 기업들을 구제해줬다"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 양대 모기지업체의 국유화에 이어 개별 금융회사에 대한 지원책으로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아예 7천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동원해 금융회사들이 가진 부실채권을 사주기로 했다.
최근에는 정부의 구제금융 대상이 은행과 증권사를 넘어 보험사에 이어 자동차 업체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정부는 각 업체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대신 우선주나 주식 워런트 등을 통해 지분을 확보, 대주주의 입지를 구축하면서 민간 부문에까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강한 '빅 브라더'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엉클 샘(미 정부)'의 부활은 과도한 규제완화와 모럴해저드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면서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등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자의적 기준의 적용과 함께 모럴해저드나 관치라는 후유증에 대한 우려도 비등하지만, 방치할 경우 나타날 시장의 파국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단호하고 과감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개별 업체들에 대한 자금지원은 물론 잇단 금리 인하와 경기부양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후유증이나 부작용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확산되는 금융시장의 불안감과 경기침체의 불길을 잡는데 매진하고 있다.
정부가 강력한 규제와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정부 권력의 르네상스'가 다시 현실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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