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폭탄돌리기’ 언제까지?
가계부채 120조 원금상환 임박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06-29 16:09:52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률 종합대책’을 마련한지 1년이 됐다. 그러나 지난 3월 말 현재 가계부채 잔액은 911조4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10조원 증가했다. 최근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소식들을 전하고 있다. 최근엔 원금 상환을 미룬 채 이자만 내는 대출자가 80%에 육박, 곤두박질치는 집값에 세계 경기불황까지 겹쳐 연체율은 이미 금융위기 수준을 넘어섰다.
음식점을 하는 임모(47)씨는 지난해 부모님이 차례로 병원에 입원하자 사는 빌라를 담보로 7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임씨는 매달 수십만 원의 이자를 내고 있다. 그러나 푼돈 들어올 일보다 목돈 나갈 일이 더 많은 탓에 원금 상환은 ‘나중 일’로 미뤄질 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임씨처럼 소득이 생활비와 원리금 상환액보다 적어 원금을 상환하려면 새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 서민들이 많다. 지난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처럼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대출 비중(분할상환대출 중 거치상환기간인 대출·일시상환대출 포함)은 올해 1분기 말 현재 전체 대출의 76.8%, 금액으로는 약 234조4000억원이다.
이중 120조2000억원(39.2%)은 분할상환대출이지만 원금 상환시기가 아직 남아 있는 대출이다. 나머지 115조2000억원(37.6%)은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일시상환대출이다.
◇ “폭탄돌리기 좀 더 가능”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현재 국내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판단이다. 금융위원회 고승범 금융정책국장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금융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고 국장은 “외환위기 이후 소비 진작 차원에서 늘린 가계부채 지난 10년 간 축적돼 생긴 문제”라며 “미국 등 여타 국가보다 연체율이 1% 수준으로 낮고, 채무자 70%의 신용등급이 1~4등급으로 높아 아직 관리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또 그는 작년 말 국내 금융회사의 자기자본비율(BIS)이 13.98%로 높아진 점, 가계대출 증가율이 2010년 8.1%에서 지난해 7.6%로 줄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문제는 가계대출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고, 증가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등 질적인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채무자가 금리 변동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에 있다”며 “채무자의 80%가 아직 이자만 내고 있지만 이들이 원금을 상환할 때는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 원금상환 시작되면 ‘하우스 푸어’ 전락
그러나 문제는 내년부터 ‘빚잔치’를 해야 하는 채무는 120조원을 넘는다는 점이다. 306조원의 주택대출 중 내년까지 거치기간이 끝나거나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이 128조원에 달한다. 전체 주택대출자의 42%에게 원금상환 시기가 임박한 셈이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이자만 내던 가구가 원금 상환에 들어가면 소득 중 원리금 상환비율이 평균 49.1%에 달한다. 주택대출자라면 소득의 절반 가까이 빚을 갚는 데 쓰는 전형적인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는 처지가 된다.
연체율 추이는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올해 4월 가계대출 연체율은 0.89%, 주택대출은 0.79%에 달한다. 금융위기 여파로 연체율이 가장 높았던 2009년 2월(가계대출 0.88%, 주택대출 0.69%)보다도 높다. 더구나 연체율 추이는 상승곡선을 타고 있어 머잖아 1%를 넘을 지도 모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선 지점마다 연체율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실물경기 침체, 원금 상환시기의 도래, 집값 하락으로 인한 담보인정비율(LTV) 하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고소득층은 괜찮지만, 저소득층은 주택대출 부실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이자 경감이나 채무조정 등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제언했다.
◇ 가계대출구조, 더 과감히 개선해야
수년 내 원금상환이 시작되면서 위험도가 올라가는 이른바 ‘잠재적 위험군’도 우리나라 전체 부채의 12.7%, 약 75조원을 차지한다. 빚을 짊어지고 살 뿐, 빚을 줄이기는 어려운 서민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사정이 심각하다. 경기침체로 가계 실질소득이 줄어드는데 집값까지 지속적으로 내려 담보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담보가치 하락으로 은행에서 기존 대출을 전액 연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서민에게는 주택담보대출이 ‘시한폭탄’인 셈이다.
주택담보대출 중 일시상환대출이나 이자만 내는 대출 비중은 최근 3년간 매년 1~3%포인트씩 소폭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가계대출 구조를 더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있다. 당국과 금융기관이 다양한 정책과 금융상품을 통해 가계대출 구조를 ‘양질’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노형식 연구원은 “부채구조를 일시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험성이 큰데도 서민들이 떠안고 사는 대출이 적지 않아서 당장은 부담되더라도 원금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것이 대출구조를 개선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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