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覇者는 아니지만 敗者도 아니다
넥센의 ‘남자 야구’를 완성한 ‘염갈량’, 염경엽
김형규
fight@sateconomy.com | 2014-11-14 13:06:01
‘멘도사’보다 못한 타격 실력···통산타율 0.195
냉철한 ‘작전사령관’으로 거듭난 ‘눈물’도 어울렸던 감독 염경엽
[토요경제=김형규 기자] 지난 11일 잠실구장에서 눈물을 보인 한 사나이가 있었다. “굉장히 아쉽다. 나에게는 잊지 못할 시리즈였다”고 말한 그는 잠시 자리를 떴다. 감정을 추스른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긴 레이스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선수들이 잘 견뎌줬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바로 넥센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이다.
‘거지 야구’에서 ‘남자의 야구’로
넥센은 지난 4, 5년 전만 하더라도 재정난에 시달리던 팀이었다. 팬들에게는 ‘거지 야구’한다며 비아냥을 듣기 일쑤였고, 당시 최고의 인기팀이었던 롯데는 ‘넥센 같은 팀이 프로야구 발전을 저해한다’며 쓴소리를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넥센은 지난해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고, 어느새 우승을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팀으로 성장했다.
넥센의 힘은 누가 뭐래도 타격에 있다. 3년 연속 홈런-타점왕 박병호를 비롯해 40홈런으로 역대 유격수 최다 홈런을 기록한 강정호, 역대 최초로 200안타 고지를 점령한 서건창 등 1번부터 9번까지 어느 누구 쉽게 넘어갈 수 없는 타선이다.
7점을 주더라도 8점을 뽑아내며 승리를 거두는 넥센의 ‘남자 야구’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올 시즌 리그에 불어 닥친 ‘역대급 타고투저’ 열풍의 중심에는 넥센이 있었다. 외국인 타자 로티노가 주요 전력에서 빠졌음에도 넥센의 공격력에는 변함이 없었다.
넥센이 타격의 팀이라고는 하지만 좋은 투수를 보유하고 있다. 20승 투수 밴헤켄과 승률왕 소사가 팀의 원투펀치로 마운드를 튼튼하게 버텨줬다. 또 뒤에는 조상우와 홀드왕 한현희로 이어지는 필승조에 마무리는 세이브왕 손승락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뿐이었다. 쓸 만한 토종 3·4선발이 없다는 게 시즌 내내 염 감독을 괴롭혔다. 결과적으로 한국시리즈에서도 토종 선발은 끝까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런 수적인 열세를 가지고도 2년차에 불과한 염경엽 감독은 놀라운 투수 운용으로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준우승을 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감독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야구의 고장 광주에서 태어나 야구 명문학교인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를 진학한 그는 대학 시절 빼어난 타격과 수비실력으로 주목을 받는다. 그는 대학교 2학년인 1988년 대통령기에서 타격상을 수상했고 4학년인 1990년에는 추계대학리그 MVP까지 오르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1년 당시 최약체 팀이었던 태평양 돌핀스에 2차 1순위로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문한다.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10년간 선수생활을 하지만 대학시절과는 달리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만 수비를 잘하고 번트를 잘 대는 정도의 기억만 남겼을 뿐이다. 10시즌 통산 홈런은 5개밖에 안됐고, 2할을 넘긴 해는 세 시즌 밖에 안됐다.
통산타율은 역대 타자들 중 최저 타율을 기록했다. 1할9푼5리.
선수시절 멘도사 라인은 항상 그의 차지였다. 멘도사 라인이란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2할대 초반을 맴돌던 멘도사라는 선수를 빗대 생긴 말이다. 하지만 선수 염경엽은 통산타율이 1할9푼5리로 멘도사(0.215)보다도 낮은 타율을 기록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낮은 타석에도 불구하고 규정타석을 채울 수 있는 만큼의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는 선수시절 뛰어난 수비실력과 작전수행능력 만큼은 인정받았으며 팀에 대한 기여가 뛰어난 ‘소금 같은’ 선수였던 것이다.
2000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그는 현대 유니콘스의 스카우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수비코치로 잠깐 활동했지만 곧이어 다음해에는 LG 트윈스의 스카우터와 운영팀장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2010년이 되어서야 LG 트윈스의 수비코치로 현장에 복귀한다. 현장에 복귀한 그는 2012년 넥센으로 자리를 옮겨 작전·주루코치를 하게 된다.
지난 2012년 10월 10일 넥센 히어로즈에서 뜻밖의 발표가 흘러나왔다. 넥센의 제3대 감독으로 당시 작전·주루코치였던 염경엽 코치를 선임했다는 것이다.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액 8억원 규모다. 검증 안 된 초짜감독 치고는 다소 많다고도 생각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주변에서도 염경엽 신임감독의 선임은 다소 의외라는 평이 많았다.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아니었으며 감독 경험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카드였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이의 불안과 불신을 잠재우는 활약을 펼친다. 염 감독은 만년 꼴지 후보였던 넥센의 팀컬러를 더욱 진하게 바꿨다. 작은 홈구장을 쓰는 만큼 장타력을 갖춘 선수들로 타선을 채우면서도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 야구도 함께 구사하며 짜임새를 갖춘다. 결국 염 감독은 2013년 팀을 정규시즌 3위(72승54패2무 0.571)로 이끌며,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올려놓는다. 당시 넥센은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을 거둔 뒤 내리 3연패를 당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 경험은 넥센과 염 감독에게 큰 약이 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에게는 ‘염갈량’이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된다.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
결국 염경엽 감독은 부임 2년 만에 팀을 창단 후 최고 성적인 시즌 2위로 이끈다. ‘초보감독’의 ‘반란’이었다.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넥센은 LG와의 플레이오프 대결을 펼친다. 여기서부터 염 감독의 승부사다운 기질이 발휘된다. ‘3인 선발 로테이션’과 ‘10인의 투수엔트리 운용’이 그것이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대타와 대주자 작전을 쓰며 결국 넥센은 LG에 3승 1패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오른다.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
이제 창단 첫 우승이 눈앞에 놓인 듯했다. 염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도 플레이오프와 같은 운용을 한다. 그러나 페넌트레이스 1위 삼성은 역시 강했다. 6차전을 앞두고 염 감독은 “괜히 페넌트레이스 1위와 2위 팀이 있는 게 아니다”며 “분명한 것은 전력이 강하기 때문에 1위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팀의 실력 차를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넥센은 시리즈 전적 2승 2패로 맞선 5차전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이번 시리즈의 분수령이었다. 팀이 1-0으로 앞선 9회 2사 후 최형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무너진 것이다. 투수들은 지쳐만 갔고, 내야수들은 결정적인 순간 어이없는 실책을 범했다. 그리고 6차전에서 크게 패하고 만다.
이날 염경엽 감독은 눈물을 보인다.
어쩌면 눈물은 2위 감독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현대에서 한차례 준우승을 경험한 김재박 감독은 “맨 마지막 순간에 패자로 남는 2등이 가장 싫다”고 했고, 두산에서 세 차례 KS 패배를 맛보았던 김경문 감독은 “시리즈가 끝나면 준우승도 잘했다는 인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2등은 가장 억울한 자리”라고 했다.
이 아픔이 이번 가을에는 염경엽 감독의 몫이 됐다. 평소 표정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이다.
선수시절엔 1할 타자였고, 그 후에는 현장의 꿈을 접고 프런트를 지내야 했던 그는 먼 길을 돌아 한국시리즈에 오른 팀의 감독이 됐다. 하지만 그의 원대한 목표는 한국시리즈 우승 팀 감독이었던 것이다.
‘정말 이기고 싶었다’던 그는 정말 많이 노력했던 지도자다. 그 눈물은 그의 회한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1968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47살인 염경엽 감독은 젊다. 창단 첫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넥센 히어로즈 역시 젊다. 올 한 해 큰 경험을 쌓은 넥센과 염경엽 감독이 내년에는 어떤 모습을 또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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